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어른의 대물림
어린 시절의 나에게 다소 엉뚱한 구석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가끔 그 일을 생각하면 어린 나이에도 나름의 생존방식을 잘 터득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 학교가 있었고 요즘의 초등생들에 비해 당시 나의 등하굣길은 다소 험한 편이었다. 육교를 건너, 인근 대학건물로 들어가 지상주차장을 통과하고 밖으로 나가 흙길도 걸어가야 하는 길. 학원(유치원엔 다니지 못했다)을 다닐 때보다 하교 시간은 훨씬 빨랐고, 엄마는 입학 초에만 등하교를 같이 해줬을 뿐 이후엔 스스로 등하교를 해야 했다. 그렇다고 딱히 무서워하기는커녕 나름 이제 '학생'이 되었다는 생각에 신발주머니를 신나게 흔들며 겁 없이 잘 다녔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집 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열쇠도 갖고 있지 않았다. 아침에 엄마가 아무 말도 해준 게 없었는데.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막막해진 나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건지 동네를 방황하며 울기 시작했다. 그냥 집 앞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될 것을. 그러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동네 입구에 있던 어느 슈퍼 아주머니가 동네를 통곡하며 돌아다니던 나를 보고 슈퍼 안으로 데려가셨던 것 같다. 나는 아주머니가 앉아있는 가판대에 앉아 한참을 꺼이꺼이 울었다. 아주머니는 슈퍼에 있는 새콤달콤과 같은 작은 간식을 건네주며 나를 달래려 애쓰셨다. 눈물범벅으로 된 얼굴은 손에 쥐어진 새콤달콤으로 점점 안정을 찾아갔고 늦은 저녁,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다행히 부모님은 동네를 수소문하다 슈퍼에서 임시보호(?) 중이던 나를 찾아냈다. 그렇게 모두가 안도하며 부모님은 아주머니께 감사인사를 드렸고, 나는 다행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던 것 같은데 그날도 집에 오니 문이 잠겨 있었다. 그날도 역시 엄마는 잠깐만 볼일을 보고 돌아오면 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은데 내가 일찍 집에 왔을 테다. 재밌는 건, 그날은 꺼이꺼이 울지도 않고 나는 제 발로 그 슈퍼를 찾아갔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막막한데, 집 앞에 있느니 또 거길 가야겠다 생각했던 걸지도. 옅게나마 남아있는 기억 속의 나는 아주머니께 또 집 문이 잠겨있다고 말했고 자연스럽게 아주머니의 손녀정도 되는 모양새로 가판대에 자리를 차지했다. 그렇게 아주머니와 함께 가판대에 앉아 슈퍼 안에 있던 TV를 보며 능청스럽게 앉아있었다. 그날도 역시 부모님은 슈퍼에 있던 날 찾았고, 아빠는 아주머니께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면서 안도감과 함께 어이가 없던 표정으로 날 보며 웃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며 앞으로도 혹시 모를 때에 부탁드린다고 인사를 건네며, 나에게도 앞으로도 혹시나 이런 일이 생기면 지금처럼 헤매지 말고 바로 그 슈퍼에 가 있으라고 말했다.
사실 슈퍼의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아름 슈퍼' 아니면 '한마음 슈퍼'인 것은 확실하다. 우리 가족의 비공식적 미아보호소. 당시 뉴스엔 유괴사건이 번번이 소개될 만큼 흉흉하기도 했었는데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고, 더욱 중요한 건 좋은 어른의 모습을 이른 나이에 경험했다는 것. 그곳은 어린 날 내가 찾아낸 생존대안이자 플랜 B가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보니, 어른에겐 이런 보호소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도어록이 생겨난 지금은 열쇠가 없어 문을 못 열 일도, 핸드폰이 없어 가족에게 연락이 닿지 않을 일도 없지만. 잠시라도 방황하고 있는 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른이 가 있을 곳이라곤 카페 정도가 전부 아닐까. 그곳에서도 모두 핸드폰이나 노트북을 보며,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어른으로 분해 있겠지만. 미아迷兒 보호소는 있어도, 미인迷人 보호소는 없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많았던 슈퍼마켓보다 지금 카페가 더 많은 건, 마음을 둘 곳 없는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을 만한 장소가 필요해서가 아닐까. 오래, 혼자여도 자연스러울 수 있는 곳. 나도 그런 마음으로 카페에 향할 때가 종종 있으니. 어른이 되었지만 이처럼 보호색을 띤, 괜찮아 보이고픈 암묵적인 생존방식은 여전하다.
보호자 없이 씩씩하게 폴폴 돌아다니고 있는 작은 초등생들을 보면 눈이 간다. 이전 학교에서 근무할 때에도 우리 학교를 통과해 등하교를 하던 어린 초등생들이 있었는데, 나는 가끔 그 초등생들을 만나면 말을 걸곤 했다. 초등생들은 하굣길,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우리 학교 안 자판기에서 율무차나 코코아를 뽑아먹곤 했다. 어느 날은 자판기에서 율무차를 뽑아먹으려다 맹물이 나오자, 나에게 쪼르르 찾아와 자판기가 고장 났다고 말했는데 자판기 사장님께 대신 전화를 드리고 아이들이 귀여워 사무실에 있던 두유를 갖고 와 나눠주기도 했다. 어린이들, 이게 더 비싼 거예요. 오늘 운 좋은 줄 알아요, 하고 농담을 건네며. 나도 어느 이름 모를 어른의 관심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왔으니까.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겐 웬만하면 존댓말을 하는 편이다. 여덟 살의 어린 날 경험한 어른의 호의를 지금껏 품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어느 어른의 어떤 기억이 남을지 모를 일이다. 이왕이면 괜찮은 어른들의 기억이 많았으면 좋겠거든. 어른이 되면 방황할 때 갈 수 있는 곳이 기껏해야 카페뿐일 텐데.
그렇게 나 또한 카페를 다녀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 속에 물들어 있다 생각을 여기까지 끌고 와버렸다. 다들 이곳에서 혼자여도 그럴싸한 어른으로 보이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다음 주에도 미인美人 아니고 미인迷人 보호소에서 몇 잔의 커피를 사 마실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매번 자연스럽고 괜찮은 어른으로 보이고 싶으면서도, 보이는 게 아니라 실로 그렇다고 믿고 싶어진다.
그나저나 아주머니는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울던 아이가 이렇게 자라 당신을 기억하고 있음을 알고나 계실까. 슈퍼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당신의 선의는 아직도 이렇게 기억에 남아있다.
썩 나쁘지 않은 어른이 되려 매번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여기, 감사'한 마음'을 '한아름' 남겨두고 다시금 보호색을 띤 어른이는 출근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