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에게
안녕, 나는 다시 암스테르담.
즐거운 한 주를 보냈기를 바라.
다리가 퉁퉁 부어 도착한 도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어. 내렸더니 아침 다섯 시 반. 그날 공항에 도착한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비행기였나봐. 도심으로 향하는 기차 차창 밖에선 해가 어스름하게 뜨고 있었지. 역에서 내려 구름이 겹겹이 쌓인 흐린 하늘을 보며 도시로 돌아왔다는 감상에 젖었는데, 갑자기 비가 주룩주룩 쏟아져 순식간에 쫄딱 젖었어. 암스테르담이 참… 고맙게도 날 반겨주는 셈 쳤다.
연이은 작별 포옹을 거친 건물은 텅 비어 있었어. 도르르 굴러가는 캐리어 바퀴 소리만 복도에 소란스럽게 울렸다. 플랫 초인종 옆에는 호실 주인의 이름이 적힌 보드가 달려 있는데 내 이름을 빼고는 다 지워져 있었지. 매일 보던 얼굴들은 어디 가고 없고 층에는 나 하나뿐이었지. 처음 이곳에 도착해 입주하던 날이 떠 오르면서 지난 반년이 꼭 거대한 데자부 속 풍경 같더라. 갑자기 모든 게 막막하게 다가왔다고 할까? 그래, 또 새로운 시작이 코앞에 온 거지.
짐을 풀려다 잠깐 눈을 붙였어. 워낙 아침이었던지라 낮잠에서 깨어났는데도 아직 점심 때였지. 널브러진 짐에는 시선을 두지 않고 게으름을 피웠지. 휴대폰 스크롤을 내리면서 멍하게 있는데 막막한 마음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시간은 더디게만 가는 거야.
충동적으로 옷을 챙겨 입고 나섰어. 주차장에 (잠시) 방치돼 있던 자전거를 꺼내 페달을 밟았지. 한10km 거리에 있는 이케아로 향했어. 갖가지 사면 좋겠다 싶던 게 있기도 했고, 자전거로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 궁금하기도 했고. 그냥 돌발적인 뭔가 마음에 일었던 거겠지.
자전거를 타면 많은 걸 가로지르게 돼. 숲을, 잔디밭을, 다리를, 도로를, 빌딩을, 마을을, …. 우연히 마주친 토끼, 말, 개, 이런 것들에 정신이 팔리기도 했어. 그러다 정말 외진 길에 가 닿았어. 지도를 보려 잠깐 멈춰 섰지. 그러니까 고요함이 들려왔어. 지나가는 차 소리도 없이 바람에 흩어지고 닿는 풀밭 소리만 들렸지. 지도에서는 내 앞으로 난 길만 믿고 2km 정도 내달리면 된다고 했어. 처음 보는 길을 그렇게 내달렸다. 쭉쭉 나아가다 숨이 차면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페달을 받침대 삼아 두 발로 한참 서 있기도 하고. 몸은 녹초가 됐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어.
돌아와서는 저녁을 하고 널브러진 짐을 정리하고 잠에 들려는데, 대학교 일 학년 때 기숙사 방 한편에 붙여 놨던 시 한 편이 문득 생각났어. 교과서에서는 의지적이라고 읽는다는데, 글쎄, 나한테는 달에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 같은 거창한 한 발짝이 아니라, 페달 밟듯 산책하듯 내딛는 경쾌한 한 발짝으로 읽힌다. 새로운 한 주를 또 마주한 너도 읽으면 좋겠다 싶어서 편지 끝에 붙여.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1938. 5. 10.)
새로운 주를 보내고 또 편지할게.
안녕.
추신.
새로운 길 앞에서 너는 어떤 마음가짐을 하니?
2024년 8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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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6 - 2024 AUG 19th
발행인 김가을
암스테르담에서
새 마음을 담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