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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어라운드 Sep 04. 2024

제주에서, 따로 또 같이

상어 가족 이야기


제주에서 아이와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우리는 차를 참 많이 탔다. 제주 자체가, 차가 있어야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나는, 그가 2살 때부터, 집과 직장 어린이집을 차로 오가며, 긴 시간을 함께 한 전우였다. 겨우 1시간 내외의 거리 정도는 단 둘이 다니기도 전혀 부담이 되지 않았기에,  더더욱 열심히 돌아다녔다. 그런데 매일 긴 시간을 차에서 보내면서도, 지루할 틈이 별로 없었다.


그 비결은 바로 ‘상어 가족 놀이’였다. 당시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 상어였는데, 아람 자연이랑 전집 중 상어 책은 종이가 너덜너덜해지고 찢어질 만큼 많이 봤었다. 게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진짜 진짜 재밌는 바다 이야기라는 책을 접하면서, 아이는 각종 바다 상어들의 도사가 되었다.


이런 상어를 소재로, 차 안에서 놀이를 시작했으니, 바로 상어 가족 놀이다. 아이는 메가마우스 상어 부인이 되었고, 나는 남편이 되었다. 아이가 가져온 인형들은 아기 메가마우스 상어들이 되었다.


“여보~ 아기들이 배가 고픈가 봐요. 배고프다고 난리예요.”

“알았어 여보. 내가 물고기를 잡아올게”

“고마워요 여보”


집에서 나는 아내와 여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아내를 부르는 칭호는, 이름 혹은 엄마였다. 그리고 나를 부르는 칭호는 오빠 아니면 아빠였다. 그럼에도 어디서 여보란 표현을 배워왔는지, 아주 자연스럽게 ‘여보~여보~’ 거렸다. 차 안에서 가만히 1시간을 보내는 것은, 좀이 쑤시는 일이라, 아이가 만들어낸 이 엉뚱한 놀이에, 옳다쿠나 하고 얼른 동참했다.


“여보, 아이들이 자꾸 화를 내요. 어쩌죠?”

“저런 안 되겠네.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주세요.”

“얘들아~ 말 들어야지!”

“네! 엄마!”


그런데 웃기게도, 이 역할 놀이의 주된 레퍼토리는, 아기 상어들에 대한 훈육과 교육이었다.


“밥 좀 잘 먹어라”

“화가 나도 말로 해라”

“양치질 잘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아이에게 늘 하던 말들을, 아이는 되려 인형들에게 훈계를 늘어놓았다.


“여보~아이들이 말을 안 들어요. 에휴.”


하며, 아이는 마치 벌써 어른이 된 것처럼, 그리고 부모가 된 것처럼 행동했다.

(물론 그러다 금세 토라지고, 화내기도 했다.)


이렇게 한창 놀이하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도, 들려주지 않고도, 차에서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와 내가 이렇게 차 안에서 즐겨했던, 상어 가족 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었다. 아이는 엄마를, 나는 아내를, 떠올리는 시간이었다.


제주 오기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뒷자리에는 늘 아내가 앉아서, 아이와 재잘재잘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스스로 엄마가 되고, 아이의 인형들이 아이가 되었다. 아내는 지금 여기 없지만, 그래도 아이와 나는 여전히 아내와 함께 여행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따로, 또 같이


아이와 나는 오후 내내 제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오곤 했는데, 매일 저녁 9시에는 아내와 영상통화를 하곤 했다. 대개 밖에서 놀다가 집에 들어와, 씻고 저녁을 먹은 직후였다. 그 말인즉, 내 체력이 거의 바닥 날 즈음이란 이야기다.


잠시 좀 쉬고 싶다는 아빠의 마음과 아직 에너지가 남아 있는 아들의 놀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일으키는 시점이다. 아내에게 영상 통화를 걸면, 아내는 머리에 수건을 말아 올린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휴대폰 화면에 엄마가 보이는 순간, 아이가 외쳤다.


“엄마!!!!”


그러면 아내도 빙그레 웃으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부터는 이 둘만의 시간이었다. 탁자 위에 휴대폰을 세워 놓고, 아이와 아내가 재잘재잘 수다를 떨어댔다. 오늘은 뭘 했고, 지금은 뭘 하고 있고, 어쩌고저쩌고.


그러다가 아이는 꼭, 아내에게 책을 읽어달라 했다. 당시 아이가 좋아하던 스파이더맨 영어책을 (아주 얇고, 글밥이 적은 입문 책이다) 제주로 오면서 8권 중 3권 정도만 들고 왔는데, 그 책 말고 집에 놔두고 온 책이 보고 싶단다. 아내는 책 읽어주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면서도 결국엔 아이의 부탁을 들어주곤 했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아쉬웠는지, 화도 내지 않고 “그래~그래~” 하며, 마음을 읽어주는 다정한 엄마였다.


이 시간은 우리 세 가족에게 있어,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었다. 아내와 아이는 보고 싶던 서로를 작은 화면으로나마 보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 수 있었고,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간 직후 한 달 살기의 초반,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다며 자주 울었었다. 마음 잘 읽어주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이 하게 해주는 엄마. 그런데 ‘안돼’, ‘하지 마’라고 말하는 아빠와만 있게 되니, 작은 일로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이유 없이 화내다, 대성 통곡하며 우는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며칠이나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곧 다시 이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서로 조금씩 포기하고, 또 서로를 이해하면서. 또, 낮에는 아내를 흉내 낸 상어 놀이를 했고, 저녁에는 아내와 영상 통화를 하면서.


이렇게 아이와 단 둘만의 여행 속에서도 우리 세 가족은 함께였다. 따로, 또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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