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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척'박사가 되는 날까지

슬기로운 수양생활

by autumn dew

1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하며, 참 많이 '퇴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 많은 회사들 속에 나 하나 써줄 사람 없을까 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만 두면 그만이지. 그렇게 버티고 버텨 지금의 자리까지 왔지만, 여전히 힘든 순간은 존재한다. 그러나 이젠 이런 힘든 이야기를 예전만큼 자주, 그리고 쉽게 내뱉을 수 없는 연차에 도달한 듯싶다. 그럼에도 속에서 넘치는 투정을 안 하고 살 순 없으니, 편한 사람들에게 애써 희화화하며 이야기를 푼다. 그렇게 별 것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나면, 얼마 지나 진짜로 별 것 아닌 것이 되곤 했다.


신입 시절, 무거운 걸음으로 월요일 아침 출근을 했는데 마침 출근한 차장님이 자리에 앉자마자 말씀하셨다. "아, 진짜 출근하기 싫어 죽는 줄 알았네." 그때 난 속으로 생각했다. 저 연차, 저 나이가 되어서도 여전히 출근하기 싫을 거라고? 늘 묵묵히 일하시던 차장님이 월요일 아침 자리에 앉자마자 내뱉은 진심 가득한 한 마디와 그 장면은, 앞으로 얼마의 시간이 지나더라도 여전히 출근은 싫을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는 짧은 티저영상 같았다.



그렇게 밥 먹듯 출근하며 지금의 연차에 도달했고, 인생계획에 없던 감사실에서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의 고충이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측할 수 있는 바이지만, 이곳에서 쓸데없이 애를 쓰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척'을 하는 일이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감사실에 있으니 모르는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사람들이 건네는 수많은 질문에 재빨리 답을 찾아내 답변을 해야 하고, 알고 있는 사실에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것처럼 태연하게 연기를 해야 한다. 더군다나 나는 이곳에서 막내이기에, 감사실을 통해 확인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감사실에서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사람. 내가 담당이 아닌 업무인데도 일부러 나에게 묻고, 어떨 땐 가장 순진해 보이는 나에게 각자 듣고 싶은 답에 대한 동의를 구해, 감사실에서도 동의했다는 답을 얻으려는 게 눈에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매번 척을 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어떨 때 입을 열어야 하고, 어떨 때 입을 닫아야 하는지를 매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요즘 들어 가끔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제대로 전해야 할 때에 말문이 막혀 말을 더듬기도 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이러나 싶다가도, 생각해 보니 요즘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해서 그런 것 같다. 또 한편으론 어느 정도 고독을 즐길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걸 보니, 요즘 불필요한 말을 안 해도 돼서 이러는 건가 싶기도.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은 건가.




매번 연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생각한다. 지금, 여기 있는, 진짜의 나는 무얼 알고 무얼 모르는 걸까. 척하지 않는 세상에서 진짜 내 모습과 마주한다. 내 머리에 붙어있을 땐 몰랐다가 샤워를 끝내고 수챗구멍에 모인 머리카락을 본 순간, 더럽고 지저분해 보이는 것처럼 척하던 세계에서 돌아와 나를 감싸고 있다 빠져나가버린 겉치레의 것들을 모아보면 추접하고 형편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더욱 고마웠던 사람은, 몰라도 아는 척해야 할 때 그 아는 척을 모른 척 넘어가 주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해야 할 때 그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먼저 알아차리고 애써 묻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 연기가 형편없다 생각할지언정 그냥 알고도 넘어가주는 사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느라 고군분투하는 동안 그 어떤 내색 없이 조용히 기다려주거나, 내가 분명히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야기에 아무런 물음도 건네지 않는 사람.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고, 수챗구멍에는 여러 모습의 '척'들이 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도 한 때는 나의 것이었음을. 시간이 지나면 아는 척하던 것은 마침내 아는 것이, 모른 척하던 것들은 남들은 모르는 지나간 이야기 하나로만 남을 것이다. 척이 실제가 되기 위해 일단은 그럴 싸한 연기에 돌입한다. 분명 속에선 어색하고 답답하겠지만.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그럴 수밖에 없을 연기에 잘 부응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내가 고마워하는 사람들처럼.




얼마 전엔 친한 후배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앓는 소리를 했다. 내가 감사실에서 진입장벽이 가장 낮으니, 사람들이 다 나만 찾는 것 같아 가끔 화가 난다고. 그러자 후배 중 하나가 말했다. "그런 사람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감사실에는 한 사람 정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왜 하필 그게 나인가 싶다가도, 그렇게 나를 통하려는 사람들을 통해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몰라야 하는지를 구별하는 분별력을 키워 왔다는 사실은 부정할 순 없다. 진짜 아는 것, 진짜 모르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런 척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몰라도 아는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척'의 세상에서 씨름하고 있는 나의 본모습을 이곳에 남겨두고 다시 '척'의 세상으로 수양을 위해 떠난다. 연기가 체화되려면, 다시 말해 진정한 '척척'박사가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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