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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큐 Oct 30. 2022

입문의 장 (上)

각본 탈출의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하오 낯선이여


일단 이렇게 행동했다는 것만으로 자네는 상위 10%의 실행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네. 대부분은 생각은 해도 실행으로 옮기지 않거든.



집무실에 도착한 박 곤과 최희준은 자리에 앉았다. 희준은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천만 원이라니, 먹을 것 안 먹고, 즐길 것 못 즐기며 겨우 모은 돈인데 너무나 쉽게 말하는 박 곤에 대한 호감도는 점점 떨어졌다. 희준은 평범한 시골 출신으로 동네에서는 공부를 좀 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반에서 4~5등 정도의 성적을 받았고, 인서울 대학에 입학하며 인생에 몇 안 되는 성취를 맛보기도 했다. 문과 출신으로 취업 시장에서는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가 우연히 선배가 창업한 회사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정규직으로 전환이 된 케이스였다. 월급 150만 원. 그게 30년 인생에서 희준이 받은 성적표였다. 하지만 적은 월급에도 착실하게 모아 한 달에 40만 원은 적금으로 저축을 했고, 그렇게 조금씩 모아 온 소중한 돈이 천만 원이라는 돈이었다. 그런데 아무 설명도 없이 천만 원을 내라니,


박 곤: 자네, 이 학교의 이름이 각본탈출학교인 이유가 뭔지 아는가?


최희준: 글쎄요.


박 곤: 자네 같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영화감독의 ‘각본'처럼 짜여 있다네. 나도 그런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아주 잘 알지.. 그런 자네들을 탈출시키고자 내가 세운 학교가 바로 각본탈출학교 라네..


최희준: 글쎄요.. 제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방금 여기 처음 와서 선생님을 처음 만나뵀는데요.. 


박 곤: 어허, 곤샘이라고 부르라니까. 그리고 난 자네 같은 사람을 아주 잘 알지. 구부정한 허리, 생기 없는 눈, 월급은 150만 원 정도 받을 테지. 주말에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 게 인생의 유일한 낙 아닌가?


최희준: 음..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박 곤: 어쩌다 이직을 하거나 승진을 하게 되더라도 월급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많이 받아봐야 500만 원을 넘을 순 없을 걸세. 운이 정말 좋아 월급이 400만 원으로 오르고 300만 원씩 저축한다 해보세. 그 돈을 2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7억이네. 그 사이에 결혼, 건강문제, 가족들의 건강 등 큰돈이 들어갈 일이 없다는 가정 하에 말일세. 이게 대부분 자네 같은 사람의 ‘각본'일세. 


최희준: 허, 아주 대단하시네요. 그런 정도의 말은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박 곤: 자네가 생각하는 자네의 미래 모습이 이런 모습인가? 아닐 걸세. 자네는 희망을 못 느꼈기에 여길 찾아온 거겠지. 


최희준: 그건.. 맞네요. 


박 곤: 그래, 이제 말이 좀 통하는군. 자네에게 물어보지. 자네의 꿈은 뭔가?


최희준: 저는 꿈이 없습니다. 솔직히 아까 말씀하신 미래가 제 미래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여자 친구와 결혼 이야기를 하게 됐죠. 정말 앞이 안 보이더군요. 결혼식 비용, 신혼집,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육아에 드는 비용 까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프고 생각하기가 싫었어요. 그렇게 여자 친구와는 헤어지게 되었고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는 와중에 여기 찾아오게 됐습니다. 


박 곤: 그렇구먼. 일단 이렇게 행동했다는 것만으로 자네는 상위 10%의 실행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네. 대부분은 생각은 해도 실행으로 옮기지 않거든. 이미 각본을 탈출한 내 제자들도 자네와 비슷한, 아니 오히려 자네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네. 하지만 그 친구들 모두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곳으로 찾아왔지. 잘은 모르지만 상황이 비슷한 사람은 정말 많다네. 내가 자네의 월급을 어떻게 맞췄는지 아는가? 


최희준: 잘.. 찍으신 거 아닌가요?


박 곤: 아쉽지만 아니라네. 물론 각본탈출학교에 찾아온 제자들이 있었기에 경험이 쌓인 것도 한몫했겠지만, 정답은 “통계"라네. 


최희준: 통계라니요?


박 곤: 자네와 같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으로 한정해서 통계를 내보면 월급 150만 원을 받는 사람이 아주 많단 이야기야.


최희준: 정답일 확률이 제일 높은 걸로 찍으신 거군요!


박 곤: 허허, 그렇게 되는구먼.


최희준: 그러면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각본탈출학교에서 어떤 걸 배우게 되는 건가요? 저도 천만 원 정도 금액을 내고 각본을 탈출할 수 있다면 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요. 


박 곤:  자네 급하구먼. 오늘은 너무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오전에 설명해주도록 하지. 이 건물에 자네가 잘 공간은 충분하다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토끼 인간이 희준을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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