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스물한 번째 이야기
부직포 가방에 프린팅을 해서 색칠하게 하고 그 안에 선물을 넣어주었던 것은 2019년 몰라먀잉이라는 지역 유치원에서 교사로 있었을 때 했던 크리스마스 활동이다. 당시 200명 정도 되었던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겠다며 한국에서 아동용 퍼즐을 200개 사 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라면 세관에 걸릴까 봐 무서워서 그렇게 못할 텐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냥 그렇게 이고 지고 왔었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그냥 이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걸 샀겠지...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뭐 그랬던 젊은 날이었다. ㅋㅋㅋ
색칠하기 활동을 마치고 선물을 받아가기 전에 한 번씩 아이들을 꼭 안아 주었었다. 떠날 날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었던지라 내가 언제 이 아이들을 한 명도 빠짐없이 안아줄 수 있겠나 싶어서 그날을 날로 잡았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200번을 꼭 안아준다는 것이 꽤나 중노동이었나 보다. 그때 그 아팠던 몸이 꽤나 기분 좋게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그때 사진을 찾아본다. 작은 아이들이 품에 폭 안겨 나를 꽈악 끌어안을 때의 그 벅참은 내가 선물을 주는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받고 있다 느끼게 한다.
그때의 기억으로 이번에도 부직포 가방을 준비했다. 도안도 비슷한 것으로 찾아서 했다.
성탄 예배를 마치고 문방구로 달려갔다. 전 날 열심히 그린 부직포 가방을 아이들이 색칠할 수 있도록 크레용을 함께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E와 문방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출장을 마치고 전 날 밤에 돌아온 E는 내일 여행을 간다고 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짬 내어 함께 해주니 감사하다.
부직포 가방에 잘 그려지는 크레용을 찾았다. 심지어 콤팩트한 크기에 가격도 저렴해서 정말 만족스럽다. 게다가 50개를 한 번에 살 수 있었다. 이 나라는 한 가지 품목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이 꽤 쉽지 않아서 이런 것들이 굉장한 감동 포인트가 된다. 빠르게 크레용을 구입하고 마트로 향했다. 가방에 넣어줄 간식들을 사기 위해서다. 통통한 빵과 영양두유, 과자들을 구입했다. 자고로 선물을 빵빵해야 받을 때 기분이 좋으니 크고 좋은 것으로 사려고 노력했다.
오늘은 남편이 아주 큰 역할을 해주었다. 원래는 마트까지만 우리를 데려다주고 가려고 했는데, 우리가 사는 물건들의 양을 보니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보였나 보다. 데려다준다고 해서 "고마워!!"하고 냉큼 받았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분주하게 포장을 했다.
내가 가방에 빵, 크레용 그리고 직접 구운 크리스마스 쿠키를 담아 토스하면 E가 과자들과 영양두유를 넣어 마무리했다. 안 그래도 좁은 차 안이 50개씩 있는 물건들로 터질 것 같았다. 일단 공간 이슈로 20 세트만 만들어 나눠주기로 했다. 다행히 다공에는 차를 댈 곳이 있어서 나눠주다 부족하면 차에 와서 더 가지고 나오면 됐다.
대충 둘러보았을 때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웁스. 아이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말이다. 두려운 마음에 10개만 가지고 나왔다. E와 5개씩 나눠 들고 어슬렁어슬렁 아이들을 찾아 나섰다. 어쩐 일인지 보통 우리가 아이들을 만나던 곳에 아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우리가 인사하며 다가가니 뭔갈 줄 거라고 생각하는지 손을 내민다.
"메리 크리스마스!!" 선물을 건넸다. 아이들은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화답하며 건네는 선물 한 개를 두세 명이 동시에 꽉! 잡았다. 모두의 것이 있단다! 하며 얼른 서둘러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정말 좋아했다. 여러 번을 고맙다고 말하며 안에 있는 것들을 열어 보고 무엇이 들었는지 이야기하며 기뻐했다. 미리 색칠해 놓은 가방을 보여주며 안에 크레용이 있으니 꺼내서 이렇게 색칠하라고 알려줬다.
