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단 둘이 하던 여행은 어느새 종반부로 접어들었다. 아이와 나는 여전히, 아침 10시가 넘어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늦은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하면 어느새 오후 2시가 되는 느림보의 삶을 매일 살았다. 그리고 어느새 짧고도 긴 둘 만의 여행을 끝낼 시간이 찾아왔다.
제주 서귀포 숙소를 떠나기 이틀 전 즈음에는 아이의 친할머니(이자 나의 어머니가)가 이 여행에 합류했다. 아이의 엄마 대신 친할머니가 오자, 서귀포 숙소의 주인 할머니는 다시 한번 나에게 묘한 눈길을 주셨다. 어머니도 그런 눈길을 느끼셨는지, 주인 할머니와 인사하며 괜한 말을 덧붙이셨다.
"애 엄마는 내일 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다음날, 아내가 추가로 합류했고, 그제서야 주인 할머니의 오해도 풀리는 듯 했다. 우리가 다시금 완전체 가족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와 아내가 합류하자,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으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차를 끌고 금능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금능 해수욕장은 서귀포 숙소에서 거리가 꽤 있었지만, 그간 아이와 한 달 살기 속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 중 하나였다. 다만 주차가 헬이라 아이와 단 둘이 가기에는 항상 어려움이 있었는데, 이번만큼은 지원군이 둘이나 있어 마음이 가벼웠다.
약 한 시간을 달려 금능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역시나 해수욕장 앞의 주차장은 차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아내, 아이를 먼저 내려주고는 편한 마음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마음이 편한데 운마저 따라서, 금세 빈자리를 찾아냈다. 나는 기분 좋게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제주 한 달 살기 중 벌써 세 번째로 찾은 금능 해수욕장은 이번에도 역시 천국이었다. 지난 두 번의 방문도 좋았지만, 이번은 특히나 더 좋았다. 이제 여름이나 다름없는 햇살과 더위 속에서, 바닷물은 차갑기보단 따뜻했다. 따뜻한 바닷물이 아주 얕고 넓게 깔려서 저 멀리 까지 황금빛 모래를 머금은 바닷물이 금빛을 반짝이니, 아이와 물놀이를 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완벽했다.
한창 놀이하는 와중에 썰물로 바닷물이 점차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군데군데 모래섬이 생겨났다. 그와 함께 해수욕을 즐기던 사람들은 점차 더 멀리 까지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모래놀이 도구를 하나씩 들고는 바다 탐험을 나섰다. 걷다 보니, 모래섬 하나를 차지하고는 기다란 삽과 양동이로 열심히 모래를 파내어 커다란 구덩이와 성을 만드는 가족이 보였고, 발목 밖에 안 오는 바닷물에 굳이 튜브를 가지고 들어와 몸을 담그고 노는 아이들도 보였다. 내가 행복하니 모두가 행복한 얼굴로만 보였다.
아이와 제주 해수욕장을 간다면, '금능 해수욕장'을 반드시 가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는데, 그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초여름의 금능 해수욕장은 너무나도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곳이었다.
금능 해수욕장에서 꿈만 같던 하루를 보낸 후, 우리는 호텔로 숙소를 다시 한번 옮겼고, 그곳에서 짧은 일정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엔 누나와 조카까지 합류하여, 처음 제주로 올 땐 셋이었지만 집에 갈 땐 그 두 배인 여섯 명이 함께 돌아왔다. 이렇게 많은 가족이 다 함께 움직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 여행을 가봤자, 아이는 기억을 하나도 못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이와 단 둘이 여행을 할 거라는 계획엔 다들 우려를 표했다. 아내와 둘이서 아이를 돌보는 것도 그리 힘들어하면서, 둘이서 괜찮겠냐는 걱정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을 결정했고, 중간의 고비에도 불구하고 계획했던 마지막 일정까지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하자,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놀라셨다. 한 달 사이에 우리 아이의 말과 행동이 너무나 성숙해졌다고. 그러자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빠와 단 둘이 특훈 한 효과가 있구나 하고.
이제는 1년 하고도 3개월이 더 지난 이 시점에서, 나는 아이에게 종종 묻곤 한다.
"작년 제주 여행, 기억나니?"
그럴 때면 아이는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는 듯 코웃음을 치며 대답한다.
"당연하지! 거기서 내가 엄청 큰 모기도 잡았잖아!"
미안. 아빠는 사실 그건 생각이 안 나.
하지만, 너와 내가 기억하는 것이 달라도 괜찮아.
우리, 즐거웠잖아. 그치?
5살 아이와 함께 한 제주 한 달 살기의 에세이는 여기 까지입니다.
내일은 마지막으로, 제주 한 달 살기 동안 아이와 방문 했던 제주 이곳 저곳을 담은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동안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