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utumn dew Nov 26. 2023

외래인(外來人)

그리고 외래어에 대한 면역력

사무실을 홀로 쓰기 시작하면서, 낯선 이들과 만날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외롭지 않냐 묻지만, 근무시간 외에 친한 사람들과의 시간은 틈틈이 챙기고 있었기에 혼자라 생각한 적은 없었고 지금도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부작용이라 한다면 친한 사람들과는 더욱 친해졌는데, 반대로 낯선 사람들은 더욱 낯설어졌다는 것.




얼마 전, 업무 차 전국에서 오는 손님을 맞아야 하는 일이 있었다. 오랜만의 행사였는데 하필 또 1박 2일, 이틀간이었다. 부끄럽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홀로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걱정하며, 마침내 손님들을 맞았다. 무사히 첫날 일정을 마치고 회의장 정리를 하려는 중에, 본의 아니게 손님들의 저녁 식사에 끌려갔다. "절 보내주시는 게, 절 위하는 건데-"라고 웃으며 돌려 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낯선 이들과의 단체 회식. 오랜만에 신입사원 때의 숨 막힘을 경험했다. 나도 이제 입사한 지 10년이 넘었거늘, 적당히 응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최근 혼자 지냈던 탓에 낯선 이들과의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들끼리의 반가움이 지배적이었던 터라, 식당은 시끌벅적하기 그지없었다. 불판마다 내려져 있는 환풍구에 이들의 수다스러움도 조금은 빨려 들어갔으면 했는데, 개뿔. 내 기(氣)만 빨려 들어간 듯.


전국에서 온 손님들의 다양한 말투와 어조. 서울말부터 전국 각지의 사투리가 식당 안에 가득했다. 어스름한 저녁, 낯선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어이없는 비유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순간 외국인들의 저녁 식사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다른 말투를 구사하는, 나와 다른 곳에 사는 이방인들과의 저녁 식사. 그렇다고 외국인이라고 할 순 없으니, 외래인(外來人) 정도가 적당하겠다.



다음 날, 마지막 2일 차 일정이 시작됐다. 그날은 수능시험일이었는데 1년에 단 하루, 공식적으로 10시까지 출근할 수 있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9시에 시작이었기에, 올해도 10시 출근은 남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전날 회식에 끌려가느라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회의장 정리부터 해야 해서 8시에 출근을 했다. 와중에 당일 회의장에 올려 둘 커피도 준비해야 했는데 근처에 일찍 문 여는 카페가 없었고, 그나마 봉지커피 보다 낫겠지 싶어 물을 대량으로 끓여 드립백 커피를 한 잔씩 내렸다. 다행히 따듯한 커피를 회의 시작 전에  수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일정이 다 끝나갈 무렵,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손님 중 한 분이 대뜸 "솔직히 아침에 커피는 맛이 없었습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아침 일찍 문 여는 카페가 없어서 직접 드립백 커피를 내렸다고 답했는데, 돌아온 그의 답변은 "그래서 맛이 없었나 보네요." 허허.


이어 그는 그래서 커피를 남겼다고 했다. "아, 그러셨구나." 하고 근처에 일찍 문 여는 카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다시 한번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그렇게 손님들을 보내고, 회의장을 정리하는데 그분의 자리뿐 아니라 몇몇 자리에도 덜 마신 커피들이 남아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숙소에서 다들 커피를 드시고 오셔서 남겼나.' 생각하고 말았을 텐데, 그 말 들어서 그런지 '진짜로 이 드립백 커피가 별로였나.'라는 생각부터, '회의 중에 그분이 다른 사람들이 듣게끔 커피가 맛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나.' 하는 의심도 들었다.



그가 솔직했던 것처럼, 나도 솔직히 말해 그의 말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속으로 생각하고 그냥 놔뒀어도 될 것을, 굳이 아침 일찍 나와서 혼자 열심히 준비한 사람에게 저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있을는지. 그러다가 또다시 '아휴, 그래. 고급 드립백은 아니었으니까 그럴 수 있지.'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렇게 다시 뒷정리를 하다 문득 어제 회식 때의 감상이 떠올랐고, 홀로 되뇌었다. 그래, 그는 외래인이지 않냐고. 나와 다른 곳에 살며,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외래인.


'다음번 회의 때는 그 커피를 내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말을 내가 선호하는 언어로 구사하지 못하는, 자기가 쓰는 말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어느 외래인의 이라고. 바꿔 말해, 영어가 미숙한 사람이 '선생님의 노력은 감사하지만, 아침에 주신 커피는 제 입에 맞지 않았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모닝커피는 맛이 없었습니다.'라고 짧게 표현하는 것이 훨씬 쉬운 것과 같은 논리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치부하니,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쉬는데 또 갑자기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번엔 다른 부연해석 하나가 딸려 왔다. 오히려 '가끔 이런 외래인의 낯선 한 방이 필요하겠다.'는 생각. 그의 언어는 내가 그동안 너무 낯선 이들과 교류가 없었다는 처럼 느껴졌기에. 그것은 낯선 언어에 대한 나의 면역력이 낮아져 있었다는 이기도 했다.


외국어를 잘 구사하고 이해하려면, 외국인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것처럼 낯선 표현을 구사하는 외래인과의 대화가 그동안 너무 뜸했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그는 웃으며 말했고,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님은 분명했다. 그저 외국어처럼 낯설게 들린 누군가의 솔직한 후기 정도로 남겨두면 되지 않으려나.




그들다른 곳에서 왔고, 다른 어조를 사용했기에 외래인이라 이야기한 것뿐, 사실 지금도 외래인은 도처에 존재한다. 두려워하지 않고 외래인의 언어에 귀 아니, 마음을 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낯선 이들의 낯선 언어에 의연하고 싶.

외국어는 몰라도, 외래어는 그래도 조금은 소화하고 니까.

작가의 이전글 굳이 친절할 수 있도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