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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민 Jan 27. 2023

인테리어를 위한 인스타그램

내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탐구

 어린 시절, 의자 두 개 위에 이불을 펼쳐 미니 텐트를 만들고 그 아래서 놀았던 기억은 누구든 있을 것이다. 나는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사춘기가 오기 전 남동생은 내가 뭘 하든 따라 하고, 어딜 가든 따라오고 싶어 했다. 우린 의자 아래 아지트를 아늑하게 꾸미고 그 안에서 곧잘 놀았다. 너무 얇지도 두껍지도 않은 이불을 한 겹 통과한 햇살이 약간은 텁텁하지만 기분 좋게 우리를 감쌌던 기억이 난다. 그 좁고 환기도 안 되는 공간의 무엇이 그렇게 좋았는지. 우리는 무의식 속에 모태의 자궁 속 아늑한 느낌을 항상 그리워하는 걸까?


 이불 텐트의 멋진 점은 이불 하나로 건물의 벽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건물의 벽체가 비어있는 공간인 보이드를 형성하듯이 이불은 보이드를 형성하고, 그 보이드 공간에 의미가 부여된다.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보이드를 갈망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려서는 이불 텐트를 만들고, 커서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보이드 공간의 소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다 운 좋게 콘크리트 속 보이드 공간을 소유하고 나면, 그 공간을 취향대로 꾸미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인테리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된다.


 인테리어를 시작하면 턴키와 셀프 인테리어라는 두 갈래 길 사이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두 갈래 길에서 나는 셀프인테리어라는 길을 골랐고 목적지에 나름 성공적으로 도착했다. 이제 공사 후 3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셀프 인테리어와 공간에 관한 나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내 글이 셀프 인테리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셀프 인테리어를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1번, 후기 좋기로 유명한 시공업자 수소문하기.

2번, 공정별 고수 연결해 주는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하기.

3번, 돈 얼마 있나 통장 잔고 확인하기.(물론 이것도 아주 중요하다.)

1번도, 2번도, 3번도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바로 인스타그램 구경하기와 힙한 카페 방문하기다.


 인스타그램이라니,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

 사실 인스타그램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의집이어도 괜찮고, 핀터레스트도 괜찮다. 리빙/인테리어 블로그도 물론 좋다. 이것들의 공통점은 '사진'이 많다는 것이다. 세상에 감각 있는 사람은 아주 많고,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들의 센스와 감성이 넘치는 공간을 담은 사진을 무한정 볼 수 있다. 감성에 홀리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공간을 꾸며놓았는지, 그들의 인테리어, 가구, 오브제가 집 안에서 어떻게 하모니를 이루는지, 그런 것들을 보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모든 집이 예뻐 보일 테지만, 매일 구경하다 보면 아, 나는 이런 집에 살고 싶다- 하고 와닿는 공간들이 있다. 그런 공간들을 캡처해서 휴대폰에 '나의 취향' 폴더 하나를 만든 후 저장한다. 탐색-캡처-저장- 루트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인스타그램이나 오늘의집 사진들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시기가 오는데 이때 나의 취향 폴더를 확인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느낌과 분위기가 비슷한 사진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그 분위기가 내가 원하는 공간, 나의 취향이다.


 그렇다면 힙한 카페는 왜 방문해야 할까. 인테리어 구상하다 지쳤으니 맛있는 커피 한 잔 하며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일까.

 아니다. 원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는 상상력도 필요하지만 체험 학습도 꼭 필요하다. 요즘에는 힙한 공간들이 너무나 많다. 꼭 카페가 아니더라도 가구의 쇼룸이나, 인테리어 소품 편집샵 같은 곳들도 인테리어를 예쁘게 꾸미는 것을 넘어서 공간 자체를 하나의 체험 스팟으로 꾸며놓았다. 사람들은 그런 공간들에 방문함으로써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트렌디한 제품들을 체험하는 것도 좋고, 평소에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경험하며 나의 취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도 의미가 있다. 많이 느껴보아야 한다. 다니다 보면 알게 된다. 내가 어떤 조도를 좋아하는지, 어떤 컬러와 무드의 공간을 편안하게 느끼는지, 따뜻하고 아늑해 보이는 우드 느낌을 좋아하는지, 차가워 보이지만 세련된 스틸 느낌을 좋아하는지. 미드센츄리 풍의 아방가르드한 느낌이 좋은지, 북유럽의 모던하고 심플한 느낌이 좋은지, 혹은 팝아트 같은 키치함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공간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를 찾다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게 된다. 나도 몰랐던 나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은 꽤 흥미롭다. 게다가 맛있는 커피까지 마실 수 있다니!


 그런 취향들이 모이고 모여 어느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저절로 나의 공간이 그려져 있다. 그러면 그것을 바깥으로 꺼내놓기만 하면 된다. 쉽고 직관적인 방법을 추천하자면 손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스케치북, 디지털 기기 사용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아이패드 그림 그리기 어플, 혹은 우리에게 익숙한 파워포인트 같은 것들이 있다. 세 가지 다 해도 좋다. 조금 더 완성도를 요구한다면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이나 Floor Plan Creator 등의 인테리어 관련 어플을 사용하는 방법인데, 익숙해지는 데 약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요즘은 비슷한 기능을 오늘의집에서도 제공하고 있어서 좀 더 쉽게 할 수도 있다.


 뭐든 도구가 준비되면 공간별로 그림을 그려본다. 거실, 침실, 작은방들, 주방, 화장실, 현관, 베란다 등.

파워포인트에는 패턴 채우기 기능이 있어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거실 파트를 꾸밀 때는 구정마루나 동화마루 등의 마루회사 홈페이지에서 회사가 판매하고 있는 모든 마루 제품의 샘플 이미지를 다운로드할 수 있다. 거실 바닥 면을 클릭해 패턴 채우기를 하면 이 마루를 사용했을 때 바닥이 어떤 느낌으로 보일지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벽과 바닥을 완성하고 나면 위시리스트에 있던 가구들을 하나씩 배치해 본다. 머릿속으로만 그려보던 인테리어를 밖으로 꺼내보는 작업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다. 때론 머릿속에서는 분명 가능했는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요소들도 발견하게 된다. 이 작업의 좋은 점은 그런 상황에서 재빨리 Plan B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경우엔 실제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보니 내가 그려본 공간이 100% 현실에서 재현되지는 않았지만 90% 정도의 싱크로율은 보이는 듯하다. 처음이라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있었고 아쉬운 점도 분명 있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반면교사가 생겨 오히려 좋았다. 이러나저러나 지금 우리 집은 우리 부부 둘이 생활하기에 아주 완벽하게 꾸며져 있다.


 셀프 인테리어 작업은 시작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며 계획부터 감리, 실행, 완성까지 모든 단계에 이르기까지 내가 관여할 수 있는 인생에 몇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시킨 일도 아니기에 어떠한 장애물이 생겨도 스스로 감당해야 하지만, 단순히 인테리어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고 꼭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인생에서 몰랐던 많은 부분들도 알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인테리어가 끝난 후 나의 마음속에는 내가 못 해낼 일은 없다,는 단단한 심지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셀프 인테리어에 큰 벽을 느끼지만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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