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dew Nov 19. 2022

여행어록Ⅱ

2014, Summer, Istanbul, Türkiye

아무리 생각해도 왜 그곳에 가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이젠 '튀르키예'가 된, 그 이름이 입에 잘 붙지 않는 나에겐 아직 '터키'인 곳.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했 때엔 나름의 계기가 있었을 텐데, 희한하게도 여태껏 여행 다닌 곳 중 터키만 여행의 이유가 떠오르질 않는다. (내가 갔을 땐, 터키였으니 이 글에선 그냥 터키라고 표기하겠다.)


나의 유일하고도 오랜 여행 메이트는 동생인데, 자매님과 함께하는 여행의 시작이 바로 그 터키다. 보통 여행 일정을 잡을 때에 점심시간을 넘긴 늦은 오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비행시간을 선호하는 편인데, 가장 큰 이유는 우선 대중교통이 무조건 다니는 시간이날이 밝아 덜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일엔 피곤해서 일정 소화가 거의 불가능하니 시차극복과 체력 비축을 위해 첫날은 쉬다가 일찍 잠드는 편이 좋다-는 것이 당시 많은 여행블로거들의 조언이었다.


 해 우리 여행의 시작 대낮 무렵이었다.

힘겹게 도착한 스탄불의 어느 숙소에 짐을 리는, 그래도 이렇게 저무는 하루가 아깝다는 생각에 가장 번화가인 이스티크랄 거리만 살짝 보고 돌아오기로 했다. 이스티크랄 거리에 도착해 가장 놀랐던 것은 수많은 인파, 그리고 동양 여자들을 향한 뜨겁고 불편한(?) 시선. (지금은 '캣 콜링'이라 부르는 것들. 동생과 나는 그때 그런 용어를 알지도 못했다.)


뜨거운 시선들이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첫날부터 마냥 무섭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여정 자체가 두 것 같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받아치고 즐기기로 했다.

"Hi!"엔 "Hi!"로,

"Hello!"엔 "Hello!"로,

"Ni hao!"엔 "Korean!"으로 받아치며.


첫 날, 이스티크랄 거리에서 숙소로 돌아가던 길




뜨거운 날씨와 동서양의 모습이 공존하는 다채로운 도시에서 동생과 나는 참 열심히도 걸어 다녔다. 처음 보는 이슬람 국가의 풍경과 잊을만하면 들려오는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송, 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의 천국.


날씨는 더웠지만 일부 명소종교적 이유로 머리를 가려야만 들어갈 수 있다 하여, 한국에서 챙겨갔던 얇은 머플러들도 요긴하게 써먹었다. 거대한 규모의 모스크들볼 때마다 신기했고, 과연 저것이 글자인가- 그 안에 새겨진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아랍어들 신기했다.


현지인 못지 않게 프레임에 자주 담기는 현지묘(?)


그리고, ''를 만났다.

 마주했던 곳은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인 '그랜드 바자르'(바자르는 '시장'을 의미한다)는 아니었고, '이집시안 바자르'라는 조금 작은 규모의 시장이었다.


식재료를 주로 취급하는 이집시안 바자르에는 향신료를 파는 가게가 많았고, 그랜드 바자르에 비해선 소규모였지만 현지인들이 많았다. 사실 나는 여행 즐겨도 독실한 한식 주의자라, 막상 해외에 나가면 현지 음식을 잘 먹지는 못한다. 향신료 냄새로 가득한 그곳에서, 현지인들에겐 미안하지만  사고 싶은  1도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우린, 하루 여행의 거의 마무리 즈음이었는 데다가 더운 날씨에 많이 지친 상태.


그렇게 다리는 잘 못 굴리더라도 눈알은 열심히 굴리며 터덜터덜 시장을 통과하고 있을 무렵, 어디선가 누군가 소리치는 게 들렸다. 어차피 여기서 누가 소리치든 말든, 당연히 터키 말이겠거니-하고 무시하고 가던 길을 갔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약간 '어눌한 한국말'이었다.


"떨어뜨렸어요!"


