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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정각. A와 a는 낮은음자리표 조명 아래 문 앞에 서 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건물에 출입문만 다른 M의 집. a는 지난밤 왼쪽 문을 밀 때 난 달그락! 소리가 떠올라 눈을 질끈 감았다.
교회 첨탑 시계가 10시 3분을 가리키자, A는 헛기침을 크게 한번 하고 문을 두드렸다. 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분주한 움직임. 잠시 후 자신의 눈동자처럼 새파란 원피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문을 열고 나왔다. 깔끔하게 뒤로 넘긴 짧은 금발 머리에 짙은 파란 눈동자. 정교하게 세공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리는 M을 보며, a는 미처 다 말리지 못한 젖은 머리를 멋쩍게 쓸어내렸다.
“환영해요, A. 그리고 a도.” M이 눈인사하며 악수를 건넸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서 깊은 축제에 함께해서 영광입니다.” A가 M의 손등에 키스했다.
“A의 연주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다니, 소그노가 더 영광이지요. 어서 들어오세요.”
M이 문을 활짝 열어 A와 a를 맞이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보이는 창밖의 너른 바다. 지난밤 매끄럽고 고요했던 검은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채로운 빛을 반짝이며 춤추듯 넘실거렸다. a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름답지요? 매년 여름 저희를 다시 이곳 소그노로 데려오는 건 바로 저 바다랍니다.” M이 때마침 계단으로 내려오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구겨진 하얀 리넨 셔츠에 미색 바지를 입은 남자가 부스스한 금발을 쓸어 넘기며 걸어왔다. 얇은 셔츠 위로 드러난 탄탄한 몸과 보기 좋게 그을린 피부. 남자가 서늘한 녹색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A와 a에게 악수를 청했다. 남자에게서 달콤한 향이 섞인 담배 냄새가 풍겼다.
“첼리스트 P입니다. 제 아들이기도 하지요.”
정돈되지 않은 P의 모습이 못마땅한 듯, M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우며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P는 M의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원하게 웃어 보였다. M의 어깨를 감싸안고 뺨에 입을 맞추는 P. M은 그런 P가 밉지 않은 듯 표정을 풀었다.
“저희 가문은 대대로 이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기금을 모금하고 좋은 연주자를 찾아 무대에 올려온 것이 벌써 100년 가까이 되었네요. 저와 P는 제 남편이 있는 프랑스 본가에서 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매년 여름이면 이곳 소그노로 돌아와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벽에 나란히 걸린 남녀의 초상화가 a의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초상화는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처럼 눈, 코, 입, 귀가 모두 조각나 얼굴 여기저기에 달려 있었다. 여자의 초상화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처럼 품위 있었다. a는 초상화 속 여인의 파란 사파이어 반지와 똑같은 반지를 끼고 있는 M의 왼손 약지를 힐끔 바라보았다.
“젊은 시절의 부모님입니다.”
언제 다가왔는지 a의 귓가에 낮게 속삭이는 P. 화들짝 놀란 a가 휘청였다.
“P는 아버님을 많이 닮으셨군요.” A가 a의 허리를 감싸 중심을 잡아주며 정중하게 말했다. “눈썰미가 남다르시네요.” P가 크게 소리내 웃으며 대답했다.
“용서하세요. 천성이 짓궂은 녀석입니다.”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젓고는 엄격한 눈초리로 P를 응시하는 M.
“놀라게 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미안합니다.”
P가 장난기 어린 녹색 눈동자를 천진난만하게 반짝이며 말했다. a가 괜찮다는 듯 웃어 보이자, M이 P가 내려온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가문의 브리오슈는 축제의 또 다른 명물입니다. 옥상으로 가시죠. 음식이 다 식겠어요.”
헛기침을 크게 한 P가 a를 바라보며 계단 쪽으로 손을 들어 길을 권했다. 허락을 구하듯 A를 바라보는 a. A가 고개를 끄덕이자, a도 M을 뒤따라 계단을 올랐다.
Photo l ©an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