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둘이 한 달 살기를 하다 보니, 매일 하는 루틴이 생겼다. '제주 아이와 가볼 만한 곳' 검색하기다.
'오늘은 또 뭘 하지, 내일은 또 뭘 하지.'
'아침밥은 뭘 먹지, 점심 저녁은 어떻게 하지.'
이건 정말 희대의 난제다. 매일 블로그 후기를 검색하며, 아이와 같이 가볼 만한 곳을 검색했다. 후기가 괜찮은 곳은 네이버 지도 앱에 관심 장소로 저장을 하고, 한 곳 한 곳 도장 깨기 하듯이 탐방을 시작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운 '렛츠런파크 제주'였다. 그곳에 가면 조랑말에게 먹이 주기를 할 수 있다고 했고, 무료로 승마 체험, 자전거 체험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엔 거대한 스케일의 야외 대형 바운스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회원 가입을 하면, 입장료 무료 쿠폰까지 보내준다고 하니, 부담 없이 하루 종일 시간 보내기에 괜찮아 보였다.
예전에 마사회에 근무하는 친구의 덕으로, 과천 경마장의 VIP실에서 경마 게임 구경을 한 적이 있었다. 1-2만 원 정도를 걸었던 것 같은데, 금방 돈이 휴지 조각이 되었었다. 순식간에 끝나버려서일까. 그래서 그런지 경마 게임에 대해 그리 큰 감흥은 없었다. 다만 공원이 참 잘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 정도. 그 기억은 10년을 지나, 제주에서 이어졌다.
'렛츠런파크 제주' 주차장에 12시쯤 도착하니, 차들이 벌써 가득이었다. 그러나 워낙 부지가 큰 덕분에, 조금만 돌아보니 자리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다. 어렵지 않게 주차를 하고, 쨍 내리쬐는 햇볕을 가려주기 위해, 아이에게 모자를 씌워주었다. 주차장이 워낙 크다 보니, 입구까지 걸어가는 것도 한참이었다.
입구에 도착하여, 어제 인터넷으로 회원 가입한 후 받았던, 무료입장 쿠폰 문자를 보여주고 게이트를 넘었다. 다들 삼삼오오 가족끼리 온 모습이다. 유모차를 끌고, 킥보드를 끌고, 엄마 아빠들은 양손에 짐이 한가득이다. 입구를 통과하니,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우리를 반겨줬다. 곳곳에 말 모양의 조형물들이 서있는 것이, 역시 경마공원이구나 싶었다.
조금 더 들어가니, 목책과 그 안으로 어슬렁어슬렁 거니는 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는 목책에 기대어, 말을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우다다다 내달렸다. 아이는 커다란 돌하르방에게 달려들어 입에 손을 넣더니, 씨익 미소 지었다. 조금 더 가니, 말먹이 주기할 수 있는 곳이 나왔다. 그 바로 옆 컨테이너 부스에서, 당근 꼬치를 파는데 카드 결제는 되지 않고 현금만 받고 있었다. 현금 인출기를 찾아보니 도처에 깔려 있다. 역시 경마장이 있는 곳 다웠다. 만 원을 뽑아 당근 꼬치를 5개 샀는데, 5개에 불과 1천 원밖에 하지 않았다.
'체험 농장에 갔으면 당근 5개 사는데, 2-3천 원은 줬을 텐데...'
이 정도면 혜자다. 아이는 당근 꼬치를 양손에 들고 해맑게 웃으며 말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조심조심 다가가는 아이와 다르게, 말은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입을 쫙 벌리고 게눈 감추듯 당근을 먹어버린다.
너무 빨리 당근이 없어지는 모습에, 아이는 어리둥절하지만, 양손에 당근이 아직 남아 있으니, 덤덤하게 나무 꼬치를 스테인리스로 된 꼬치통에 꽂아 넣고, 다시 말에게 다가가 당근을 입에 넣어준다. 말이 원래 그런 건지, 이곳 말들이 배가 고픈 건지, 당근 꼬치 5개가 정말 순식간에 사라졌다.
