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이었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심각' 단계였던 때다.
당시, 코로나19는 갓 초보 부모였던 우리에게 크나큰 시련을 안겨 주었다. 아내는 재택근무를 허용하지 않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주로 내가 재택근무를 하며 아이를 돌보았다. 재택근무를 하며 영아기 아이를 돌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감사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에, 누나까지 온 가족이 발 벗고 나서서 육아를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이었다.
얼마 후 회사 출근과 함께 직장 어린이집이 재개되었다. 집에서 회사까지 편도 한 시간 거리를 매일 아이를 데리고 출퇴근했다. 그러한 어려움마저도, 일하는 동안 마음 놓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어서 감사할 뿐이었다. 다만, 원아 감염, 부모 감염, 동거 가족 감염, 교직원 감염, 감염자의 밀접접촉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유로 어린이집 긴급 폐쇄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그럴 때면 나는 일하다 말고 급히 퇴근하여 아이를 하원한 후, 코로나19 검사 대기 줄에 서야 했다. 덕분에 아이는 면봉으로 코를 찌르는 것에 트라우마에 가까운 공포가 생겼다.
그렇게 약 2년 반이 흘렀다. 이 긴 기간을 고군분투하며 보냈더니,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버린 느낌이었다.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났고, 극히 예민해졌다. 혼자 가만히 있다 보면 자꾸 생각도 마음도 우울해져 갔다. 지인들에게 이러한 심리적 피로감을 털어놓았더니, '번아웃'이 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제주 한 달 살기'를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내게는 마침, 한 달의 안식 휴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 휴가로, 완벽한 재충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함께 떠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내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떠나기로 했다. 그것도 아이를 데리고. 지금의 내 피로감은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때문이므로, 오로지 휴가만 보내는 것이라면, 아이와 단 둘이어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떠날 그곳을 '제주'로 정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로 가는 것은 언감생심 떠올리지 못했지만, 제주도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우리는 그즈음해서 제주도로 짧은 여행도 다녀왔었기에, 마음에 더욱 확신이 섰다. '아이와 단 둘이 한 달 살기',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목표로 하는 시점은, 1년 뒤인 2023년 5월 말이었다. 제주의 날씨는 5-6월이 가장 좋아서였다.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군자는 복수를 위해 10년을 기다린다'라고 했던가. 코로나19로 인한 나의 심리적 그로기에 대한 복수는, 지금으로부터 1년 후로 결정했다.
그때부터 숙소 검색이 시작됐다. 리브애니웨어, 미스터 멘션, 에어비앤비, 아고다, 네이버 카페 등 갖은 숙박 사이트를 다 뒤져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숙소가 비싸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코로나19로 제주도 여행객이 폭증했다고 하더니, 숙소 가격도 렌트 가격도 모두가 어마어마한 가격들이었다. 같은 직장 동료는 150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한 달을 살고 왔다고 했는데, 내 입맛이 까다로워서 그런 것일까. 묵고 싶은 숙소의 가격을 보면 4-500은 쉽게 넘어가는 가격이었다.
숙소를 계속 검색하며, '이게 맞나'를 계속 중얼거렸던 것 같다. 한 달 살기를 할 거면, '독채에 마당이 있는 숙소로 꼭 해야지' 생각하며, 아내에게도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막상 가격을 보고 나니 자꾸 흔들리고 만다. '해변가 빌라의 원룸 혹은 해변과는 거리가 먼 아파트로 타협해야 하나' 하고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제주 동부를 검색했다, 북부를 검색했다, 서부, 그리고 남부까지 검색하며, 혹시나 내가 못 본 숙소가 있을지 읍 지도를 확대해 가며 가성비 숙소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이상과 현실 속의 괴리에서 번민하며, 사이버 세상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적당한 가성비의 숙소를 결정하였다. 아내가 묵어보고 싶은 곳 한 곳(서귀포), 내가 묵어보고 싶은 곳 한 곳(세화)을 골랐다.
이때 내가 숙소를 찾아 헤매며, 습득했고 참고했던 주요 정보들은 다음과 같았다.
