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그리고 연둣빛 혜안
남쪽과 북쪽을 오가며 생활하다 보니, 남들보다 더 오래 봄을 느낀다. 일찌감치 꽃이 지고 꽃비가 내리던 때에 다시 북쪽으로 올라왔더니 북쪽은 고맙게도 늦게 만개하여 꽃이 한창이었고 꽃비가 내리는 것도 운 좋게 더 오래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지내고 있는 아파트는 꽤 오래전에 지은 아파트라 아파트 안의 나무들도 나이를 먹어 꽤나 높게 그리고 넓게 우거져있다. 아침에 커튼을 걷어 연둣빛으로 물들어진 주변을 보는 일은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초록이 가장 여리고 예쁜 때. 꽃은 비처럼 내려 다 사라져도 초록은 더욱 짙게 물들어갈 테니, 그 속도만큼 나 또한 짙어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이곳에 지내며 처음 맞는 봄. 봄 그 자체만으로도 새롭지만,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 비로소 찾아온 봄이니 더더욱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오래된 아파트라 지하주차장이 없어, 차는 오로지 지상에만 주차해야 한다. 이렇게 큰 나무들이 우거진 곳에 살아 보는 것은 처음인데, 더불어 피어나는 꽃과 자라나는 새싹을 구경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러나 최근 몸소 느끼고 있는 이곳의 큰 단점 중 하나는 봄에는 잠시만 주차를 해 놓아도 잔뜩 떨어져 있는 꽃잎과 나무에서 떨어져 나오는 각종 것들(나무의 분비물이겠지)로 차가 쉽게 지저분해진다는 것이다. 얼마 전엔 엄청난 양의 새똥을 맞은 적도 있었고.
보통은 트렁크에 넣어둔 걸레와 분무기로 쉽게 해결이 가능한데, 비와 함께 꽃비가 내렸던 다음 날엔 도저히 혼자서는 수습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다. 앞 유리에 묻은 것들만 겨우 걷어낸 다음, 차의 겉모습은 부끄럽지만 그 안에 있는 나는 보이지 않을 테니 차 안에 숨어 바로 세차장으로 향한다. 그렇게 다시 깨끗해진 차도 고작 하루 정도일 뿐, 또다시 주차장에 주차할 수밖에 없으니 머지않아 차는 또 나무의 분비물들을 온몸으로 맞는다. 그래도 비만 오지 않는다면야 마른걸레로 쉽게 밀어낼 수 있거늘, 아니 그러고 보면 비가 내리는 날엔 차가 더욱 필요한 법인데, 이러나저러나 몹시 곤란하다.
일주일 정도 지저분한 차와 씨름하며 그동안 예쁘다고만 생각했던 꽃비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차를 청사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버스를 타고 다닐까. 아니, 그러면 내가 차를 갖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이렇게 모셔두려고 산 게 아닌데. 지저분해진 차는 내일 걱정하자는 생각에, 매일 큰 결심을 한 것마냥 차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그리곤 매일 아침 청사 지하주차장에 도착해, 쉽사리 떨어지지 않은 꽃잎과 꽃가루, 나무 먼지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흩날릴 때 내 손엔 쉽게 잡히지도 않더니 어쩜 이렇게 차엔 오래 붙어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물론 습기가 조금 묻어있던 것도 있겠지만 사람에겐 그렇게나 쉽사리 잡히지 않는 것들이 어쩜 차엔 이렇게 그렇게 달리는 동안에도 달아나지 않고 찰싹 붙어있는지 그저 신기했다.
꽃비가 내릴 때 사람들은 '우와-'하고 잡히지 않는 꽃잎을 잡으려 애쓰며 꽃비 사이를 지나간다. 어찌 보면, 좀처럼 쉽게 잡히지 않고 요리조리 몸을 피해 날아가는 꽃잎들에겐 나무 아래의 사람들이 꽃비와 같지 않을까. 나 좀 잡아줘-하는데도 어떻게 저렇게 잘 피해 가기만 한다니-하고. 아마 누군가의 손에 잡힌다면 어떤 귀한 이는 그 꽃잎조차 귀하게 여겨 고이 집으로 데려가줄 텐데. 꽃도, 사람도 더 아름다운 것에겐 쉽게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쉽게 잡고 잡히지 않는 관계로 서로에게 남는다. 역시 귀한 것들은 쉽게 가질 수 없다.
이제 북쪽에도 꽃이 지고 초록이 남았다.
그래도 아직은 연둣빛 초록. 꽃보다는 조금 더 오래 연둣빛을 유지하겠지만 이 또한 곧 자연스레 짙어질 테니 지금의 이 시간도 잠시뿐일 귀한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귀한 것은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테니.
가벼이 치부 돼버릴지 모를 귀한 시간과 귀한 존재, 그리고 귀한 사람을 알아차릴 수 있는 혜안을 갖고 싶다. 흩날리듯 흩어지는 관계와 시간 속에서 바람을 타고 손아귀에 들어올 꽃비 한 방울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