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숙소로 옮겨온 후에도, 아이와 나의 하루 일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8-9시쯤 혼자 일어나 어제 있었던 일과 사진을 정리했고, 아이는 오전 10시 넘어서 느지막이 깼다. 둘이 아침을 먹다 보면 어느새 12시였다. 씻고 빨래 돌리고 설거지하고,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여 나갈 준비를 하면, 벌써 2시였다. 어차피 하루 한 곳 정도만 가보자 하고 마음을 여유롭게 먹은 터라, 오후 늦게 시작한 일정에 조바심이 나진 않았다. 그렇게, 제주 동쪽부터 서쪽, 그리고 북쪽까지. 우리는 서귀포를 근거지로 삼은 게 무색할 정도로, 이곳저곳을 쏘아 다녔다. 어차피 길어야 한 시간 반 정도면 어디든 갈 수 있었기에 마음은 편했다.
숙소를 나가기 전에는 빨래를 한 아름 안고 건조기가 있는 주인집 베란다에 들렀다. 하얀 빨래 바구니에 젖은 빨래를 가득 담고 나갈 채비를 하면, 아이는 자기가 건조기 버튼을 누르겠다며 부리나케 쫓아오곤 했다. 원래 집에서야 빨래는 항상 아빠의 전유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아빠와 아이가 함께 하는 놀이가 되었다. 그렇게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면, 오늘 외출을 위한 '준비 끝'이었다.
이날도 느지막이 그렇게 나가서, 한 곳을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런데 숙소 현관문을 열어 보니, 건조기에 넣고 돌렸던 빨래들이 마루에 수줍게 놓여 있었다. 수건과 속옷, 양말까지, 차곡차곡 개어져 아주 얌전한 모습으로. 조금 당황스러웠다. 속옷이 개어져 있음에 더더욱. 게다가 문을 잠그고 갔음에도 이렇게 다른 사람의 출입이 자유롭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이러면 현관 비밀번호는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주인 할머니가 나를 볼 때마다 짠한 얼굴로 보시던 게 떠올랐다. 그러자 뭔가 이해가 된다. 황당함과 함께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숙소에 난데없이 우렁각시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후로도 외출하고 돌아오면, 비닐봉지에 담긴 떡이 마루에 놓여 있는 등 우렁각시의 흔적이 종종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