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숙소로 옮기고 얼마 안 돼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학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는데, 마침 그의 제주 여행 일정이 나와 겹쳤다. 그래서 “제주 가면 한번 보자” 했었는데, 그때가 된 것이었다.
전화 상으로, 아이가 망고를 좋아하냐고 대뜸 묻더니, 망고 한 박스를 들고 밤늦게 숙소로 찾아왔다. 무려 판포포구에서 서귀포까지 밤길을 한 시간이나 달려온 것이었다.
아이는 이 삼촌이랑은 1살 때 보고, 그 후로 처음 보는 건데도,
”삼촌 삼촌~“ 하며 금세 친해졌다.
그러던 와중, 친구가 지친 내 얼굴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더니, 잠시 쉬라면서, 아이를 대신 씻겨주겠다고 한다. 오늘은 나도 몸이 힘들어서, 아이를 안 씻기고 그냥 재울 생각이었다. ‘뭐 집도 아닌데 매일매일 씻을 필요 있어?’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괜찮다고 괜찮다고 하는데도, 녀석은 아이가 샤워를 해야 푹 잘 수 있다며 한사코 아이를 욕실로 데려갔다.
‘이래도 되나?’ 싶어서 방안을 서성거리는데, 친구와 아이가 씻고 나온다. 고마운 마음에, 망고를 박스에서 꺼내어 잘라 주려고 하는데, 내가 들고 있던 과도 마저 빼앗아간다. 그리고는, 망고를 먹기 좋게 잘라내어, 아이와 내게 내밀기까지 한다. 오늘 이 무슨 호강인가.
그리고 잠시 후, 친구는 또 밤길을 1시간을 달려 숙소로 돌아갔다.
어제 만났던 친구에게 연락하여, 어제 네가 먼 길을 와줬으니, 이번엔 우리가 간다고 했다.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길을 가르쳐 줘서, 이상한 길로 잘못 드는 바람에 바위에 차가 살짝 긁히는 상황도 발생했지만, 어찌어찌 협재 옆 판포포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친구네 아내와 아이를 아이에게 소개해 주니, 금세 “이모”,“누나” 부르며 친해진다.
우리아이는 평소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금방 친해지는 모습을 보니, ‘부모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이도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금방 저녁이 되어, 친구와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 먹으러 나섰다. 협재 가는 길목의 생선 구잇집에 도착해, 각자의 아이를 옆에 끼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이들을 데려온 이상, 이 저녁 식사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그런 정신없는 저녁식사가 될 것임을 각오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아이들이 서로 마주 보고 밥을 먹게 되니, 밥 안 먹기로 유명한 우리 아이가 밥을 먹는다.
“밥 안 먹으면 간식 없다!”
라고 말하면,
“그럼 간식 안 먹을게!”
라고 말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고 친해진 누나와 한 식탁에 앉게 되니, 밥을 아주 잘 먹는다. 매번 숟가락에 밥을 떠서, 입에 넣어줘야 그제야 우물우물 먹던 아이가, 스스로 숟가락을 들고 밥을 가득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누나한테 질 수 없지!” 하며, 밥을 입속에 와구와구 넣는다. 고등어도 간장에 찍어서 냠냠, 밥도 한 숟가락 냠냠. 덕분에 나도 밥이 술술 들어갔다.
문득, 형제가 여럿인 집에서는 아이들이 다 밥을 잘 먹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안 먹으면 뺏기기 때문에, 경쟁 심리로 밥을 잘 먹는다는 것이었다.
‘아… 이래서 형제가 있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둘째?
나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난 후, 바로 옆 금능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저물어가는 해 아래에서, 바지를 걷고 바닷가 얕은 물속을 첨벙첨벙 걸었다. 아이들은 옷이 물에 젖는 것도 개의치 않고, 물장구와 물고기 잡기에 혈안이 됐다.
다행히, 저녁임에도 물은 따뜻했다. 이리저리 빠르게 헤엄쳐 다니는 송사리들을 따라다니며, 제주에서 조우한 두 친구와 그의 가족들은 기분 좋은 저녁을 보냈다.
낯선 곳에서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그것도 오래 함께한 친한 친구를 만난 다는 것은, 이처럼 특별히 더 반갑고, 기분 좋은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