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의 바퀴를 닦으며
긴 출장의 마지막 날. 점심도 먹지 못하고 기차에 올라타야 했다. 기차에 내려서 또 집까지 지하철을 타고 한참. 캐리어를 현관에 그대로 둔 채, 도착하자마자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두고 환기를 한 뒤 자리에 앉아 간식부터 먹었다. 그렇게 휴식도 잠시, 주말 동안 먹을거리를 사기 위해 다시 나가 장을 보고 돌아왔고 그제야 현관에 그대로 세워져 있던 캐리어의 짐을 풀고 주저앉아 캐리어의 바퀴를 닦았다. 이번 주도 나와 함께 먼 곳까지 함께 굴러다녀준 녀석. 또 머지않아 다시 꺼내야 하겠지만. 물건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다해야 나와 오래갈 수 있으니, 네 개의 바퀴를 꼼꼼히 닦아 다시 농에 넣어두었다.
지난 출장지에서 잠을 설쳤던 것도, 부족하게 잔 것도 아니었는데 빨래와 청소까지 끝내서인지 이른 저녁부터 피곤이 밀려왔다. 새벽에 깨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할 겨를이 없이 밀려오는 잠을 주체할 수 없어 일찌감치 잠에 들었다. 그렇게 찾아온 아침. 그러나 지난밤의 꿈은 조금 이상했다.
쓸데없이 꿈에서 나는 고등학교 동창회를 갔고, 누가 나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모두가 낯선 얼굴이었다. 저마다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지금 무슨 일을 하는지를 늘어놓았고, 그들은 서로 친한 척하기 바빴다. 그런 자리가 썩 달갑지 않았던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그들과 다름없이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자기소개도,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데, 나의 말에 대한 동창들의 반응만은 잠에서 깨어도 기억에 정확히 남아있었다. "그래서? 넌 그럼 우리랑 같이 못 어울리겠다는 거네?"
매 출장마다 출장 기간 내내 선배들과 붙어 다니고 어울리지만, 지난 출장지에선 가까운 곳에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배가 있어, 미리 약속을 잡고 출장 기간 중 하루 선배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녀는 나를 만나기 위해 퇴근 후 한 시간을 운전해 달려왔다.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만큼, 늘 그랬듯 어색함 없이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떨었지만 특히나 이번에는 바래진 시간만큼 퇴직을 앞두고 있는 동료들과 우리의 주변 환경,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버린 야속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그녀와 또 다음을 기약하며 웃으며 헤어졌다. 마지막까지 거듭 서로를 향해 이야기한 것은 오로지 건강. 언제든 볼 수 있게, 건강하기만 하자고 했다.
다시금 출장지에서의 일을 이어나가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출장지에서 퇴직한 옛 동료를 만났다. 그는 일회성의 업무로 그곳에 와 있던 상태였고 멀리서 그를 한눈에 알아본 나는 스스럼없이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로 돌아와 한창 업무에 열중하고 있던 때에, 다른 이를 통해서 그가 나를 한참 기다리다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내가 답장을 보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돌아갔다며. 아무런 문자를 받지 못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밖으로 나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나의 예전 사무실 번호로 문자를 보낸 것이었다. 으이구, 이렇게나 손 많이 가는 어른. 잠시의 통화였지만, 이렇게라도 만나 반가웠다고 인사를 건네며, 역시나 마무리는 건강. 이미 댁에서는 진작에 할아버지로 살고 있는 그에게 나는 손녀처럼 다독였다. 또 기회가 돼서 뵐 수 있게, 그저 건강만 하시라고.
점처럼 떨어져 있던 사람들과 이렇게 한 번씩 연결이 된다. 학교를 다닐 땐, 같은 해에 태어난, 같은 지역에 사는 친구들과 필연인 듯 우연처럼 묶여 그들 속에서 나와 비슷한 이들을 찾아내 무리를 형성하고 선을 이어나가지만 대학에 가고서부터 느꼈다. 지금부터 지인은 나와 상대가 서로를 선택해야지만 이어나갈 수 있는 것임을. 학과나 회사처럼 나를 묶어주는 바운더리가 어른이 되어서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 바운더리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이제는 서로를 만나, 서로를 택하고, 서로 노력하는 사람과 함께일 수 있었다.
예전에 한 번은 누군가가 자신의 카카오톡에 저장된 이들의 인원수를 보여주며, 자신의 인맥을 자랑한 적이 있다. 티 내진 않았지만, 나는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당신과 진정으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싶었기에. 인맥을 지인의 수로 자랑하는 것만 봐도 질보다 양에 집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지우고, 카카오톡에 남아있는 그들을 숨기고 삭제하며 그들과의 관계에 작별을 고한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프로필 사진을 한 번씩 확인해 보고 숨기고 삭제하며 보내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건네는 마지막 안부다.
캐리어의 바퀴를 꼼꼼히 닦으며, 언제고 다시 굴러갈지 모를 소중한 인연들의 이야기도 곱게 닦아 농에 넣어둔다. 핸드폰 번호로 남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라도 잠시라도 만날 수 있는, 잠시라도 보려고 문자를 남기고 기다릴 만큼의 노력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인연'이라는 말을 붙여주고 싶다.
반갑게 조우했던 인연들의 정성을 가슴에 품고 잠들던 밤. 그 꿈의 저편에서 나는 아마도 알맹이 없이 친한 척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글을 함축할 수 있는 어떤 뼈 있는 말을 건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이 빠진 연기가 어설픈 나는, 그 어떤 척보다도 친한 척은 잘하지 못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