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2. 지나가는 자리에는

by 가을

_ 에게


잘 지냈어? 늦은 오후에 까무룩 잠든 낮잠처럼 한 주가 지나갔네. 나는 때아닌 체증과 두통에 시달리다 커피라도 마시면 나아질까 싶어서 근처 카페로 피신해 왔어. 월요일 낮인데 사람으로 북적거려. 죄다 노트북을 열고 뭔가를 하고 있는데 다들 나처럼 편지라도 쓰나 싶다.


어젯밤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가기 위해 채비를 했어. 그런데 참 요상하지. 올 때보다 짐은 가벼워졌는데 마음에도 발이 있다고 한다면 어쩐지 그 발에 모래주머니가 채워진 기분이 들어.

반년 만에 돌아온 집에는 그리웠던 것들이 많았어. 그리고 그런 그리운 것들은 다시 만난 순간 잊고 있던 감각을 금방 손 안으로 안겨주지. 주문 외듯 불러 볼까. 거실 창으로 멀리 보이는 호수 위 노란 다리, 방바닥에 푹 늘어져 곤히 자는 하얀 늙은 강아지, 팔월이면 더운 공기에 팽창돼서 닫히지 않는 안방 문, 빨간 양념에 버무려진 세 끼니, 연한 아이스커피, 시답지도 않은 말만으로 하루를 때울 수 있는 친구 한 뭉텅이, 매일 타던 버스의 차창, 엄마가 자주 포장해 오던 만둣집, 낙서나 쪽지가 숨은 책이 많은 중고 서점, …

그렇지만 그대로 남는 건 없나 봐. 집 바로 앞엔 건물이 우뚝 지어지고 있었고 학교 앞 거리에도 그새 가게 여럿이 사라지고 생겨 있었어. 어떤 나무는 더 자랐고 어떤 나무는 베어졌지. 노화로 생긴다는 뾰루지가 강아지 등에 몇 개 더 올라와 있었고 나사가 풀려 안방 문고리는 떨어지고 없었어. 농담 사이에는 현실에 관한 고민 몇 개가 군데군데 얹어졌고, 꼭 다시 오겠다 생각했던 맛집은 자리를 옮긴 후였지.

잊고 있던 감각을 그러쥐었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어. 지난 두 주 동안 친구들을 만날 때면 같은 농담을 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길로 돌아갔지. 그런데, 뭐라 하면 좋을까, 안 본 사이에 훌쩍 자라난 나무처럼 감각은 같은데 인상이 달라졌다 할까. 미묘한 다름에 나는 자꾸만 긴가민가했어.



영화 <하나 그리고 둘>에서 주인공 양양은 사진기로 모두의 뒤통수를 찍어. 그들이 못 보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작고도 기특한 마음이지.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서글프다. 살아가면서 자기 뒤통수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니, 그럼 너와 나 서로에 관하여서도 보여주지 못하고 혹은 보지 못하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삶의 어느 단계에서 우리는 너무나도 뚜렷하게 다른 길 위에 서 있게 되고, 또 뒤로 물러설 수도 없게 될 거야.

요즘 들어 나는 삶의 철회 불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건 어렸을 때 엄마와 만들었다가 냉동고에 넣은 이후로 까먹은 토끼 모양 눈사람의 행방에 대하여 여전히 슬퍼한다는 거나 다름없는 일. 하물며 우주는 팽창하고 있고 달도 지구로부터 멀어진다는데 우리라고 같은 거리에 머무를 수는 없을 텐데 자꾸 나는 남들의 궤도를 졸래졸래 따라가고만 싶어 져서 큰일이다.


그나저나 편지를 쓰다 보니 두통도 다 가셨네.

씹었더니 눅눅해서 실망감을 안겨주는 과자처럼 쓴 건 아닌지 몰라.

슬픔도 곱씹으면 쌀처럼 달아질까?

열네 시간의 비행에 행운을 빌어줄래?

아니면 부어오를 발이나 욱신거릴 무릎에 행운을 보내줘도 좋아.

암스테르담에서 편지할게.

안녕.


추신.
너도 문득 서글퍼질 때가 있니?


2024년 8월 12일

집 앞 카페에서

알 수 없는 마음을 담아!

가을




답신은 언제나 환영!

fromatmn@gmail.com 메일로 보내기

혹은

익명 답신 (클릭 시 링크 이동)



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6 - 2024 AUG 12th

발행인 김가을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1화AUG, 1. 여름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