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뀨어라운드 Aug 23. 2024

제주 여행 중 회사 동료의 연락

진짜 연락이 올 줄은 몰랐어


제주도로 한 달 살기 휴가를 떠난다고 했을 때, 회사 옆 팀 동료 한 명이 말을 건네왔다.


“저도 그때 제주도 가는데. 연락할게요~”

"네~ 그래요~"


나는 그 말이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말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말 연락을 해올 줄이야. 아이와 둘이 한 달 살기로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카톡으로 메시지가 왔다.


- 숙소가 어디세요? 저흰 산방산 근처에 숙소를 잡았는데, 거리가 괜찮으면 만날까요?


극 I인 나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여행 중이라 그런지, 아이와 단둘이 매일매일을 소화하기가 버거워서 그랬던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평소라면 내키지 않았을 텐데도, 그러자는 말이 잘도 나왔다. 연락 온 동료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2주간 여행을 왔다고 했다. 마침 우리 아이보다 한 살 많은 아들이 있어서, 같이 놀게 하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우리는 둘 숙소 사이에 위치한, 사계 해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나마 해변의 물살이 약해서, 아이들이 놀기 좋을 것 같았다.


평소 회사에서 딱히 사석에서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 만남이 즐거울까? 그렇지 않을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만 각자 에너지 넘치는 아들이 한 명씩 있으니, 그 둘을 만나게 함으로 족하리라 생각했다.


사계 해변에 먼저 도착한 우리는, 강한 바다 바람에 머리가 산발이 되며 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동료와 동료의 아내, 아이가 도착하는데, 내 산발된 머리로 창피함이 곤두섰다.


아이들은 둘을 붙여 놓으니 서로 쭈뼛쭈뼛했다. 각자 챙겨 온 모래 놀이 도구를 가지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우리 아이는 작은 삽으로, 동료네 아이는 커다란 삽으로. 이제 생각해 보니, 새삼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넌 얼마 전 태국 여행에서도 큰 삽을 사 달라 했지… 하지만 아빠는 사주지 않았지.


처음엔 서로 말도 잘 안 하고 어색해하더니, 파도 앞에선 아빠들끼리의 과장된 액션에, 점차 마음을 여는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금세 친해져, 밀려나가는 파도를 쫓아, 같이 손잡고 우다다다다 뛰었다가, 다시 또 밀려들어오는 파도에, 우다다다다다 달려오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파도 쫓아가기 놀이를 몇 번 하다가, 아이들이 본격적인 모래놀이를 시작했다.



튀어나온 돌부리 근처에 자리를 잡고, 그 주변을 모래로 성벽을 쌓았다. 바닷물이 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파도가 한번 칠 때마다, 모래가 뭉텅이로 쓸려나간다. 그러면서도 서로 쫑알쫑알.


”빨리 막아 막아! 물 못 들어오게 해!“


마치 비장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군인들 마냥, 서로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내리며 모래 성벽을 무한히 반복하며 쌓는 모습이다. 이 정도면, 이번 만남은 대성공이었다. 아이 둘의 화합에, 내친김에 나는 저녁식사까지 제안을 했다. 이번엔 동료가 당황한 듯했다. 니가 처음 연락했을 땐 나도 그랬어 인마…


그렇게 두 가족 저녁 모임이 결성되고,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까지 즐겁게 이야기하고, 또 장난을 쳐댔다. 그 후로 다시 모임을 가져본 적은 없었지만, 회사 동료와 뜻하지 않은 만남이었음에도, 훌륭한 추억이 되었다.


아이는 지금도 종종, 이 날 동료네 아들로부터 배운 ‘무한’ 이란 개념에 대해, 각종 상황에서 써먹고 있다.


“나 엄청 속상했어! 아빤 얼마큼 속상했어?”

“아빠? 이천 오백 사십오만큼”

“나는 무한 더하기 오백만큼 속상했어! 내가 더 속상해!”


그냥 이따만큼 되따많이의 의미냐…

뭐가 됐든 새로운 만남이 아이에게 또 하나의 추억과 지식을 쌓아준 셈이다. 이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이전 15화 아이도 돌봐주는 제주도 고깃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