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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Jul 14. 2024

꺼내 먹어요

엄마의 창고

평일 5일간의 출장을  때에면 아침마다 KBS1TV의 <인간극장>을 챙겨본다. 사무실에 출퇴근할 때에는 절대 챙겨볼 수 없는 프로그램인데, 출장에 나와있을 때에는 8시 30분쯤 숙소에서 출장지로 출발하니 출근 준비를 하면서 시청이 가능하다. 이번 주 편은 암에 걸린 남편을 위해 젊은 날 자연식(食)으로 남편의 치유를 돕다 남편이 완치된 뒤, 60대가 되어 치매를 앓게 된 아내와 그리고 그 어머니의 뒤를 이어 요리연구가의 길을 걷고 있는 딸의 이야기였다. 암을 완쾌하게 만든 아내의 요리는 세상에 알려져 부부의 이야기는 여러 TV프로그램에도 출연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 조금 편하게 노후를 맞이하며 사람의 일상을 즐길 있을 법할 때에 아내에게 치매가 찾아와 버렸다.


딸은 엄마와 같이 찍은 사진을 보다가 사진 속 엄마를 가리키며, 이 사람이 누구냐 묻는데 엄마는 해맑게 웃기만 한다. 엄마는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도 알아보지 못한다. 딸의 눈물짓는 모습이 화면에 나올 때마다 나까지 덩달아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화면 속의 이 어머니는 무엇을 먹고사는 걸까.



엄마의 생신이라 오랜만에 대구에 내려갔다. 오랜만에 엄마의 밥을 먹고, 엄마가 사주는 밥을 먹고, 엄마에게 밥을 사드리기도 했다. 대구를 떠나기 전, 사사로이 해왔던 것들을 이번 1박 2일 동안 되풀이하며 그동안의 것들이 결코 사사롭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엄마는 올해 외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동생을 시집보내고, 나를 인천으로 떠나보냈다. 엄마는 자기가 사랑하는 세 여자가 다 떠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도 곧이어 말했지. 엄마, 나도 사랑하는 세 여자를 떠나온 거라고. 엄마가 외할머니의 말년을 함께하는 모습을 보며, 미래의 그 어느 날 우리의 모습을 상상했다. 우리에겐 외할머니와 보낸 힘겨웠던 그 시간이 앞으로 내 딸에겐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지, 엄마에겐 어떤 딸이 되어야 할지를 공부할 수 있는 때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의 생신날, 외할머니께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엄마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딸의 생일에 별 감흥이 없어 보이던 할머니였지만 나의 그 말에 할머니는 멋쩍게 웃어 보였다. 딸을 낳아줘서 고맙다는 딸의 딸로부터 전해 들은 말은 어떤 의미로 들렸을까.



지금껏 엄마의 수많은 생일을 함께 보냈고, 엄마는 내년에 환갑을 앞두고 있다. 스물 넷이라는 리고 약한 나이에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어느 아가씨1년 뒤, 환갑을 맞는다. 24년의 차이를 둔 띠동갑의 엄마와 나. 어릴 때에는 친구들에 비해 엄마가 다는 것이 그저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가 엄마의 나이를 통과할수록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들었다. 엄마는 그 어린 나이에 어떻게 엄마가 되었을까. 나는 아직도 내 세상이 버거워, 여린 아이에게 세상을 알려 줄 자격이 내게 있을까 의심스럽다.


지금의 나에겐, 호기로웠던 20대와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는 30대의 추억들지금의 나를 먹고살게 한다. 20대부터 엄마로 살아온 엄마가 먹고 살 추억 속에는 오로지 가족뿐이다. 엄마의 먹거리가 부족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틈틈이 사사로운 것들로나마 엄마의 고를 채워놓으려 한다. 출출하고 심심할 때 꺼내 먹을 수 있도록. 같이 찍은 사진, 출장지에서의 전화 한 통, 어느 평범한 날의 예상치 못한 카톡, 그리고 이 글도 그중의 하나이기를 바라면서. 



아, 잊지 않고 하늘에 계신 어느 딸의 어머니께도 인사를 건넨다. 할머니,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를 낳아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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