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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미안해요

by HoA

토요일 아침

열 살 다섯 살 아이들이 깜짝 선물을 내밀었다.

각자 학교와 유치원에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허깨비 같은 엄마 아빠를 위해

한참 동안 오리고 붙여 카네이션을 만들어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뭉클한 맘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친정 엄마가 떠올랐다.

주중에 쉴 새 없이 우리 집에서 아이들 돌보랴

살림하랴 동동거리시다 토요일 새벽 동트자마자

친정으로 향하신 엄마께 어버이날 봉투 챙기는 것도 잊어버리고만 내가 부모랍시고 아이들에게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은 마음에 가슴 한구석이

콕콕 쑤셨다.

이번 주는 엄마가 유난히 힘들어하셨는데

먹을 것 좀 잘 챙겨 드시라는 말 외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부랴부랴 삼계탕을 끓였다.

고기를 싫어하시는 엄마는 기운 없을 때 마지못해

육식을 하시는데 그나마 삼계탕이 낫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아들내미 학원 수업을 마치자마자 끓어둔 삼계탕을

싸서 네 식구가 친정으로 향했다.

이사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석 달 넘게 가지 못했던

친정 가는 길은 어버이날이어서인지 토요일이어서인지 평소보다 두 배는 밀렸다.

예고 없던 방문에 엄마는 주말에 쉬지 힘들게 왜 왔느냐

하셨지만 아빠는 반가워하셨다.

아빠가 아이들을 마주할 때의 표정은 나 자라면서는

일평생 보지 못했던 그런 미소다.

주중에 혼자 계시니 사람이 그리우실 테지만

내색이 없는 아빠는 늘 괜찮다는 말씀만 하신다.

우리는 오래간만에 함께 삼계탕을 먹고 티브이를 보며

늦은 오후를 보냈다.

때마침 '나 혼자 산다'에 쌈디가 나왔고

그는 어버이날 기념이라며 아버지에겐 현금 사백만 원을

어머니에겐 롤렉스 시계를 선물했다.

은행도 들르지 못해 집에 있던 현금을 주섬주섬

챙겨 딱 40만원을 챙겨간 나 자신이 심히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속상했다. 그리고 불편했다.

돈이 없어서는 아니다.

나도 사백만원 정도는 드릴 수 있다.

다만 매년 그만큼 드릴수 없을 거라는 생각,

시댁에도 똑같이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공정심 따위가 발동되어 그럴 것이다.

앞으로도 매년 나의 부모님은 내 곁에 계실 거란

어리석은 착각 때문이기도 하다.

갑자기 편치 않은 맘에 그날 나는 친정에서 자지 않고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나이가 들면 철이 들 것 같고

능력과 여유가 생길 것 같고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부모한테 진 빚은 줄어들지 않는다.

마흔이 넘어서도 그렇다.

부모는 늙고 작아지면서도 왜 다 큰 자식에게 주기만

하는 건지 속이 상하다.

내 아이들은 내게 사랑한다는데

정작 나는 내 부모님께

미안하고 또 미안한 어버이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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