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유는 아니지만
요즘 '폭삭 속았수다'를 보면서
나는 금명이처럼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장에 들어가는 딸에게
"아니다 싶으면 빠꾸해."라고 말하던 관식처럼
나는 늘 엄마 아빠가 나를 바라보며 내 뒤에 있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것은 해보고
살아야한다고, 대신 그 선택이 바른 것이라면
어렵고 힘든 것이더라도 해야한다는 철학을 가진
엄마가 나를 키웠다. 그 백업으로는 가치를 따지지 않고
그저 용감한 두 여자를 지켜내겠다는 소나무같은 아빠가 서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네 최초로 유치원을 자발적으로 중퇴하고 주산학원에 다닌 꼬마였고 피아노 학원에 가서 실습은 안하고 이론만 배우는 희한한 학생이 되었다.
자라며 사소한 일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래도 남눈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모범생 딸이었다.
거짓말같은 도덕적인 관점에서 잘못을 하면 무지막지 혼났지만 그 후엔 언제나 같이 울면서 가슴을 맞대고 심장뛰는걸 느낄 수 있을만큼 꼭 껴안아 주셨다
의도치 않았던 실수에 대해서는 혼난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세대에 비해 남 눈치 덜보고 그저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
하고싶은 말은 하면서 대신에 뱉은 말에 책임은 지는 사람으로 살았다.
물론 내가 좀 더 눈치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덜 당당하고 권세에 조금 굽힐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지금보다는 더 안락한 삶을 살았을지 모르겠다.
며칠전에 사장님 앞에서 쌓였던 말을 거침없이 하는 날 보고
선배들은 단단히 미쳤구나 생각했다지만
말 한번 못해보고 우물쭈물한 스스로를 견디기 힘든 사람이 나다. 입다물고 있었으면 조용히 지나갔을 일인데
그때 가만히 있지 못해서 요며칠 계획에 없던 사업 보고서를 써내느라 사서 고생을 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몸보다는 마음이 편한 사람이
되길 바라셨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살고 있다.
몹시 피곤해서 오히려 잠 못드는 날이다.
그래도 나를 금명이처럼 키워준 부모님께 새삼 감사한 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