셀카봉 끝에 핸드폰이 달려있고, 지갑은 유럽여행 때 목격한 소매치기범을 교훈으로 가방에 꼭꼭 넣어뒀기 때문에 저 이야기는 분명 우리 이기가 아니리라.


다른 한국인에게 하는 말이겠거니-또 무시하고 동생과 패잔병처럼 행진하는데, 다시 소리가 들렸다.


"빨리 찾아가세요! 떨어뜨렸어요!"


여러 번 들리는 한국말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고, 결국 뒤를 돌아봤다.


소리 지른 이는 우리가 방금 지나쳤던 향신료, 견과류, 로쿰(터키쉬 딜라이트) 등을 파는 어느 가게의 종업원이었다. 키가 크고 곱슬머리에 안경을 낀 터키 청년.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도 나를 보고 있었던걸 보니 진짜로 내가 무언갈 떨어뜨린 건가-하는 생각에 주변 바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주변에 떨어뜨린 건 없었기에, 다시 그를 향해 말했다. 한국어로 얘기했으니 나도 모르게 한국어로 답하게 됐다.

"저요? 아무것도 떨어뜨린 거 없는데?"

그랬더니 그의 반응.


"떨어뜨렸어요! 내 마음."


그러면서 손을 자기 가슴에 올린다.

그러면서 또 찾아가란다.


"하!"

지금껏 그가 시장에서 소리친 말들이 우리를 끌어들이기 위해 던진 회심의 한국어란 생각에 기가 막혀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갑작스러운 한국어 공격동생과 나는 잠시 서서 웃기 시작했고, 그도 자기의 개그가 통했다 생각했는지 멋쩍은 듯 웃었다.


 그의 가게도 이런 느낌이었다

다행히 그는 우리가 그의 가게에서 꼭 무언갈 사가길 바라는 듯한 눈치는 아니었기에, 그에게 '땡큐!'하고 인사를 건넨 뒤 뒤돌아 다시 제 갈 길을 갔다. 그고 동생과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참을 그의 신박한 영업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음이 멈추질 않았다.




'앙뇽하세요!' '싸요!' '마쉬써요!' 등 보통 여행을 다니다 보면 현지인들이 가끔 어눌한 한국어로 영업을 하는데, 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노력에 엄지를 치켜세워주며 'Oh, you can speak Korean well!' 정도로 응답해 준다. 그러나 그의 한국어는 그런 단순한 인사들에 비하면 재치를 곁들인 고급 혹은 심화 수준이었다.

세상에- 떨어뜨린 게 마음이라고? 어이가 없네.



누군가의 시선에선 그의 영업방식 캣 콜링 중 하나라 겨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용어조차 몰랐던, 모든 시선들을 유쾌하게 받아치고 즐기기로  용감했던 우리 자매의 추억 한 켠에, 그의 남다른 영업방식을 캣 콜링이라는 씁쓸한 일화로 남기고 싶지는 않다.


단순한 영업 멘트를 넘어 회심의 그 말을 시전하기 위해 번역기를 돌을, 혹은 아는 한국인에게 물어봤을 그의 노력이 가상하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는 우리가 한국인인걸 단번에 알아챘던 걸까. 심지어 처음에 반응이 없었던 우리였는데도, 어떻게 계속 어눌한 한국어로 들이댔던 건지.




한 마디의 말로도 누군가를 잠시나마 웃게 할 수 있는(그것도 심지어 외국인을!) 나의 오랜 기억 속 짧은 여행, 그러나 영원할 그의 재치.


여행을 떠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아도,

'유쾌한 자가 타인의 마음속에 오래 산다'는 현 튀르키예, 구 터키 청년이 알려준 교훈과 그가 떨어뜨린 신박한 한국어는 계속 떠오르지 않을까.


"Wit makes its own welcome, and levels all distinctions.
  No dignity, no learning, no force of character, can make any stand against good wit."

"재치는 스스로 환영받고 모든 차이를 무너뜨린다.
 그 어떤 위엄성, 학력, 강인한 품성도 적절한 재치에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 Ralph Waldo Emerson -


작가의 이전글 여행어록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