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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텀민 Feb 11. 2023

인생에서 가장 비싼 쇼핑

대충 할 수 없지

 우리 부부의 신혼집은 반셀프 인테리어로 완성한 집이다. 반셀프 인테리어란 인테리어 업체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일임하는 턴키 방식이 아니라, 집을 어떻게 리모델링할지 스스로 계획을 하여 어떤 공정이 필요할지 결정하고, 필요한 인테리어 공정 각각에 관해 각 분야별 전문가들과(예를 들면 철거업체, 타일공, 목수, 필름 업자, 도배 업자 등) 개별적으로 계약을 하고, 전체적인 공사 일정 조율과 공사 시 관리감독은 본인이 스스로 하는 것이다. 본인이 시공하는 것이 아니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반셀프 인테리어지만 셀프 인테리어라는 말로 통용되기도 하며 보통 '셀인'이라는 단축어로 일컬어진다.


 셀프 인테리어로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우와 대단하다, 그거 힘들다던데. 두 번째 반응은 예산 많이 아꼈어? 정도이다.


 첫 번째로, 셀프 인테리어는 힘들지 않다. 두 번째로, 셀프 인테리어는 예산을 아낄 수 없다.

 2018년, 첫 집을 매수하여 다음 해인 2019년 여름에 인테리어 공사를 했다. 나에게 셀프 인테리어를 결심하는 데는 어떠한 고민이나 결심도 필요 없었다. 원래도 무언가를 할 때 남의 손보다 내 손으로 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남의 손에 나의 집을 맡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마침 나는 두 달간의 휴직을 할 예정이었으므로 시간적 여유 또한 있었다.

 나에게 셀프 인테리어가 당연한 선택인 듯 여겨진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학창 시절 대형 평수를 셀프 인테리어 하는 엄마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학원 다니느라 바빠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그 집을 완성했는지 곁에서 지켜보지는 못했다. 어느 날 우리는 엄마의 취향대로 완벽하게 고쳐진 새 집으로 이사를 갔고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거의 20년간 살았다.(나는 10년도 안 살았지만)

 이러한 이유들로 나는 처음 시작부터 턴키를 옵션에도 두지 않았으며 아주 당연한 일인 듯 셀프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셀프 인테리어가 정말 힘들지 않냐고? '할 때는' 힘들지 않았다. 정말이다. 어려웠다면 어려웠지 힘들지는 않았다. 나는 결혼 준비하면서 동시에 셀프 인테리어를 했음에도 그 시간 동안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남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나와 남편을 위해 하는 일인 데다가 내가 들어가서 살 집인데 무엇이 힘들겠는가. 하루하루 집이 완성되어 가는 걸 보면서 (그것도 내가 설계한 그대로) 처음 느껴보는 크기의 보람과 뿌듯함까지 얻었다.


 혹시 내가 힘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은 결혼식이 끝나고 나서였다. 결혼식 날, 피골이 상접하도록 살이 빠진 내 모습을 본 친구들이며 어르신들로부터 아주 많은 피드백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혼 준비 하는 동안 다이어트는 무슨, 밤마다 곱창이며 피자에 햄버거를 집어삼켰는데 무슨 소리냐며 웃어넘겼는데 결혼식 몇 달 이후에 본식 스냅을 받고서야 알았다. 그때 내가 얼마나 살이 빠져있었는지를. 하지만 셀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여, 나에게 그 기간 동안 셀프 인테리어는 정말로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살은 그대로 다시, 플러스 알파까지 곁들여 돌아왔다)


 셀프 인테리어는 어렵기는 했다. 주변에 누구로부터도 조언이라던가 설명을 들을 곳이 없었다. 하지만 맨땅에 헤딩은 나의 전문이니 나는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요즘은 인터넷이 아주 잘 되어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셀프 인테리어 커뮤니티 카페에는 수없이 많은 후기들이 있었으며 그 후기들에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들이 녹아있었다. 나는 카페의 글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손이 가는 대로 읽고 흡수했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셀인의 단계들이 채워져 갔다. 머릿속에 실루엣으로만 존재하던 우리 집도 점차 선명한 라인을 띠기 시작했다. 어떤 요소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곤 했다. 예를 들면 바닥을 마루로 마감할지 타일로 마감할지, 싱크대 상부장을 설치할지 말 지 같은 것들.


 머릿속 밑그림을 그려가며 셀인의 단계들을 배워나가는 동시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컨택을 시도했다.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날, 즉 세입자가 이사 나가는 날을 한 달 전에 통보받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다. 철거, 전기, 타일, 목공, 도배, 필름, 싱크대 전문가 등등... 연락해야 할 사람은 끝이 없었다. 일의 특성상 문자를 보내면 답이 늦었다. 나는 전화 포비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페에서 평판이 좋은 사장님을 발견할 때마다 전화를 돌렸다. 한 달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원하는 날짜는 이미 마감된 경우가 많았고 그러면 나는 또 새로운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서 사장님들은 오히려 나에게 그 짧은 통화에서마저 다양한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꼭 본인하고 진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시며 어떤 걸 주로 봐야 하는지 알려주시던 사장님도 계셨고 이런저런 셀인 꿀팁을 알려주시던 분도 계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감사하다. 나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인테리어 공부는 하면 할수록 다양한 옵션들이 생겨났다. 생각도 하지 못했던 가벽과 아치게이트 설치, 우물천장과 간접조명, 중문리폼 같은 것들은 처음에 내가 고려하던 것들은 아니었지만 어느샌가 나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었고 그런 그림들이 하나씩 추가될 때마다 비용이 늘어나는 소리가 짤캉, 짤캉 하고 들려왔다.

