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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Dec 04. 2022

겨울, 안드로메다행

2012, Winter, Antwerp, Belgium

"신이 내게 다음 직장을 허락하신다면 부디 학교는 아니었으면"

자주 하는 말이다. 특히 겨울에.


취업한 이래 무난한 겨울없었다. 예산을 연말까지 다 소진하느라 바쁘거나, 예산이 없으면 없는 대로 방책을 마련해야 해서 바쁘거나- 또 신학기 준비를 해야 하니 신입생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해서 바쁘거나, 졸업시킬 애들은 또 졸업을 시켜야 해서 바쁘거나- 이러나저러나 겨울은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편하지 않은 계절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학령인구 감소로 두들 신입생을 구하러 떠난다. 대학 고등학교로, 고등학교중학교로, 신입생 집에 혈안이 되어있다. 예전에 어느 사립고등학교 선생님이 중학교에 홍보차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사주며 학교 홍보를 한다는 이야기도 들은 것 같다.

학생이 줄면 일이 줄지 않냐 하겠지만, 자구책을 마련하는데 쏟아붓는 고민과 시간이 늘어나 겨울은 고되졌다. 얼마 전 인사이동으로 온 곳은 그런 고민은 덜한 대신 나더러 내년도 살림을 계획하라는데, 숫자가 싫어서 문과를 간 사람에게 너무 가혹하다. 흔히들 하는 말로 쎄가 빠지고 있다. 역시나 버거운 겨울.




입사한 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정말 딱 한 번이라도 겨울에 긴 여행을 떠나보고 싶. 크리스마스를 외국에서 맞이하는 건 어떤 느낌 인지도 궁금하고.

입사 이래 모든 장기 여름이었. 학교가 쿨하게 보내주는 장기간의 휴가는 여름방학, 신혼여행 정도인데 후자는 모르겠고 여름방학이 그나마 눈치 보지 않고 떠날 수 있기에.


초록초록한 것도 좋지만 여름 여행엔 없는, 코끝 시린 바람 냄새와 손을 비비며 부랴부랴 들어간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낭만이 나는  그리웠다. 낯선 이방인으로서의 겨울이.




이국의 겨울은 10년 전 휴학 중일 때 떠난 유럽여행이 유일했고, 여행 중에 눈이 자주 내렸다. 벨기에의 앤트워프. 그곳에 간 그날, 눈이 왔다. 유럽에서 맞은 첫눈이었다.


앤트워프는 예로부터 직물산업이 중심이었던 곳이라 레이스가 유명하다 했는데, 그날 하얀 레이스를 닮은 눈이 하늘에서 펑펑 내렸다. 함박눈이었다.



발등에 붙이는 핫팩도 붙이고 야상점퍼에 달린 모자를 쓴 채로 목도리를 칭칭 감았다. 장갑은 뭐 당연한 이야기. 그래도 다 좋았다.  타국에서 보는 눈이 처음이라 좋았고, 점퍼 위에 쌓인 눈은  털어내면 됐기에 우산이 필요 없어서 좋았고, 눈을 털며 들어간 카페의 커피 간절한 만큼 따뜻해서 좋았다.



일찍 둑어둑 해진 밤, 브뤼셀로 돌아와 숙소로 가는 길에 나는 분명히 보았다. 로를 달리 어느 버스. 버스 앞쪽 전광판이 달려 있었고 거기엔 버스번호와 함께 종점 정류장 이름이 송출되고 있었다. 종착지명, 'Andromeda'.

그때 당시, 어떤 이야기나 현상이 갑자기 흐름과 관계없이 흘러가게 됐을 때 쓰는 '안드로메다행'이라는 말이 막 나왔을 때였기에 나는 그 버스에서 송출되고 있는 'Andromeda'를 고는 기분이 묘했다.


순식간이긴 했지만 밤늦은 시간이라 흘낏 본 버스 안에는 손님도 없었다. 마치 저 버스를 타면 정말 뜬금없는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버스눈앞에서 사라져 버렸고, '혹시  버스가 내 눈에만 보였던 건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버스를 타면 진짜 어디로 가는 걸까. 혹 진짜 안드로메다, 우주로 가는 건 아닐까. 이국의 밤에 만난 안드로메다행 버스, 다소 몽환적이었다.



이번 주, 한파특보가 발효되고 날씨에 본격적인 겨울 냄새가 났다. 그 와중에 일이 많아지니 또 습관처럼 떠오른 생각. 신이 내게 다음 직장을 허락하신다면 부디 학교는 아니었으면.


모든 일을 다 뒷전으로 하고 떠나는, 겨울의 장기여행을 소망하다 갑자기 함박눈의 앤트워프가 떠올랐다. 안드로메다행 버스를 탈 수 있는 까만 밤의 브뤼셀까지. 아, 근데 생각해보니 단 한 번도 'Andromeda'라는 지명을 검색해 본 적이 없었다. 떤 곳인지 궁금했으면서.

10년이 훌쩍 지나 드디어, 구글 지도에 들어가 검색을 시도했다. 확한 명칭은 'Andromède'였고, 브뤼셀에 있는 어느 도로명이었다. 'Av. Andromède', 현지어로 읽으 '엉드호메드'가(街). 그냥 어느 길 이름을 딴 정류장의 이름이었다. 싱겁게도.


검색 목록에이곳을 제외하고도 전 세계 산재해 있는 'Andromeda'란 이름 장소들이 조회되었고, 자세히 보니 앤트워프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기심에 눌러본, 그러나 다소 어이없었던 Andromeda in Antwarp.



구글맵이 친절히 알려준 앤트워프의 안드로메다는 교롭게도 어느 초등'학교'. 늘상 써왔던 '안드로메다행'의 의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안드로메다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곳.


그나저나 겨울에 -학교를 벗어나고 싶, 련하게 앤트워프와 안드로메다행 버스 떠올렸거늘. 앤트워프에서 안드로메다행 버스를 탄다 학교 가는 길이 되는구나.


학교 이름에 이런 의미가 있단다


크롬에  친절히 사트를 번역해줬고,  홈페이지엔 학교 홍보하려는 콘텐츠들이 가득했다. (마치 우리 학교처럼)


안드로메다 교직원분들도 바쁘시군요.






우리말로 하면 그냥 '은하수로(路)', '은하수3길, 뭐 '은하수 초등학교' 정도였을 수도 있는데 왜 나는 신묘한 기대를 해댄 걸까. 마치 미지의 장소인 양.


그리고 겨울여행은 개뿔.

넌 어딜 상상하든 학교 벗어날 수 없다는 의미인 건지.



어이없는 웃음과 함께, 잠시나마 꿈꿨던 내 겨울여행에 대한 로망도 안드로메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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