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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민 Apr 01. 2023

0의 개수와 미학적 인테리어

가격과 만족도는 비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인테리어는 비싼 취미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수천씩 들여 집을 뜯어고치는 인테리어 공사를 차치하고도, 집을 꾸민다는 의미의 인테리어 측면에서 봐도 수백에서 수천을 호가하는 유럽 브랜드의 가구와 명품 가전들을 보면 그런 인식이 생길 법도 하다. 특히 요즘 방송하는 관찰 예능을 보면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집 속 호화로운 가전, 가구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그것들의 가격을 보고 나면 헉, 하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차 한 대 값인 스피커나 소파라던가 웬만한 직장인 월급에 가까운 조명이라던가. 비정상적으로 달려있는 0의 개수를 확인하며 내 눈을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가지고 싶은 나머지 하루종일 머리에 맴도는 경우나 이 물건이 나에게 가져다 줄 행복이 너무나 크고 확실한 경우에는 과감히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에 나는 가격과 만족도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명품 가구나 가전을 소유했다는 사실 자체로 인한 만족감은 분명 있겠지만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요소로만 봤을 때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인테리어라는 것 자체가 너무나 취향을 타는 대상이기 때문에 최고급으로 몇억씩 들인 인테리어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 말인즉슨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단돈 얼마로 소품 몇 가지만 배치하더라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 인테리어를 할 때는 예쁜 집을 만들려면 돈을 많이 들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아낀답시고 가성비 인테리어를 해봤자 중복 지출만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소소한 인테리어 변경 후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집을 꾸민다는 것을 굉장히 특별하게 생각하곤 한다. 특히 자취를 하거나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 혹은 내 집이 아닌 경우에는 '인테리어'라는 것에 시간이든 돈이든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내가 얼마간 머물 공간이라면, 소소하더라도 내 마음에 드는 공간으로 만들어보는 것을 꼭 추천한다. 이전에도 이야기했듯이 인테리어는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에게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미친다.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이 단칸 자취방이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의 방 하나든 간에 공간이 개인에게 주는 힘은 지대하다. 내가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고, 아침에 일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공간의 모습과 분위기이니까 말이다(내가 출장을 유독 힘들어하는 이유도 지금 생각해 보니 싸구려 호텔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 것 같다는 사실을 지금 깨달았다).


 뭐부터 해야 할까 고민인 사람들을 위해 나의 경험을 토대로 큰돈 들이지 않고도 인테리어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한다.




 들인 돈 대비 공간에 가장 큰 분위기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은 단연코 조명이다. 나는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5년 넘게 했다. 원룸보다 더 좁은 기숙사에서의 1년 반을 합치면 총 7년간의 단칸방 생활이다. 내가 이 단칸방 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샀던 것은 바로 스탠드 조명이었다. 예전에는 스탠드 조명의 디자인이 거기서 거기였다면 요즘은 조명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 디자인 선택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저렴하면서도 예쁜 가성비 물건을 찾기 위해서는 이케아를 가보면 여러 가지 조명의 실물을 구경하고 살 수 있다. 조금 더 여유가 있다면 북유럽 소품을 판매하는 쇼핑 사이트에서 직구를 하는 것도 추천한다. 스탠드 조명은 벽에 못을 치지 않아도 되니 내 집이 아니라 임차로 살고 있는 집에서도 활용이 가능한 방법이다. 주백색 말고 전구색 조명을 끼워놓고 갓을 벽 쪽으로 돌려놓으면 간접 조명의 효과도 톡톡히 누릴 수 있다. 나는 메인등은 거의 켜지 않는 편이다. 집에서 업무를 보거나 빛이 꼭 필요한 일을 하는 일은 거의 없고 주로 휴식의 공간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간접조명이면 충분하다(그게 더 분위기 좋기도 하고).

간접조명의 힘. 저렴한 마켓비 제품이다.


 두 번째는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커튼과 블라인드는 뜨거운 햇빛을 막아주는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탁월하지만 면적 자체가 크기 때문에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신혼집에 입주할 때 대부분의 커튼을 차르르 커튼으로 골랐는데, 요즘은 예쁜 패턴이 그려진 커튼들도 많고 소재도 아주 다양하다. 차르르 커튼 같이 자르륵 흐르는 소재는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고 블라인드는 지적이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요즘 데스크테리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주로 블라인드를 설치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서재에는 커튼보다는 블라인드가 훨씬 잘 어울린다. 나는 최근에 주방베란다로 나가는 문에 발랄한 패턴이 그려져 있는 한 폭 커튼을 달았는데 주방 분위기 전환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커튼과 블라인드를 전체적으로 시공하면 생각보다 꽤 예산이 들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소소하게 포인트 디자인의 한 폭 커튼을 다는 방법이라면 예산을 절약하면서도 분위기 전환에 성공할 수 있다.

풋풋한 패턴의 커튼. 드롭드롭드롭 제품.


 세 번째는 패브릭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패브릭이란 침구, 쿠션커버 혹은 러그 등을 포함한다. 면적이 넓을수록 공간에 미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원룸 같은 경우에는 특히 침구를 바꾸면 집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다. 원룸이 아닌 경우에는 거실이 집의 메인 공간인 경우가 많으므로 쿠션커버나 러그가 도움이 된다. 나는 결혼 후에 화이트 침구만 내내 고집하다가 여름에만 잠깐 쓸 얇은 침구를 구매했는데, 발랄한 패턴과 벽지와 잘 어울리는 오트밀 컬러 덕분에 침실에 들어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계절별로 침구를 바꾸는 것, 계절에 맞는 컬러를 사용한 쿠션커버 같은 것들은 아주 소소하지만 인테리어에 변화를 주고 매일 아침을 기분 좋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좋아하는 깅엄체크의 여름 이불.


 이 세 가지 방법은 웬만하면 10만 원 이하로 가능하다. 처음에는 나도 조명, 침구, 소파 커버 같은 것들까지 백화점 상품이나 브랜드 있는 것만 고집했는데 그렇지 않은 제품들도 충분히 괜찮다는 것을, 가격이 나의 만족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침대, 소파 등의 오래 쓸 가구나 매일 사용하는 가전이라면 품질이 보장되는 좋은(비싼) 것을 사더라도 소모되거나 교체할 법한 소품은 예쁘고 저렴한 것으로 자주 바꿔주기로 마음먹었다.


 집은 애정을 쏟으면 쏟을수록 더 사랑스러워진다. 집을 가꾸면서 나의 마음도 같이 가꾸고, 집을 정돈하면서 나의 마음 또한 정돈할 수 있다. 학창 시절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내 방 인테리어도 가구도 모두 엄마가 결정했다. 그때는 나의 취향도 없었거니와 공간을 꾸미는 것에 별 관심도 없었으나(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기도 하지만) 독립하여 나의 공간이 생긴 후에 알게 되었다. 나의 공간을 꾸미는 것의 소중함을.

 북유럽의 가구들을 보면 그들의 디자인 철학을 알 수 있다. 즉, 디자인은 일상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디자인이라고 하면 어떤 특별한 대상에 관한 디자인만 생각하지만 북유럽의 알바 알토나 프리츠 한센 같은 디자이너들은 매일의 일상에 디자인을 끌어오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매일의 일상에 나의 취향을 녹인다면 지루한 일상에도 비타민 같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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