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에게
안녕,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있니?
나는 난데없이 기후적응을 하는 중. 바깥으로 나서기만 하면 무덥고 눅눅한 공기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고 말아. 폭염 특보가 내려진 날에도 몇몇은 양복을 입었고 또 몇몇은 뜨거운 국밥 같은 유의 음식을 먹었지. 그런 모습을 보면 어쩐지 샤워가 간절해지고 말아. 이렇게 습할 바엔 비를 맞거나 물에 뛰어드는 게 낫겠다 싶어 져.
그리고 지난주 다녀온 제주도 여름휴가 내내 나는 물에 뛰어들었지.
애초부터 하루 종일 풀장에 머물 각오로 수영 강습을 들을 때 썼던 수영복과 수경, 수모를 챙겨 갔어. 사실 그렇게까지 수영을 잘하진 않기도 하고 오랜만에 물속에서 숨을 차다 보니 호흡이 가빠졌어. 결국은 몸에 힘을 빼고 떠다니기만 했지. 표류해 봤자 풀장 끝에 다다르는 게 다일뿐이니까 마음 놓고 아무 생각 없이 둥둥. 약하게 몸을 밀어내는 물결과 울렁이며 들려오는 소리와 눈을 찌푸리고 뜨게 하는 햇빛 그 아래서 둥둥. 귀를 깊숙이 담그면 심장 고동 소리가 둥둥...
낮에 그래도 주변을 둘러보자면서 나섰는데 마침 구름이 끼면서 공기가 약간은 시원해진 때였어. 날이 더우면 사람이 겁도 없어진다고 하더니 나는 금방 해가 나올 줄도 모르고 호기롭게 성산일출봉 등정을 시작했어. 우거진 식물을 둘러싼 습기에 계단이 꼭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기도 했어. 절반 지점에서 포기할까 하다가 뭔가 지는 기분에 또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더 잃을 것도 없단 생각에 꿋꿋이 올라갔고, 그렇게 도착한 정상에서 뿌옇게 경계 진 하늘과 바다, 숲처럼 초록으로 울창한 분화구를 보았지. 화산섬이 대개 그렇듯 본섬과는 원래 떨어져 있었다는데 20세기 들어 도로가 놓이면서 연결됐대. 전설 속에서는 제주 할망 거신이 일출봉을 빨래 바구니로 우도를 빨랫돌로 썼다는데, 갓 씻겨 뽀득뽀득해진 옷감들이 분화구 위로 수북이 쌓인 모습을 자꾸 상상하게 됐어. 흰옷이라면 초록 잎에 물들 텐데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당장 땀에 찌는 옷을 죄다 벗어던져 씻기고 싶기도 했지.
너는 지난여름들이 어땠는지 기억하니? 나는 겨울은 소상히 기억하는데 여름은 조각조각 내어 기억해. 늘 아찔하게 더운 날이 이어져서일지도 모르지. 네게 임유영의 <나리분지>를 전해주고 싶었어. 바캉스, 휴가와 방학은 우리에게 몽롱한 감각을 주지.
큰 섬 아래 갈래갈래 이어진 길과 숲과 산을 헤치다 보면 문득, 여기 왔었던 것만 같은 기시감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어. 곧장 우리 여기에 온 적이 있냐고 아빠에게 물으면 내가 몇 살 배기일 때 왔었다고 했어. 나는 올해가 아닌 지난해에, 스무 살이었던 해에, 또 엄마·아빠의 말로만 기억나는 아주 어렸을 해에도 제주도에 왔었는데, 가족 넷이, 할머니도 이모도 같이, 친구들끼리서만도 왔었는데, 역시 그것이 누구의 결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여름이었고, 그건 작은 파편처럼만 기억이 난다.
누가 시원한 휴가였냐고 물으면 시원해지고 누가 좋은 여름이었냐고 물으면 좋아질 거야. 이미 지끈할 정도로 몸이 덥고 다시 떠날 힘도 없게 피곤하지만, 누군가 내게 물어보면 더 더워지고 더 좋아질 거야.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있니? 좋은 8월을 지내고 있니?
다시 편지할게.
추신.
너만의 더위를 나는 방법이 있니?
여름에만 할 수 있는 것들 중 가장 좋아하는 게 있다면? (나는 수박 통째로 먹기)
2024년 8월 5일
서울행 기차 안에서
애정을 담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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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6 - 2024 AUG 5th
발행인 김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