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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Nov 13. 2019

제주의 빛을 담다, 이타미 준의 수풍석 박물관

제주 공간 여행

제주 공간 여행의 시작      

나는 공간 전문가가 아님에도 언제부턴가 공간 여행을 하고 있다. 

저 건물은 왜 저런 모양으로 지었을까?

이 공간은 어떤 의도로 만들어졌을까? 하며 그 공간을 창조한 건축가의 마음을 헤아려보곤 한다.      


제주도에 있는 이타미 준의 수(水), 풍(風), 석(石) 박물관은 예술 작품이나 유물(遺物) 없이

물, 바람, 돌 그 자체가 전시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직 겨울의 미련이 남아 있는 어느 초봄,  수풍석 박물관을 찾았다.           


() 박물관  

건축가 이타미준의 수(水) 박물관 내부

   

귀로는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발걸음은 빨리빨리, 수 박물관 안에 들어서는 순간,

“아~!”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지붕을 통과한 빛이 바닥의 물 위로 떨어져 새로운 형상을 만들었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변했다.

다른 시간과 계절에 이곳을 방문한다면 또 다른 장면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두근거렸다.               

               

수풍석 박물관은 반드시 해설사 투어를 해야 한다. 자유 투어는 없다

해설사가 비가 내렸던 날의 수 박물관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 장면은 마치 빗줄기라는 춤꾼이 물이라는 무대 위에서 격렬한 춤을 추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박물관 바닥에 놓인 물만 물이 아니라 빗줄기도 물이라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소나기가 지금 내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도 동영상 촬영할 수 있을 텐데.’      

삼삼오오 사진을 찍던 관람객들이 버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타미준의 수(水) 박물관 외경

셔틀버스에 오르다가 문득 생각났다.

‘이타미 준도 빛을 사랑한 사람이었구나. 사진가가 빛을 보듯 건축가도 빛을 보는구나!’ 물이 빛과 어울리지 않았다면 이토록 강렬한 인상은 남길 수 없다고 나는 확신했다.


() 박물관   

이타미준의 풍(風) 박물관 외경


“앗, 노루다!”

풍 박물관으로 가는 길목에서 노루를 봤다.

노루를 봐서 그런지 풍 박물관은 산골 마을의 창고처럼 보였다.      

해설사가 풍 박물관의 초기 사진을 보여줬다. 지금은 고동색으로 변했지만 적송(赤松)으로 지어져 처음엔 붉은색이었다. 옛 사진을 보고 나서야 창고가 아닌 박물관으로 보였다.               



박물관 안으로 한걸음 들어서는 순간, 얼룩말 같은 그림자를 봤다.

나무 벽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살며시 불어왔다.      

‘바람이 잘 통해서 풍 박물관인가?’라고 생각하던 중에 바닥에 있는 곡선형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외벽이 약간 휘었으니 그림자도 따라서 곡선을 그렸겠지만, 왜 그렇게 지었을까?      

‘이타미 준이 아마도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보여주고자 했음이 아닐까?’     

찬 바람, 더운 바람, 시원한 바람 등, 바람이란 눈에 보이는 물체가 아니라 촉감으로 느끼는

무형의 공기(空氣)인데, 이타미 준은 바람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고 그림자를 활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風) 박물관 내부 '사색의 공간'


또 다른 작은 공간에는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곳은 저 돌 위에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사색하는 곳입니다.”

해설사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나는 돌 위에 앉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바람의 길은 보이지 않았지만, 뺨을 톡 건드리고 가는 느낌이 신선했다.  

풍 박물관, 그곳에서는 나도 지나가는 바람이었다.                         

 

() 박물관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인정 많고 맘씨 고운 아가씨도 많지요~”

석 박물관으로 간다고 하니 가수 혜은이의 ‘감수광’이 절로 흥얼거려졌다.      

어느 언덕 위에 컨테이너가 있었는데, 그것이 석 박물관이라 했다. 나는 당황했다. 녹슨 고철 같은 붉은 색의 건물이 돌 박물관이라니! 붉은 벽돌을 형상화한 것일까? 해설사의 설명이 없었다면 박물관인지 몰랐을 듯하다.   

석(石) 박물관 내부로 들어오는 하트 모양의 빛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을 때 빛이 보였다. 천정에 있는 하트 모양의 창(窓)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바닥에 있는 평평한 돌 근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건물 밖에 손 조각이 있었는데 건물과 조각 사이에 커다란 창이 있어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과 함께 그 조각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석(石) 박물관 내부
석(石) 박물관 뒤편의 조형물


어려웠다. 석 박물관을 이해하기가.

하트 모양의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방향도 강약도 바뀌겠고 그리되면 바닥에 있는 평평한 돌도 다르게 보일 텐데 그 느낌을 상상할 수 없었다.     

건물 뒤편에도 돌이 있었다. 박물관 건물의 그늘에 놓인 돌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돌은 왜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빛을 사랑한 박물관     

수(水), 풍(風), 석(石) 박물관에는 모두 ‘빛’이 담겨 있었다.

제주의 빛이 있었기에 그들은 셋이면서도 하나의 박물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수, 풍, 석 박물관을 감상할 수 있는 비오토피아의 주민들이 부러웠다.

“비오토피아에 입주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드나요?”

나의 질문에 해설사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수풍석 박물관이 있는 비오토피아의 자연 (어느 3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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