 인테리어 디자인과 여러 가지 선택 옵션들도 그랬지만 자재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같은 타일 공정이라 하더라도 100mm*100mm짜리 소위 백각 타일을 사용할지, 뉴욕 지하철역에 시공된 타일이라 하여 서브웨이 타일이라고 불리는 100*300 타일을 사용할지, 아니면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는 600*600 타일을 사용할지 정해야 했고 크기를 정했다면 색깔과 패턴을 골라야 했다. 나는 타일집을 수없이 찾아다녔다. 을지로에 몰려있는 도기집들, 논현동의 타일 가게들을 하나하나 들어가서 구경했다. 어느 타일집이나 다 가지고 있는 심플하고 흔한 세라믹 타일도 있고 이태리나 스페인에서 수입된 예쁜 포세린 타일도 있었다. 같은 그레이컬러의 포세린 타일이라 하더라도 달표면 같은 무늬가 있는 타일도 있고 마블무늬의 타일도 있었다. 이 타일이 우리 집에 시공된다면 어떨까. 상상과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이런 결정들은 타일뿐 아니라 벽지, 마루, 조명, 스위치, 콘센트, 페인트, 필름 등등 수없이 많은 자재에서 행해져야만 했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소파와 침대를 구매하기까지 거의 1년 가까이 걸릴 정도로 어떤 결정을 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내가 단시간에 여러 가지의 결정에 맞닥뜨렸다... 하지만 눈앞에 닥치면 뭐든 하게 되는 법이다. 마치 10년 전 유행했던 후르츠닌자라는 게임처럼, 나는 날아오는 결정들을 썰어냈다.

수십 개 마루 샘플 중 하나 고르기
타일은 결정하고도 세 번이나 바꿨다


 마침내 공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자취하던 전셋집을 빼 세입자를 내보내는 데 보탰기 때문에 회사 기숙사로 다시 들어갔다. 5년 남짓 사는 동안 자취 살림이 얼마나 늘었는지, 4.7평 기숙사에 이사박스를 쌓아두고 나니 발 디딜 공간이 없었다. 나는 발 디딜 공간도 없는 곳에서 3주를 살면서 신혼집으로 출퇴근을 했는데, 이런 식이었다. 강서에 사는 남자친구가 출근 전 기숙사(영등포)로 나를 데리러 와서 강동에 있는 신혼집으로 실어다 놓고 지하철을 타고 종각으로 출근을 한다. 퇴근할 때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강동으로 돌아와서 나를 실어다 기숙사에 내려다 놓고 저녁을 먹인 후에 다시 강서로 퇴근을 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이었다. 남자친구는 극한의 이동거리를 소화하고, 나는 에어컨도 없는 푹푹 찌는 공사장에 3주 동안 매일 출퇴근을 했다. 어느 날 가슴 아래며 배에 온통 두드러기 같은 게 나서 공사 먼지를 뒤집어써서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땀띠였다. 아주 어릴 때 이후로 처음 겪어보는 땀띠였다.(이쯤 되니 정말 힘들지 않았던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공정들이 하나하나 지나갈 때마다 집은 점점 더 예뻐졌다. 생각지 않았던 여러 가지 옵션들이 추가로 얹어졌고, 기왕이면 더 예쁘고 좋은 것으로 선택했던 자재들이 하나 둘 집에 들어왔다. 예산을 오버한 지는 한참이었지만 괜찮았다. 인생에서 제일 비싼 쇼핑을, 가성비만 따져 대충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우리 집을 고치느라 고생하시는 분들을 위해 아이스박스를 하나 구비해 얼음과 생수, 캔커피와 비타민 음료를 사다 나르고, 이런저런 인테리어 지식들을 귀동냥하고, 집이 변해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가끔 소방 배관에서 물이 샌다거나 하는 긴급 상황을 해결해야 했고, 주방 후드나 상부장의 위치는 어떻게 달 지 등등 현장에서 즉석으로 결정해야만 하는 것들을 해결했다. 반셀프 인테리어지만 작은 부분이라도 셀프로 채워보고 싶어 베란다 페인트칠과 조명, 콘센트, 스위치, 인덕션 시공은 남자친구와 둘이서 셀프로 해냈다. 3주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가지를 배웠고, 많은 것을 해냈고, 마침내 머릿속 상상이 눈앞에 재현되는 멋진 경험을 얻었다.

베란다에서 떼어 온 하부장과 열심히 사다나른 간식들


 셀프 인테리어는 (할 때는) 힘들지 않고, 예산을 아낄 수도 없다. 그러나 한 번 '셀인'을 경험한 사람은 그 매력을 잊을 수 없다. 다음에는 지난번 셀인에서 아쉬웠던 점을 반면교사 삼아 더 멋지게, 더 노련하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다. 그때 나의 집은 어떤 모습으로 완성될지 벌써 너무 기대가 된다(남편은 반대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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