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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변하지 않는 진실은 없다

by HoA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변화 외에 불변하는 것은 없다는 진실-


어린 시절 교과서는 나무를 심는 것을 '환경 보호'의 상징으로 가르쳤다.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는 구호는 절대적인 선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진실이 흔들리고 있다.

경북 산불을 경험하고, 최근 ESG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적잖은 충격적 사실을 접하고 있다. 빽빽한 임야는 산불 위험을 키우고, 늙은 나무는 산소배출량이 적어 오히려 생태계의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들로 인해 우리는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아이러니에 맞닥뜨리고는 한다.


호주에서는 예방적으로 인위적으로 잡목을 태워 산불을 막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멀쩡한 나무를 태운다는 발상은 '파괴'로 비칠 것이다. 오래된 것을 지키는 것이 미덕이라는 정서가 우리를 옭아매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스마트폰은 새것으로 교체되길 바라면서, 자연에 대해서는 '보존'이라는 이름의 방향성만을 고집한다.

과거의 진리가 현재의 위험이 되는 역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새로운 지식을 우리는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고 그에 적합한 행동으로 연결지을 수 있을까?


사회는 끊임없이 진화한다. 회사일도 마찬가지로 변화가 진행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부터 그래왔다. 그렇게 해왔지만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므로 이 방식이 안전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공고해보이는 논리 뒤에 숨은 건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과거의 방식이 잠재된 문제들을 커버하고 있다거나 앞으로 일어날 위험을 대비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환경을 지킨다는 명분도, 산업의 효율성도 결국 "지금의 진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의 해법이 오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진실은 유동적이다. 과학이 발전하고 환경이 변하듯, 인간의 인식도 새롭게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 오래된 나무를 보호하는 것도, 때로는 젊은 나무로 교체하는 것도 모두 '지속 가능성'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한 다른 길일뿐인 것이다.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주의는 당장은 안전해보이지만 결국 위기를 키우게 마련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정체와 비효율은 새로운 가능성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기존관념인 경우가 많다. 새 것을 끊임없이 추구하지만 공고한 과거에 짓눌린 부질없는 노력들이 수많은 혁신가를, 진실 추구자를 지치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진정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불변의 법칙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유연성임을 제대로 인식할때 우리는 조금씩 변하고 강해질 수 있다.


진정한 지속 가능성은 변화하는 현실을 인정하는 용기에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변화는 거슬리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변함을 수용하고 대응해 내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진실 수호와 사회 보호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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