함께 있던 아주머니께도 드렸다. 다른 곳을 지나다가 이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에도 가방을 소중하게 들고 싱글벙글 좋아하고 있었다. 재빨리 차로 돌아가 나머지 것들을 들고 나왔다. 아이들이 좀 더 있을 것 같은 건너편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니 한 명 두 명 보이기 시작했다. 다가가니 뭔가 싶은 경계와 혹시 뭘 주려나 싶은 기대가 섞인 눈으로 어정쩡하게 우리를 쳐다보았다.
"메리 크리스마스!" 외치자 아이들이 함께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외쳤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해 알려주었다고 한다. 현지 교회에서 가끔 나와 전도를 하는 건지, 이 아이들이 교회를 다니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미를 알고 있다니 기뻤다.
우리가 선물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이 좀 모였다. 모여주면 우리는 고맙지!
두 달 전에 함께 바람개비를 만들었던 5남매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레단에 애들 글자 가르쳐준다고 다공에 못 온 지 오래됐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잘 지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선물을 받은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얘 어디에 있는지 아냐고 묻자 저~기 술집에 있다고 했다. 술집에 있다고? 하니 그 근처에서 볏짚을 팔고 있단다. 그때도 볏짚을 팔며 돈을 벌었는데 지금도 그렇구나 싶었다. 그 아이가 알려준 곳으로 열심히 향했다. 가다가 길에 앉아 쉬고 있는 다른 볏짚 파는 아이들을 발견해 선물을 주었다. 여자아이와 남자아이였는데, 여자아이가 유독 크게 기뻐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맙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조금 더 가다 보니 찾던 아이들 중 한 명을 찾았다. 셋째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우리를 보고 살짝 데면데면했지만 선물과 함께 다시 가까워졌다. 동생들과 누나들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니 아까 우리가 지나쳐온 공원에 있다고 했다.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선물을 줬던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다시 만났다. 그 자리에서 크레용으로 가방을 색칠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니 여자 아이가 정말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가 색칠한 별을 가리켜 보여주었다. 또다시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신했다. 그렇게 기뻐해주니 내가 더 고마워!
크리스마스 날이라 그런지 길에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많은 인파 속에서 앞으로 향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아까 공원을 지나갈 때 아이들이 없는 것 같았는데 정말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됐다. 만약 없으면 다시 아이들을 찾아 인파를 뚫고 가야 하니 말이다.
다행히 공원 안 쪽에 셋째 누나와 엄마가 있었다. 엄마 무릎에 누워 귀를 파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니 아이는 우리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크리스마스 인사와 함께 선물을 건네니 동생들도 저기 있다며 열심히 불렀다. 막내가 저 멀리서 우리를 보고 뛰어왔다.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데 아니 목소리가 완전 할머니 같은 게 아닌가. 감기에 걸린 건지 목이 완전히 쉬어서 헬륨가스 먹은 할머니처럼 이상한 소리가 났다. 조그마한 어린애한테 노인의 소리가 나니 정말 웃겼다.