말먹이 주기에 현금이 순삭 되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적당한 선에서 끊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조금 걸으니, 넓은 트랙 운동장이 나타났다. 트랙의 출발점에서는 렛츠런파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보조 바퀴 달린 네발자전거들이 모여있었다. 관리 직원은 따로 없었고, 자유롭게 원하는 자전거를 타고 다시 이곳에 세워놓고 있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또 이용하고의 반복이었다. 또 한쪽에서는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는 마차 형태의 가족 자전거가 있었다. 이곳에 왔던 큰 목적 중에 하나가, 아이에게 자전거 체험을 시켜주기였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에서 한참을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나서는 한쪽에 비치된 셀프 페이스 페인팅 구역에서 아이의 얼굴에 귀여운 고양이수염을 그려준 후, 승마체험장으로 향했다. 연령에 따라 탈 수 있는 말의 종류가 달랐는데, 5세 아이는 작은 조랑말을 탈 수 있었다. 다만 승마모에 조끼까지, 아주 정식으로 장비를 착용하고, 말을 타니 아주 승마 선수가 따로 없어서, 마음이 흐뭇했다. 두 명의 직원분이 말고삐를 쥐고 함께 걸으며 천천히 한 바퀴를 돌더니 체험이 종료되었다. 아 정말 맛보기 체험이구나. 승마 체험은 멋진 사진을 남겼다는 것 정도로 만족하는 게 좋겠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대망의 야외 바운스 현장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인 야외에서, 거대한 에어바운스를 뛰는 아이들 사진을 보고, 여긴 꼭 가봐야지 했었다.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라 그런지, 입구로부터 거리도 가장 멀었다. 경마장을 지나 한참을 걸어, 바운스장에 도착했다. 다리 아프다며 투덜 대는 아이로 인하여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끝까지 가서 다행이었다.
야외 바운스장에 도착하니, 그 스케일에 압도되었다. 뒤로는 구름 낀 하늘과 푸른 산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서 원래는 새하얬을 (하지만 지금은 회색빛으로 변한) 바운스 위에서 아이들이 퐁퐁퐁퐁 뛰는 모습이 마치 그림 같았다. 다닥다닥 닭장 같은 키즈카페에서 느낄 수 없는 개방감과 자유로움이 벌써부터 우리의 기분을 고양시켰다.
우리 아이도 질 세라, 신발을 벗고 뛰어들어갔다. 마치 산을 정복하듯이 우다다다 올라가서는,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마치 해적 선장처럼 아래를 내려본다. 중간에 다른 아이가 우리 아이에게 주먹질을 하는 약간의 사건이 있었지만, 아이는 아주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염려가 된 내가 아이에게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어보니, 아이의 답이 걸작이다.
"나는 몸이 아주 단단해서 끄떡없어! 내가 온몸에 힘을 꽉 주고 막았어!"
야 그래도 이유 없이 주먹질하는 친구 앞에서 때려보라는 듯이 그러면 안 되지... 다행히 주먹질을 하던 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만류하여, 사건은 조기에 진압됐다. 그 후에도 아이는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바운스 위의 아이들은 엄청 많았다가도 또 한순간 어디론가 사라져 몇 명 안 남았고, 또 어느 순간엔 바운스 위가 아이들로 가득 찼다.
그러더니 아이가 어느새, 바운스 위에서 놀이하는 무리에 합류했다. 초등학생 고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무리를 진두지휘한다. 팀을 두 개로 나누어 바운스의 양쪽에서 서로의 고지를 점령하고자 진격했다. 아이는 그 누나가 마음에 들었던지, 옆에 붙어서 연신 입을 재잘 거린다. 나중에 물어보니, 호구조사를 해왔다. 누나는 몇 학년이고, 제주에 우리처럼 한 달 살기를 하러 왔고, 어쩌고저쩌고...
공원 운영 시간이 끝날 때가 되니, 부모들이 하나 둘 아이들을 부르기 시작한다. 아이를 부르니, 더 놀고 싶다고 아쉬운 마음이 얼굴에 가득했다. 모두가 나갈 시간이라고 하니, 그제야 못내 내려와 신발을 신는다.
"아빠! 나 저 누나랑 또 만나고 싶어!!"
그래그래. 나는 다리 아프다고 자리에 주저앉아 시위하는 아이를 등에 업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이제 많이 커서 무거워졌지만, 오늘따라 그 무게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아이를 업고 걷는 내내 행복감이 차올랐다.
‘이런 시간도 잠깐이겠지. 이러다 보면 어느새 훌쩍 커서는 부모 곁을 떠나려 하겠지.’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생각과 함께, 아이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경마공원 퇴장 방송과 함께 길을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