- 한 달 살기 숙소는 2곳으로 나눠서 하는 게 좋다. 동/서 나눠서 2주씩 사는 것을 추천한다.
: 한 곳에만 있으면 지루하기도 하고, 제주 전체를 돌아보기 어렵다.
- 해변가에, 독채에, 마당이 딸린 숙소는 최소 하루 15만 원이 넘는다.
: 위 조건을 포기하면, 한 달 150만 원 미만 숙소도 많다.
- 켄싱턴 리조트는 꽤 괜찮은 가성비의 한 달 살기 숙박 패키지를 제공한다.
: 다만, 나는 독채 숙소를 원했으므로 패스.
- 제주 북부는 파도가 약한 편이라, 아이와 가기 좋은 해수욕장이 많다.*
: 그래서 나의 로망인 해변가 독채 숙소는 반드시 북부에서 예약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금능/협재/함덕 근처엔 독채에 마당이 있으며 저렴한 숙소는 없다. (내가 못 찾은 걸 수도?)
- 제주도엔 병원이 '제주시'와 '서귀포시' 두 곳에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제주 북부인 '제주시'에 더 많다.
: 어린아이와 한 달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병원 위치도 미리 알아두어야 했다.
그렇게 숙소를 고른 시점이, 무려 한 달 살기 여행의 목표 시점의 11개월 전이었다. 파워 J 부부는 미리 이들 숙소의 예약을 확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누가 먼저 채갈까 염려되었다. 그리하여, 아직 숙소 예약을 받지도 않은 이른 시점에 호스트에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숙소 예약을 하려고 하는데요."
"언제로 알아보고 계신가요?"
"내년 5월입니다."
"예약하기는 너무 이른 것 같네요."
난감을 표하는 호스트에게, 미리 숙박비 전액을 완납을 하겠다며 설득했다. 나중에 가서 취소할까 염려된 호스트는 주저주저했지만 결국 수락을 하고 말았다. 그렇게 나는 제주 한 달 살기를 하겠다며, 1년 전부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제주 한 달 살기 숙소를 예약했을 때만 해도, 벌써 마음이 싱숭생숭했었다.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가슴이 설레었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상이 반복되자 내 마음은 다시금 지쳐갔다. 쉽게 화가 나고, 쉽게 우울해졌으며, 쉽게 화를 밖으로 표현했다. 문제는 그 대상이 내 아내와 아이였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생각도 나지 않는 작은 일들로 화를 냈다. 아직 사리분별이 명확히 되지 않는 4살 아이를 상대로 화를 내고, 그 화에 못 이겨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냈다.
중간에 찾아온 어깨 부상도 한 몫했다. 한창 캠핑하는 재미에 열을 올리려는데 찾아온 어깨 통증.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안아 버릇했었다. 그로 인해 오른쪽 어깨 근육이 손상된 상태에서, 캠핑을 한답시고 어깨 근육을 과하게 사용했더니 결국 크게 손상이 간 모양이었다. 가만히만 있어도 손이 저리고 어깨에 통증이 왔다. 정형외과와 신경외과에 밥먹듯이 다니며, 돈을 갖다 바쳤다.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어깨 통증도 내 우울감에 한몫을 했다.
서글펐다.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아내와 아이에게 푸는 것 같아, 내 모습이 싫었다. 우울감은 나를 지배했다. 아내는 나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애썼지만, 그 역시 지쳐가는 것 같았다.
그럴수록 나는 2023년의 5월을 기다렸다. 마치 그때가 되어야 이 마법이 풀릴 거라 믿는 듯이.
*제주도 북부 파도가 약한 이유
: 제주도의 북부 지역은 한라산의 영향으로 바람과 파도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며, 상대적으로 바다의 상태가 안정적이고 파도가 잔잔한 편입니다. 특히 제주시와 함덕해수욕장 같은 북부 해안은 남부에 비해 파도가 약합니다. 반면, 제주도의 남부 지역은 바람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파도가 강한 편입니다. 서귀포시나 중문해수욕장 같은 남부 해안은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 파도가 더 높고 거칠 수 있습니다. (출처: 챗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