아이들은 바로 가방을 색칠하기 시작했다. 푸른 풀밭 위에서 아이들이 알록달록 칠을 하고 있는 걸 보니 한국 봄철 공원에서 열리는 사생대회 같아 보였다. 한 명씩 추가되어 5남매 중 첫째 누나를 제외하고 모두 모였다. 첫째 누나는 저~기에서 돈 벌고 있단다. 아이들은 꽤나 집중했고 좋아했다. 별을 노란색으로 칠했다며 보여주었고 선물 박스를 케이크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샘플로 색칠해서 가져간 가방을 서로 돌려 보며 따라서 색칠하기도 했다. 막내는 형 누나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맘대로 찍찍 그어댔지만 말이다. 막내가 너무 귀여워서 계속 장난을 쳤다. 가방 색칠해서 나 달라고 하니 살짝 고민하다가 가방은 줄 수 있는데 간식들은 두고 가라고 했다. ㅋㅋㅋ
아이들이 어느 정도 색칠하는 동안 함께 있다가 레단에도 가야 해서 일어났다. 넷째가 겅중겅중 뛰어 배웅해 줬다. "다음에도 올 거죠?" 하고 묻는 아이에게 "응 또 올게~ 잘 지내고 있어!" 했다. 길을 건너 주차한 곳으로 가는데 아까 선물을 주었던 아이를 또 만났다. 길에서 물을 팔고 있는 아이여서 그런지 그 자리에 계속 있는 것 같았다. 차가 멈추면 도로로 나가서 물을 팔고 신호가 바뀌면 인도로 들어와 잠시 기다리기를 반복한다. 우리를 보곤 환하게 웃었다. 손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우리에게 "고마워요!"라고 이야기했다.
일을 하다 보면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내가 후원자가 아님에도 가운데에서 얼굴을 보이고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공을 다 가져가는 듯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듣다 보면 민망해서 견딜 수가 없다. 물론 수혜자들 입장에선 당연히 고마울 테고 눈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게 맞겠지만 나로선 부끄럽고 민망하다.
이 날 아이들은 고맙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보통 우리가 와서 스티커를 붙여주고 책을 읽어주고 작은 간식을 줄 때와는 사뭇 다른 큰 감사를 연달아 표했다. 이번엔 아이들이 그만큼 우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에 기쁘고 행복하다는 뜻이겠구나 싶어 민망함 보단 기쁨이 컸다.
레단에 왔다. 레단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서 선물 25개를 모두이고 지고 길로 나왔다. 크리스마스라고 사람들이 모두 레단으로만 모인 건지 앞으로 전진하기 어려울 만큼 역대급으로 사람이 많았다. 인도와 붙어 있는 도로에서는 포장마차가 끝없이 세워져 있었다. bbq, 핫팟 같은 음식들도 있었는데 그 사람 많고 차도 많고 정신없는 야외에서 먹는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어디에나 잘 앉아 있는다. 그냥 길거리에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은 다반사고,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며 치일 수밖에 없고, 입담배와 오물로 더러워진 육교 계단에 앉아 길거리 음식을 먹고 있기도 한다. 그런 걸 보면 길거리 아이들이 이렇게 아무 데서나 먹고 자고 하는 것이 비단 길거리에서 지내는 아이들이기 때문만은 아닌 건가 싶기도 하다.
육교에 아이들이 모여있길래 다가가 선물을 주었다. 이 위에는 한 젊은 엄마가 핏덩이 같이 작은 아기를 안고 앉아 있었는데, 가까이 가보니 엄마라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하지만 몸과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확실했다. E가 나이를 물어봤다. 16살. 아기는 이제 한 달 하고 5일이 되었다고 했다. 애써 놀라지 않으려 노력했다. 혹시 그 아이에게 상처가 될까 봐. 어린 엄마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길을 벗어나 가는 길에 E는 지금 16살이라면 15살에 임신한 거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뭐 조선시대라면 가능할 나이지만 현재 상황으로서는 무슨 사연이 있어도 단단히 있을 것 같은 나이다. 15살짜리 아이를 임신시킨 사람이 또래이든 성인이든, 이 어린 엄마와 아기를 책임지진 못할 것이다.
레단에 왔으니 아웅과 친구들에게 선물을 줘야지! 하며 열심히 찾아다녔다. 정말 그 말도 안 되는 인파르 뚫고 얼마나 열심히 찾아다녔는지 모른다. 그러다 아웅의 동생을 만났다. 통통 튀는 매력적인 소녀. 우리를 보자 글자 가르쳐 주러 왔냐고 해서 오늘은 크리스마스라 선물 주러 왔다고 했다. 오빠랑 친구들은 어디에 있냐고 하자 저~~~기 있단다. 자기가 데려다주겠다고 해서 따라나섰다. 가는 길에도 아이들을 만났다.
