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 4. 감각공유

by 가을

_ 에게



안녕, 잘 지냈니?

나는 지금 어느 미술관 앞에 앉아 있어.

날이 화창한데 야외 영화관 의자들은 축축하게 젖어 있다.

선선한 바람이 나무를 스칠 때마다 사- 사- 하는 소리가 들려와.

꼭 거대한 매미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다.

엽서는 오늘 본 칸딘스키의 그림 중 하나.

칸딘스키는 색의 하모니를 그려내고 싶었대.

이리저리 퍼진 체크보드, 사방으로 삐죽거리는 선, …

우리 내면을 해부하면 이렇게 얼기설기 꼬여 있을까?

또 한 번 나무들이 스치며 소리 낸다.

지난주에 나를 스친 것들을 네게 얘기해 줄게.


AUG 26, Mon

H'ART Museum 앞에서

가을 씀



새로운 교환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꼭 신입생들처럼 다들 들뜨기도 했고 시간이 붕 떠서 지루하기도 해선지 매일같이 온갖 곳에서 파티가 열린다… 나도 (새로 맞이한) 플랫메이트 여럿을 쫄래쫄래 따라서 다니곤 했는데, 그러다 마주한 대망의 테크노. 귀가 아니라 온몸을 울리는 사운드에 두 발아래로 두더지 떼가 우두두 지나가는 것만 같더라. 녹초가 되어 나와 한동안 음악도 안 듣는 중이야.


다시 암스테르담에 온 뒤로 한식을 잘 먹지 않았는데 말이야. 근 한 주간의 지나친 사교 활동으로 북돋울 음식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어. 사실은 아마 파스타에나 쓰일 것 같이 생긴 이상한 버섯이랑 희한한 소고기 미트볼, 그리고 갖가지 있는 채소를 다 집어넣고 위에 비빔장을 얹은 게 다였지. 저녁으로 뭘 먹었냐는 플랫메이트 T의 질문에, 넌 모를 수도 있는데 비빔밥이란 걸 먹었어, 원래는 정해진 재료가 있는데 난 대충 만들었어, 했더니 그게 뭔지 안다면서, 네가 원하는 재료를 냅다 다 넣고 비비기만 해도 비빔밥이지 뭐, 이러는 거야. 한국인보다 비빔밥을 더 잘 아는 스위스인… 어쨌든 집밥은 금방 마음을 회복시켜 주더라.


중앙박물관 정원의 아주 큰 나무. 울창한 나무를 보면 나의 마음도 굳고 정해지는 것만 같아. 암스테르담은 의외로 초록색으로 가득해. 나는 맑은 날 나무 새로 비치는 그림자와 빛 알갱이가 너무나 아름답다고 늘 생각한다.



뇌 – 마음?

난간 같은 믿음, 마른 목, 젖은 등, 그리고 손에 한 움큼 쥐어진 압정. 헤이그에서 D와 작별 포옹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에서 처음 펼쳐 든 시는 쿡쿡 내 마음을 찔러왔다. D는 꼭 다시는 너를 못 볼 것만 같아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고 나는 초록 눈을 마주 보는 건 꼭 손에 압정을 쥐는 기분일 것 같아서 대답을 피했어. 나도 다이빙 대신 물수제비나 뜨고 싶다.


너무 아리송하게 들린 말이 많지.

다음번엔 투명한 이야기를 써 보낼게.

9월은 두 번째 새로운 시작이니까

네게 활기찬 날들이 쏟아져 들어왔으면 좋겠다.

안녕, 잘 지내길.


2024년 8월 26일

박물관 문이 닫히기 10분 전에

애정을 담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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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항공서간 Volume 06 - 2024 AUG 26th

발행인 김가을

암스테르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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