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퇴사하겠습니다.

by 소슬바람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퇴사를 결심하고 나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매월 월급보다 많은 돈을 썼던 나는 소비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퇴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첫째, 카드값은 얼마나 해결됐는가.

입사하기 전부터 자산이 0원이었던 나는 바로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내 첫 신용카드는 마트에서 만들었는데, 카드를 만들면 현금을 준다길래 '이거다'싶었다. 두 번째 신용카드는 20대에게 추천한다는 카드로 만들었고 세 번째 신용카드는 회사에서 만들었다. 카드 판매원이 회사 내에 들어와 영업을 뛰었기에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카드 여러 개 만들 수도 있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카드값을 해결하지 않고 새로운 카드를 계속 만들었다는 게 문제였다.


돈을 벌면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내가 사고 싶은 거를 내 맘대로 사고 사주고 싶은 것을 사주고 싶었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돈’을 월급만큼 긁었다. 월급만큼 긁다 보니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긁 됐다.

그렇게 긁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돈을 써버렸고 나는 할부를 시작했다.

‘일시불 할부전환’이 얼마나 매력적인 서비스인지 아는가?
5만 원이 넘는 금액은 수동으로 할부전환을 할 수 있어 당장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2년의 시간 동안 나는 ‘일시불 할부전환’을 사용하며 빚을 져갔다.
그리고 나머지 1년의 시간 동안은 ‘리볼빙’을 이용했다. 적정금액만 매월 갚아도 되는 이 서비스는 더 매력적이었다.

학자금도 대출금도 없던 나는 매월 카드빚을 갚으며 살아갔고, 퇴사를 결심하면서 이 ‘일시불 할부전환’도 ‘리볼빙’도 정리하게 됐다.




둘째, 업무를 정리하자.

팀 담당자에게 퇴사 여부를 말하기 전 업무 정리를 시작했다. 순서가 틀렸지만 퇴사 여부는 계약서상 15일 전에만 말하면 되니 업무 정리를 조금씩 정리하기로 했다

데일리 업무를 하다 보면 매일 처리하지 못하는 자료가 존재한다. 료를 분류해 시스템에 입력하는 일은 단편적으로 보면 매우 간단하고 쉬운 일로 보인다.


하지만 그중엔 헷갈리는 자료들이 많은데 이런 자료들은 기존 자료와 다른 부분을 찾아야 하고 변경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변경된 건지’ 파악해야 하며 애매한 부분은 담당자와 상의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잠시 뒤로 빼둔다.
뒤로 빼둔다는 것은 몇 날 며칠 이 자료를 미룬다는 뜻은 아니다. 일하는 도중 틈틈이 자료를 검색해 보기 때문에 그렇게 미룰 수 없다.

이렇게 미뤄둔 자료들을 하나둘씩 정리하다 보면 인 일은 없어진다.





셋째, 팀 담당자에게 퇴사를 통보한다.

팀 담당자에게 가서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러 담당자 자리로 갔다. 근데 이상하게도 '퇴사'라는 말이 입 밖에 나오지 않아 면담을 신청한다고 말해버렸다.


1차 면담이 시작됐다. 담당자와 면담을 하기 전 퇴사하려는 이유와 마지막 근무기간을 정하기 위한 글을 작성했다. 준비했던 첫 문장을 읽었다. "이번 달까지 근무하고 그만두겠습니다."를 말하자마자 담당자는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그동안 힘들었던 것을 여기서 다 풀고 가라고 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눈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준비했던 말을들 모두 풀어냈다.

우울증, 허리디스크, 만성골반통으로 근무하는데 어렵다는 얘기, 일이 어려워 계속 실수가 있었다는 얘기, 담당자와의 어려움까지.

생각해보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얘기를 한 것 같다.


'휴.. 끝났다. 이젠 끝이다'라고 생각한 순간 담당자는 날 설득하기 시작했고 2차 면담까지 잡게 됐다.



망연자실했다. 2차 면담까지 잡히다니 원래 퇴사하기까지 이렇게 긴 면담을 하는 건가.. 첫 퇴사라 내가 너무 서툰 건가.. 후임자도 정해야 하고 인수인계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내 퇴사는 언제 결정되는 걸까..


2차 면담은 1차 면담 때와 동일하게 흘러갔다. 담당자는 조직에선 상사와 수직관계이고 맞춰가야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잘 맞춰보는 건 어떠하냐,

보통 3년 일하면 슬럼프가 오기도 하고 매일 같은 업무를 하다 보면 실수하는 부분도 있으니 업무를 변경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자존감이 떨어지고 업무를 변경해서 배울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기존 불협화음이 있던 담당자와 한 공간에 있을 자신이 없었기에 이번 면담에서도 이번 달까지 근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담당자는 좋게 퇴사하겠다는 게 아닌지라 계속 설득을 했고 3차 면담까지 잡혔다.

3차까지 잡힌 이 상황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나가고 싶은 날짜에 나가지 못할 것 같아 괴로웠다.


3차 면담 당일, 최종 면담으로 진행된다는 담당자의 말에 안도했다. 이번 면담에서는 내게 질병상 근무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니 '질병으로 인한 휴직'을 권유받았다.


휴직 대상에 해당된다는 건 생각도 못했고 원하지도 않았다. 활비도 없었고 다시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기에 퇴사를 결심한 건데 휴직을 제안받자 머리가 하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