선물을 줄 때마다 안에 크레용이 있으니 꺼내서 색칠하고 놀아~ 하며 알려주는 게 일이었는데, 아웅의 동생이 함께하니 우리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옆에서 얼마나 신나게 조잘대며 안에 뭐가 있고, 어떻게 하면 된다고 설명해 주던지, 우리가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레단의 북적임이 끝나는 지점까지 가서야 글자를 가르쳐 주던 아이들을 만났다. 유독 귀여웠던 7살짜리 아이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얼마 없는 볼살이 한껏 올라가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웅은 또 우리를 보자마자 도망쳤다. 우리가 무섭단다. 도대체 우리가 뭐가 무서운 거지? 다른 아이들은 아웅에게 "안 무서워! 아무것도 안 한대!" 하며 외쳤지만 아웅은 계속 도망쳤다. 뭐,.. 우리가 무서워서 못 오겠다니 동생에게 선물을 전해주라고 했다. 오빠 거를 받아 신나게 차도에 뛰어들어 겅중겅중 건너편으로 가서 전달을 해주고 다시 우리에게 뛰어왔다. 차가 빽빽한 차도가 무섭지도 않은가 보다.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부직포 가방이 두 군데나 찢어져 있었다. 하도 흔들어대서 안에 있던 우유 곽이 가방을 찢었나 보다. 찢어진 부분을 계속 만지작거리며 우리를 보길래 ㅋㅋ 새 걸로 바꾸어주었다. 아이는 헌 것도 고이 접어 챙겼다.
자기는 사진 찍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우리가 찍어주는 건 괜찮다고 해서 사진도 찍어줬다. 고맙다 얘, 영광이야! ㅋㅋ 정말 귀엽다.
레단에 처음 왔을 때 비를 맞고 엎드려 자고 있던 아이도 다시 만났다. 요즘 못 만났는데, 오늘은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그 세상 모든 것을 통달한듯한 무덤덤한 표정과 태도는 여전했다. 오늘도 아주 쿨하게 윗 옷은 입고 있지 않았다. 우리가 선물을 주자 살짝 미소를 짓고는 쿨하게 안에 있던 쿠키를 꺼내 먹었다. 맛있느냐고 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크레용이 있으니 가방을 색칠할 수 있다고 말해주었는데 심드렁하길래 역시 관심 없나 했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 이 아이가 있는 곳에 와서 봤는데 이렇게 열심히 색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도사님과 아이가 동시에 같은 몸에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보니 아이 다워 좋았다.
벌써 25개 중에 마지막 선물만 남았다.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는 쓰레기 줍는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메리 크리스마스!" 하며 전달했다. 열두세 살은 될 것 같은 아이였는데 무척 기뻐하며 바로 자리를 잡았다. 뒤에 쓰레기를 담는 자루를 내려놓고 크레용을 꺼내 즐겁게 가방을 칠했다.
이렇게 알록달록 예쁘게 색을 칠하다니! 돌아갈 차를 기다리며 그 근처에 10분 정도 더 있었는데, 아이는 끝까지 집중해서 색칠을 마무리했다. 한 손엔 쓰레기 자루를 들고 한 손엔 크리스마스 선물을 들고 종종 거리며 돌아가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아이의 눈은 자신이 색칠한 알록달록한 가방에 한참 머물러 있었다.
총 50명의 아이들을 만나 크리스마스 인사를 나누고 선물을 주었다. 길 위의 아이들에게도 성탄이 기쁜 소식이었기를 바란다. 아이들을 만나니 즐겁다. 마음 한 구석, 불편함은 늘 있지만 이건 품고 가야만 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이제 내년에 만나자. 내년에도 행복하자,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