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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진 Nov 16. 2019

빛과 그림자의 조화, 제주도립미술관

제주 공간 여행

제주도립미술관 외경 - 어느 11월, 오전 10시경


제주도립미술관 외경 - 어느 11월 오후 5시경
제주도립미술관 외경 - 어느 11월 오후 6시경

상사 눈치 뿐만 아니라 후배 세대 눈치도 봐야 하는 직장인,

어느 해 11월, 하루 일정으로 제주에 들렀다.

부터 보고 싶었던 제주도립미술관에 가려고 함이다.

왕복 십 몇만원이라는 항공료를 내기엔 너무 짧은 일정이지만 

카메라 외에는 짐이 별로 없으니 

렌터카도, 택시도 필요 없어서 여행 경비가 절감된다는 장점도 있다.



아침 10시경, 제주 시내버스 465번의 종점인

제주도립미술관은 고요하다.

그 적막을 나의 발걸음으로 깨뜨리며

미술관으로 향한다.

물과 콘크리트 블록이 함께 있는

미술관의 외경을 바라보자마자

서귀포에 있는

안도 다다오의 본태 박물관이 떠오른다.


순간 안도 다다오가 지은 건물인데

이를 잘 모르고 있었던가 싶어

다시 정보를 검색해보니

제주도립미술관은

간삼건축종합건축사 사무소에서 건축했으며

2009년 준공된 그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받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곧장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미술관 외부로 발길을 돌린다.

동남쪽에 있는 아침 햇살이 건물 곳곳에 퍼져 있어

그것을 사진으로 담고 싶어서다.

(※제주도립미술관은 동쪽을 등지고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오전 중에는 동남쪽에 있는 햇살이

     미술관을 비춘다)


미술관 옆에도 물이 에워싸고 있고

'자연과 신화를 위한 컴포지션'이라는

조형물과 빛이 어우러지고 있다.



미술관의 뒤편으로 간다.

고등학교 축구장 4개 정도 들어갈만한

넓은 광장이 보인다.

야외 공연장인 것 같은데,

광장의 끝에 사다리꼴의 조형물이 있다.



이 조형물은 무엇을 형상화한 것일까?

혹시 한라산?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라산이라고 우기기로 한다.

날씨가 맑은 날 미술관에서 남쪽을 보면

한라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이와 연관이 있을지 모르겠다.   


마치 어느 성(城)의 해자를 건너고

성문을 지나는 느낌으로

박물관 안으로 들어선다.

정면에 보이는 또 하나의 반영.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매끈한 바닥이 빛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방금 봤던 미술관의 외경과 비슷해 보인다.

반영 너머에는 작은 마당이 보인다.

유리 벽 안에 마당을 왜 만들어 두었을까?

김광현 교수의 저서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에 따르면

중정(中庭-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은 주택 속의 작은 우주라 했는데

제주도립미술관도 미술관 내부에

우주를 두고 싶었던 것일까?



미술관의 1층은 기획 전시실,

2층은 상설 전시실이다.

나의 눈은 전시 중인 미술 작품이 아니라  

1층과 2층 사이의 공간과 채광으로 향한다.

공간 가득, 빛도 가득 들어와서 참 좋다.  



1층 기획전시실의 출입구 두 개가

서로 가까이에 있다.

문(門)이란 밖에서 안으로 통하는

구조물이기도 하지만

안에서 밖을 바라보는 창이기도 한데

전시실 안에서 서로 가까운

두 개의 문으로 바라보는 바깥세상이

그다지 감흥이 없다.

전시품을 들여오고 내가는데

편리하게 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무엇 때문에

두 개의 문이 가까이에 있는지  모르겠다.



금강산도 식후경.

미술관 안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는다.

미술관 가까이에 식당도 없고

미술관 내부에서 요기할 곳은 이 카페뿐이다.

커피, 차, 과일 주스 등 마실 거리는 다양한데 요깃거리는 많지 않다.

직원께서 내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배려해주셨으나 나는 사양한다.

괜한 불편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가격은 유명 커피 전문 브랜드와 비슷한 수준.



1층에는 어린이들이 미술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있는데

서쪽을 향해 가는 빛이 계속 들어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2층에는 옥상 정원이 있어

제주의 햇빛 아래 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다.



햇빛은 계속 서쪽으로 나아가지만

미술관 근처에는 높은 건물이 없어서

빛은 미술관 어디에나 충분하다.

해가 질수록 미술관과 앞마당은 황금색을 띤다.


마지막으로 야간 조명을 기다린다.

미술관 매표 직원께 몇 시에 불이 켜지냐며

묻고 또 묻고 다섯 번 정도 물은 것 같다.



미술관에서 출발하는

465번 시내버스가 시동을 건다.

막차는 아니라고는 하나,

해가 진 오후 6시에 찬 바람 부는 벌판에서 

혼자 남아 있을 이유도 없는데

조명은 딱 하나 켜진다.


어쩔 수 없다.

삼각대 없이 손각대로

흔들리지 않게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이다.

아침과 낮에는 햇빛과 어우러지는 반영을,

밤에는 인공조명과 어우러지는

반영을 촬영하고 싶었는데

그 모두를 충족하지는 못하겠다.


제주시내 중심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상상한다.

하얀 눈이 소복한 미술관,

꽃으로 둘러 싸인 미술관,

초록초록한 미술관을.


언젠가 다시 보자 제주도립미술관.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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