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인테리어의 매력에 대하여
처음부터 아치게이트를 구상한 것은 아니었다. 신혼집이 될 구축아파트 리모델링을 위해 나름의 설계를 하던 그 당시, 아치게이트는 너무 유행하던 아이템이었다. 나는 유행보다는 유니크를 좋아해서 유행템은 일부러 피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집에 들어가 보지도 않고 집을 샀다. 비협조적인 세입자가 살고 있었고 집주인이 바뀐다고 해도 협조를 해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우린 아파트 정보에 기재된 평형별 도면만 보고 인테리어 계획을 세우다, 세입자가 나간 후에야 집 구조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주방 앞에 있는 작은 방에는 벽 대신에 분합문이 있었다. 그마저 오래되어 제대로 슬라이딩이 되지 않고 있었다. 달리 할 수 있는 선택도 없었지만 나는 과감하게 그 문짝들을 다 뜯어내기로 했다.
이제 어떡하지. 같은 아파트의 다른 시공사례를 보니 아예 이렇게 뜯어낸 채로 오픈형 주방 겸 다이닝룸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면 방이 하나 없어지는 것 아닌가. 어차피 다이닝룸으로 사용할 예정이기는 했지만 나는 공간을 분리해서 꼭 방 세 개를 유지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어쨌든 새로 벽을 쳐야 한다. 나는 인테리어 카페에서 유명한 목공 사장님을 섭외해서 가벽 설치를 요청드렸다. 그리고 이제 문을 달아야 하나? 아니, 재미없는 문보다는 포인트로 아치게이트를 만들어볼까.
그렇게 해서 우리 집에 아치게이트가 생긴 것이다. 인테리어를 구상할 때는 없던 설정이었다. 아치게이트를 만들자는 결정부터 시공에 이르기까지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무언가를 고민해서 결정할 때 길게는 몇 달까지 소요하기도 하는, 좋게 말하면 신중하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나에게 충격적일 만큼 빠른 상황전개였다. 셀프 인테리어를 할 때는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닥쳤을 때 빠르게 결정하고 대처하는 민첩성이 필요하다.
지금, 그 충격적인 아치게이트는 우리 집의 포인트다. 그리고 아치게이트가 있는 방은 서재이자 다이닝룸이 되었다. 책장과 식탁이 공존하는 방. 밥도 먹고 책도 읽고 남편에게는 공부방이 되기도 하는 그런 방. 남편은 서재이자 다이닝룸에 있는 식탁에서 공부를 한다. 식탁 위에 모니터를 설치해 달라고 스무 번쯤 나에게 이야기하였으나 식탁 위 모니터는 왠지 끔찍해 집에 모니터가 두 대나 놀고 있는데도 나는 그 요청들을 다 묵살하였다. 식탁 위 모니터가 올라가는 순간 식탁은 절대 식탁으로 사용할 수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거실에서 서재/다이닝룸을 바라보면 아치 속 공간이 아주 아늑하게 보인다. 이 방에는 전구색 등과 조명만을 넣었고 포인트로 웜브라운 톤의 벽지를 도배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나의 의도가 정확히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뿌듯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톤의 벽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벽지를 봤는지 모른다. 벽지 브랜드의 컬러북을 죄다 가져와서 벽에 세워보고, 조명을 꺼보고, 또 켜보고, 낮일 땐 어떻고 밤일 땐 어떤지까지도 확인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방의 노랗고 따스한 분위기부터 식탁, 책장 등의 가구들, 벽지, 그리고 아치게이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를 사랑하며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을 묻는다면 단연코 이 방을 얘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에서 머무는 시간은 극히 적은데, 다이닝룸이라고는 명명하였으나 대부분의 식사 시간은 TV가 있는 거실 테이블에서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식탁에 앉아 책을 읽기에는 너무 불편해서 결국 책장에서 책을 꺼내서 거실 소파로 가기 때문에 서재라 하기에도 약간 민망하다.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이 방만 북향인 터라 해가 드는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해가 진 시간이라 집에서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주말에는 널찍한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이 방을 가장 좋아한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굴비, 혹은 무용하지만 보기에 즐거운 보석 같달까?
아치게이트는 보통 안방에 있는 파우더룸이나 주방에 딸린 팬트리룸에 많이들 설치한다. 파우더룸과 팬트리룸은 굳이 문을 닫음으로써 공간을 완전히 분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파우더룸은 문이 없는 편이 편할 것 같기도 하다. 우리 집 아치게이트의 과감한 점은 바로 이 공간이 파우더룸이나 팬트리룸 같은 알파 공간이 아니라 방으로써의 메인 공간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방으로서 존재하지만 문이 없다는 것? 사실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100% 확신을 갖고 한 것은 아니다. 문이 없는 방이 어떨지에 대해서 길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아치게이트에 꽂혀서 내린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직 불편함은 없으며 여전히, 아치게이트 속 서재이자 다이닝룸은 나의 자랑이다.
아치게이트의 모양은 목공 사장님께서 즉석에서 잡아주셨다. 나는 그저 주방 앞에 있는 방에 가벽을 칠 것이고 거기엔 아치게이트가 있다, 정도의 개념만 머릿속에 있었지 벽의 어디쯤에 아치게이트를 설치할지, 아치게이트의 너비와 높이는 어느 정도로 잡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목공 공정을 진행하는 날 사장님께서 어디에 게이트를 칠까요, 물어보셨고 나는 어- 이쯤이면 되지 않을까요, 하고 아무 포인트나 찍었다. 게이트의 크기와 너비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 크기면 되지 않을까요. 어떤 것들은 그리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는 것에서 셀프 인테리어는 참으로 매력적인 작업이다.
공사 마지막 날은 도배 공정이었다. 다른 공정들에서는 집에 계속 머물며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했는데, 도배 공정에서는 집에 머물 수가 없어서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결혼 준비를 하며 도배 사장님의 연락을 기다렸다(결혼식 두 달 전이었다). 정확히 기억난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청첩장에 들어갈 약도와 예식장 식권, 그리고 모바일 청첩장을 직접 만들었었다. 기본적으로 찍혀 나오는 약도와 청첩장을 살 때 같이 살 수 있는 식권, 그리고 청첩장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해 주는 모바일 청첩장이 너무 못 생겨서 직접 만들겠다고 남편에게 통보했는데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것이 아마 셀프 인테리어를 하게 된 이유와도 맞닿는 나의 성격이지 싶다.
한창 작업을 하다 보니 몇 시간이 흘렀고, 도배가 완료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들어간 집에서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치 게이트가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셀프 인테리어의 매력은 바로 이런 점에 있는 것이다. 나는 다음에 이사를 간다고 해도 꼭, 셀프 인테리어를 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