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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살아보니

패러디 of 백 년을 살아보니

by HoA

휴대폰 메모리가 거의 다 찼다는 팝업이 며칠째 떴다.

미처 정리하지 않은 동영상, 이미지, 문서 파일들은

과감히 삭제해버릴 수 있는 것들도 그렇다고 공들여

정리할 만한 것들도 아니었다.

갤러리에 있는 파일은 창고에 욱여넣는다는 심산으로

구글 드라이브에 옮겨두고 에버노트도 점검해보았다.

끄적이다 만 일기 중엔 시월드에 대한 푸념이 하나 있었다.

그 글은 김장에 대한 이야기 었는데

김장하는 날이 되면 시어머니가 나를 부르실 텐데

어차피 가서 절인 배추에 대충 양념이나 바르고

점심으로 수육을 먹고 김치 한통 받아오면 되는

형식적인 프로세스임을 알면서도 전후 이삼일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내용의 칙칙한 글이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만한 일에 자존감이나

성역할 따위의 담론을 들먹이며 쓸 데 없는 감정소비를

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지금 내게는 어느새 김장이란

특별한 감정일 불러일으킬만한 대단한 이벤트가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김장철 어느 주말, 아침 식사를 하고 온 식구가 시댁에 가면

거실에는 이미 절여진 배추와 양념이 펼쳐져 있고

내 역할로는 고무장갑을 끼고 앉아 양념을 쓱쓱 묻혀

김치통에 담는 것으로 지정이 되어있다.

그 공정을 수행하다가 아이들에게 한번 해보겠느냐고

묻기도 하고 수육이 절 익었는지 확인한답시고

주방에 왔다 갔다 하면 허리가 아파오기도 전에 김장은

마무리된다.

무념무상으로 그렇게만 하면 일 년간은 시댁에서

김치를 아무런 미안함 없이 가져다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생긴다. 안 해도 당연히 주실 것을 알지만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결혼생활 십 년을 채우고 나니 단순한 일은 단순한 마음으로

대하면 그뿐, 과도하게 머리와 감성을 쓰면 결국 나만

손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덧 큰 아이가 열 살이 되었고 나는 마흔이 넘었다.

그 사이 중년 아주머니에서 노인으로 향하는 시어머님이

유난히 피곤해 보이는 어느 날이면

집에서 김장이라는 것을 하고 아이들은 괜히 궁금해서

만져보고 싶어 하기도 하고 가족이 둘러앉아 수육에 겉절이를 올려먹는 일이 이젠 몇 번 안 남은 것은 아닐까

되려 맘이 덜컥 내려앉는 지경이 되었다.

좋게 해석하자면 어쩌면 진짜 가족이 된 것일 수도 있고

나쁜 편으로는 포기를 했다거나 의식이 무디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떤 해석이 맞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서

사소하게 불편했던 많은 일들이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익숙한 일들이 되어버렸고 결론적으론 내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다.

아마 어느 순간이 되면 이런 일은 '당연함'이 되고

언젠가는 권한을 이양받아 나 스스로가 무의식적이지만

주도적으로 일련의 그런 행위를 집행하는 '꼰대'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은 아찔하기도 하다.

단, 10년을 살았을 뿐인데도 사람은 '구조'에 순응하게

마련이고 그것이 개인에게는 오히려 편한 선택임을

깨달았다. 모름지기 '꼰대', '보수'가 아닌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부단한 자기 검열이 없이는 매우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비록 적응하고 말았지만 이 가치를 강요하지는 않는

어른이 되는 것, 어떻게 해야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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