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제주 여행의 시작 날이었다. 제주는 1년 만이라 공항버스를 타는 것도 떨렸고, 비행기 타는 일은 더더욱 설렜다.
다만,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제주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들었다.
'공항버스 안에서 아이가 쉼 없이 크게 이야기를 종알거리면 어쩌지.'
'비행기 안에선 좁은 좌석에서 옴짝 달싹을 못한 채 가만히 1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는데, 아이가 과연 가만히 있어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는 자동차를 타면 항상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 달라 조르곤 했다. 노래를 듣지 않는 동안엔, 엄마 아빠와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다. 차 안에 있는 동안엔 사운드가 비는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조심성 많은 이 부모들은 겨우 한 시간 남짓 비행에도 다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아이는 조용한 버스 안에서 에티켓을 지켰다. 스쳐가는 풍경을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그러다 조용히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보며 아내와 나는 서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물론 공항에 도착해서는 아이가 다시, 우다다다 활개를 피며 이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아이는 생각보다 더 여행의 시작을 잘 즐겼다. 그리고, 우리의 긴장된 마음은 조금씩 풀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사달이 일어났다. 제주행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아이가 사라진 것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비행기가 도착했고, 탑승 게이트 입장 줄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성질 급한 나는, 내가 먼저 줄을 서 있을 테니 아내와 아이는 의자에 앉아 있으라 했다. 줄이 많이 줄어들면 전화하겠다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그런데 아이가 저도 같이 따라가겠다며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와 함께 줄을 서서, 조금씩 앞으로 가기를 얼마여. 아이는 금세 지루해졌는지, 엄마에게 가겠다고 했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니, 아내 앉은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잠깐 사이 줄이 꽤 많이 이동했었나보다. 줄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아내에게 가야 할지, 아이만 보내도 될지 마음속에서 갈등이 피어났다. 잠깐의 고민 끝에, 아이를 홀로 아내에게 보냈다. 짧은 거리니까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아이는 아빠의 허락을 받자마자, 엄마가 있는 곳으로 우다다다 달려 나갔다. 그리고 한참을 돌아오지 않았다. 문득 불안해진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OO이 거기 갔어?"
"뭐?? 여기 안 왔는데?"
"뭐라고??"
아이가 오지 않았다는 아내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길게 섰던 줄을 이탈하여 밖으로 나왔다. 캐리어를 한쪽에 우두커니 세워두고, 주위를 살폈다.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지만, 여전히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공항을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아이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쳐 불렀다. 주변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우리를 돌아보았다. 제발 이 외침을 듣고 누가 아이를 좀 찾아줬으면 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계속 외쳐댔다. 그럼에도 아이의 대답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탑승 마감 시간이 점점 다가왔다. 곧 있으면 비행기에 못 탈 시간이었다.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제주 한 달 살기 여행을 하러 나와서, 비행기 타기도 전에 여행이 이렇게 끝나나'
마음속에서 어두운 생각들이 밀려왔다. 이곳저곳을 뒤지며 계속 아이의 이름을 불러댔다. 그리고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탑승 게이트 앞의 승무원분들에게 달려갔다.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방송을 좀 해주실 수 있는지 물었다. 그렇게 공항 내 방송이 울려 퍼지려는 찰나,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찾았어!"
"어디서 찾았어?"
"내가 막 찾고 있는데, 저쪽에서 걸어오고 있었어."
방송을 취소하고, 허둥지둥 아내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저 멀리 아내와 아이가 보였다. 이미 줄은 다 줄어서 탑승 직전의 시간이었다. 아이에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엄마를 찾아 달려 나가다가 한 블록을 더 가버렸다고 했다. 공항 안의 탑승게이트와 의자들이 비슷비슷하게 생겼다 보니, 아이가 혼동을 한 것이었다.
"엄마아빠 안 보여서 무섭지 않았어?"
"무서웠어."
아내의 말을 들으니, 그래도 울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아이마저 놀라서 울고 있었다면 더 속상했을 것 같았다. 공항 안이니, 아이를 잃어버리진 않겠지 하면서도 동시에 아찔했던 경험이었다.
마침내 제주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차는 제주 공항의 장기 주차장이라는 곳에 세워져 있다고, 탑송업체로부터 문자가 왔다. 매번 렌터카만 이용했지 탁송은 처음이었다. 장기 주차장이라는 곳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장기 주차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렌터카 주차장은 공항을 나와서 바로 앞이었는데, 장기 주차장은 한참을 가야 하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걷는데 주차장이 나오질 않았다.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이 길인가, 저 길인가 참으로 알쏭달쏭했다. 그와 더불어, 아이가 벌써부터 투덜댔다.
"다리 아파! 못 걷겠어!"
"그러면 아빠가 차를 찾아올 테니, 엄마랑 넌 여기서 쉬고 있어~"
혹시 갔는데 잘못 간 거면, 이어 터져나올 아이의 짜증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아내와 아이에게 캐리어를 맡기고, 아마도 장기 주차장으로 보이는 저쪽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보니, 혼자 걸어오길 잘했다 싶었다. 꽤 먼 거리였다.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차들이 나를 반겼다. 차키를 계속 눌러대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삐빅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차가 서있었다. 제주에서 내 차를 보게 되다니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반갑게 차문을 열고 좌석에 앉으니 찜통더위였다. 창문을 황급히 열고 아내와 아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내 아까 헤어진 그 곳에 도착하여 아내와 아이를 태웠다. 아내와 아이도 제주도에서 우리 차를 만나니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친숙한 우리 차를 다시 만나자, '드디어 본격적인 여행 시작이구나' 하고, 우리의 마음도 다시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파아란 하늘과 익숙한 운전대, 그리고 트렁크에 실린 든든한 한 달 살기 물품들까지. 김포 공항에서의 한차례 해프닝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이 정도면 시작이 나쁘지 않은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