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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민 Jan 30. 2023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 그 사이 어딘가

나는 이대로 살기로 했다

 집을 가꾼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할까.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 집을 먼지 한 톨 없이 청소하는 것?


 최근에 미니멀리즘 인테리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미니멀리즘 그 자체인 집을 본 적이 있는데, 냉장고를 열면 아무것도 없고(바로 소비할 만큼만 산다고 했다), 거실엔 TV도 없이 소파 하나가 덩그러니, 주방에도 싱크대 위에 접시는 물론이고 물기 한 방울조차 없는 집이었다. 그렇게 유지하며 사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고 깔끔한 집 모습이 부럽기도 했지만 어딘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집이라 개인적으로 정이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 모습은 역시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므로 미니멀리즘이야말로 옳은 길이며 모두가 도착해야 할 종착지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낀 사람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비움'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당근마켓이 굉장한 수혜를 보고 있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나도 대세를 따라 비움을 실천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꼭 버리지 않아도 되는 물건을 버리고서는 두고두고 후회한 적이 있어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는 의도치 않은 맥시멀리스트이다. 굳이 의도치 않았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가 새로운 물건을 아주 자주 사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특별하게 좋아하는 물건들은 제외하고). 물건이 고장 나지 않는 한 중복이 되는 물건을 사는 일은 좀처럼 없으며 유행하는 물품이라면 무조건 사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도 아니다. 내가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쓸데없이 물건에 의미 부여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준 물건은 고장이 나든 기능을 잃든 잘 버리지 못하고, 나와 함께 수년간을 같이 지냈다는 이유로 또 버리지 못한다. 물건을 사고 받은 쇼핑백이 예뻐서 버리지 못하고, 선물을 싸고 있던 포장지와 리본도 포장하는 데 든 정성이 생각나 버리지 못한다. 10년이 넘어 잉크가 다 날아가 백지만 남은 영수증조차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 말 다 했다.


 엄마는 항상 말씀하셨다. 물건이 하나 들어오면 하나는 비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그래야 집도 숨을 쉴 수 있다고. 모든 것을 끌어안고 살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이다.


 미니멀리즘이 과하면 강박이 되고, 맥시멀리즘이 과하면 집이 쓰레기장이 된다. 미니멀리즘을 완벽히 구현해 낸 집이 예뻐 보인다고 꼭 따라 할 필요는 없다. 괜히 따라 한답시고 이것저것 버렸다가는 나처럼 후회하기 십상이다. 누군가 산 물건이 예뻐 보인다고 따라 사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예뻐서, 좋아 보여서 따라 샀는데 결국 나와는 맞지 않아 창고행이 된 물건들(아까워서 버리지도 못하는).


 미니멀리즘, 맥시멀리즘이라는 단어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리고 가만히 나 자신의 매일을 돌아보며 나는 어떤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가를 헤아려보면 나에게 어느 정도의 물건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옷을 좋아하는가? 내가 옷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라면 꽉 찬 옷장을 보며 굳이 한숨짓지 않아도 된다. 그 대신 3년 입지 않은 옷은 버리는 '비움'을 선택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나는 그릇을 좋아하는가? 그렇다면 가끔 기분 따라 예쁜 그릇을 사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그릇은 버리거나 나눔을 하는 '비움'을 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옷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그릇이나 주방집기를 아주 좋아하므로 옷은 미니멀리스트, 그릇은 맥시멀리스트다. 또한 나는 침실에서 그다지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 아니지만 양질의 수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므로 매트리스는 비싼 것을 구입했으나 침구는 여름용 한 채, 봄가을용 한 채, 그리고 한겨울용 속통이 전부이다. 이마저 여름용 한 채는 최근에 구입한 것이다. 반면에 거실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홈패브릭과 그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소파 위의 쿠션 커버나 담요, 그리고 소파 뒷벽의 액자 속 그림을 다양하게 바꿔주는 편이다.


 집 꾸미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인스타그램에 집 사진을 올려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을 하곤 하는데, 한 번은 어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내 거실을 보더니 본인이었으면 아마 쿠션을 다 치워버렸을 거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분의 계정을 가 보니 미니멀리즘이 확연히 드러나는 집이라 맥시멀한 우리 집을 보고선 그런 생각이 들었을 수 있겠다 싶었지만 왠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역시 물건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나? 나도 쿠션을 싹 치워볼까. 나는 며칠을 맥시멀한 우리 집 거실에 관해 생각했다. 솔직히 물건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정리가 안 된 부분이 많이 보여 바쁘단 핑계로 집을 살뜰히 보살피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면서 그분의 미니멀한 집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쿠션들도 다 치우고 그림들도 다 치워버린다면 어떨까. 상상해 봤더니 우리 집 같지가 않았다. 거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꼭 맞는 거실이란 이런 것이기 때문이다. 눈길 닿는 곳에는 좋아하는 그림이 있고, 언제든 베고 기대며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쿠션이 가득한 소파.


 나는 쿠션들을 그대로 놓아두기로 했다. 꼭 미니멀리즘이 옳은 건 아니니까. 세상엔 여러 가지 삶의 형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예쁜 쿠션 커버를 발견하면 살 것이고 계절에 맞춰 커버를 바꿀 것이다. 봄과 여름이 오면 옐로나 오렌지 같은 화사한 컬러, 추운 계절엔 톤다운 된 어두운 컬러의 쿠션을 놓아 창밖 계절을 집안으로 들여올 것이다. 마음에 드는 포스터나 그림을 발견하면 액자를 바꿔줄 것이다. 그 대신에 정리정돈은 확실히 하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나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곧 나의 집에 대한 태도이자 삶에 대한 태도도 결정할 수 있다. 나만의 생활양식을 만드는 것은 삶에 있어 흔들리지 않는 돛대를 내리는 것과 같다. 나는 미니멀리즘과 맥시멀리즘, 그 사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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