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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w Mar 12. 2023

첫사'탕'

첫사랑 말고,

때는 바야흐로 뉴 밀레니엄, 2000년을 한 해 앞둔 1999년. 그러고 보니, 그 아이는 내 기억에 남아있는 20세기 마지막 짝꿍이다.

(나는 짝이란 말보다, 짝꿍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그냥 뭔가 짝꿍이란 말이 더 귀엽다.)


이젠 정말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라 자세히 생각나진 않지만, 4학년 새 학기 첫 짝꿍이었던 E군. 또래에 비해 키가 컸던 나와 짝꿍을 했으니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마른 체형, 눈은 가느다랗게 처진 항상 졸린 듯한 느낌 눈매였고, 눈매 그대로(?) 잠을 좋아했던지 까치집을 자주 짓는 머리였다. 말수가 적었고, 장난기가 거의 없는, 반에서 튀지 않는 조용한 남자아이.


낯선 새 학기에 다행히 무난한 짝꿍이었다.

그렇게 무던히 흘러가던 봄날의 어느 수업시간. E군은 갑자기 서랍에서 무얼 꺼내더니, 내 책상 위에 턱 하니 올려뒀다. 피라미드 형태로 쌓여 비닐로 포장돼 빵 끈에 묶여있었던 동그란 갈색의 사탕들. 솔직히 처음엔 사탕인지도 몰랐다. 이게 뭔가 싶어 봉지를 들어 한참을 살펴보다 사탕인 것을 알았다. '얘가 갑자기 이걸 왜?' 하는 생각으로, 이게 뭐냐고 물었다.


"야, 이거 뭔데? 이거 내 주는 거가?"

(내어주냐이 아니라, 사투리로 '나 주는 거야?'란 말입니다.)


그랬더니, 지금 생각해도 너무 귀여운 그의 대답.


"아- 엄마가 니 주라고 해서."


경상도 남자라 그런지, 심드렁한 말투로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얘기했다.


너희 엄마가 왜 나한테 사탕을 주시냐 물었더니, 역시나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하길.


"아- 엄마가 뭐, 여자한테 주면 된다고."


그즈음이 3월 14일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엔 핸드폰은커녕, 인터넷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시대인데 고작 4학년이었던 내가 '화이트데이'란 것에 대해 무얼 알고 있었겠냐만은. 그래, 그런 날이 있다고 들어본 적 있었.



웃긴 건, 아직도 확실히 기억난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도 침착하고 도도해 보이고 싶어,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억지로 참고 있었다. 집에 가서 자랑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으면서.


그때 받은 사탕을 그림으로 그리자면 이런 느낌


그 아이가 건넨 사탕은 정말 또래 남자애가 살 만한 사탕은 아니었다. 막대사탕도 봉지사탕도 아닌, 딱 봐도 제과점에서 파는 고급사탕이었다. 이트데이면 새 학기를 맞이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을텐데 용하고 심하기 그지없는 애가, 나랑 짝꿍 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그걸 엄마가 주라 했다고 순순히 건네는 게 속으로 우습기도 했다. 업시간에 준 것도 분명, 쉬는 시간에 주면 다른 애들이 볼까 봐서 일부러 그때 준 걸 게야.


그러고 보니, E군의 어머니야말로 참 다정하신 분이셨구나. 그러니 그런 순수한 아들 낳으신 거겠지. 머니란 원청이 있긴 했지만 뭐- 직접 납품한 건 E군이니까, '내 인생 처음으로 남자한테 받은 사탕이다!' 하는 생각에 내심 뻤던 것 같다. 그러니까 아직 기억하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와 짝꿍을 이어가던 또 어느 날. 그때 나는 유치(乳齒)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던, 소위 말해 이를 갈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날 그즈음에 또 흔들리던 이가 있었고, 신경이 쓰이니 혀로 계속 이를 쳐대면서 수업을 듣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다 수업시간에 뽁! 이가 빠져버린 것이다.


웃긴 건, 당황스러운 그 와중에 나는 빠진 내 이를 E군에게 보여줬다.(그게 뭔 자랑거리라고)

그리고 조용히 말했지. "야, 내 이 빠졌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이가 빠져도 화장실에 가겠다 손을 들지 못했다. 피가 줄줄 나는데도 거의 삼키며, 쩔쩔매고 있었다. 그냥 손을 들 선생님 말씀드리고 화장실에 갈까 하다가, 반 아이들의 이목이 집중될 걸 예상하니 너무 부끄럽고 싫어서 참고 있었다.


그때 E군이 한참을 날 지켜보더니, 삭이듯이 말을 걸었다.

", 니 화장실 가야 하는 거 아이가? 내가 한테 얘기해 주까?"


"아니 아니- 괜찮다!" 손사래를 쳤다.

그래달라 말만 하면 대신 손을 들어줄 기세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쉬는 시간이 되었고, 화장실에 가서 입을 헹궈냈다. 그날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수업시간에 이가 빠져버린 일을 이야기하면서 E군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내 짝꿍 되게 착한 애구나'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조용하고 내성적이라 튀는 걸 싫어하는  손들고 대신 말해주겠다고 한 걸 보니.




나는 아직 그의 이름 기억한다.

초중고 학창 시절의 그 수많았던 짝꿍 중 기억나는 짝꿍의 이름이 다섯은 될까. 그중에 E군이 있다.


작고 귀여운 걸 보고 간질거린다는 느낌이 들 때, 순우리말인지 사투리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쟈그랍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그 아이 생각하자연스레 떠오르  일화들이 모두 쟈그랍다. 흠- 뭔가 글로 표현이 잘 안 되는데 '쟈그랍다'를 그림으로 형상화한다면  어피치 이모티콘이다.


쟈글쟈글


나이를 먹을수록 기억의 용량에 과부하가 온다는 것이 느껴진다. 왜 어른들이 기억을 잘 못하시나 생각했는데, 살아온 인생이 길어지는 만큼 그것을 다 담기엔 용량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다. 나도 예전만큼 옛일들을 다 기억해내지 못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두고, 소중한 일화는 꼭 기록해 두려고 한다. 잊고 싶지 않은 나의 소중한 추억들이 의도와 관계없이 우선순위에 밀려 조용히 잊힐지도 모르니. 기록하고 언제든 다시 소환시켜야지.


고로 나의 첫사랑 말고 첫사'탕'이렇게 박제해 둔다. 나의 어린 시절에 이렇게 앙증맞은 일화, 귀여운 짝꿍이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 순수함을 잊지 않으려. 그나저나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듯 작지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었을까.




이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결혼했다면 한 가정의 가장이 됐을지도 모를 E군.


내가 기억하는 20세기 마지막 짝꿍이었던 너는 분명 좋은 어른이 되었을 게야.

나는 그렇게 믿.


그건 그렇고 3월 14일이 다 와가서, 갑자기 생각나서 쓴 글인데. , 암튼, 아주 그냥-



쓰면서도 쟈그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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