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스무 번째 이야기
베이커리 사장님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빵을 많이 구워댔던 때가 있었다. 에너지가 폭발하고 남아도는 체력을 어쩌지 못해서 퇴근하면 빵을 굽고 주말에는 쿠키를 굽고 심지어 출장 다녀오자마자 오븐을 데우곤 했던 때였다. 그러다 올해 중순, 일이 많아지고 출장을 매주 다른 지역으로 다니는 말도 안 되던 시기를 보내면서 내 오븐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흑흑 게다가 수입물품 규제와 환율 폭등 이슈로 버터 값이 너무 비싸진 것은 물론이고 구하기 어려워져서 덩달아 의욕도 식어버렸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12월은 유독 더 많은 것을 굽고 나누던 시즌이라 올해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먹을 땐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것 같은 작은 것도 만들 때는 얼마나 폼이 많이 드는지 모른다. 빵 굽는 건 산수와 노동을 결합한 일이기 때문이다.ㅋㅋ 아무래도 올해는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어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다. 작년에는 길거리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쿠키에 말씀 스티커를 붙여 나눠 줬었는데 그게 하루이틀 정도 휴가를 내고 쿠키만 와장창 구워야 하는 꽤나 큰 프로젝트인지라 올해는 여력이 없다 느꼈다.
하지만 작년에 내 쿠키 만들기 소식에 함께하길 원했던 분이 올해는 안 하냐고 계속 물어왔다. 완곡한 거절이라고 생각했는데 망설이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어찌어찌하기로 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려는 건데 너무 거절하는 것도 안 될 것 같기도 했다. 날을 잡아 휴가를 냈다. 그리고 거의 6시간 정도 쿠키를 구웠다. 그렇게 얼추 400개의 쿠키를 구웠나 보다. 한 봉지에 4개씩 넣으니 100개쯤 되었다.
작년 사진들을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가고 파티하고 베이킹하고 온갖 난리를 치며 다녔던데 올해는 왜 이리 한 가지 하는 것도 벅찬지 모르겠다. 피곤하다. 어딘가 단단히 지쳐있나 보다. 권태롭고 예민하다. 괜히 옆에 있던 남편에게 불똥이 튀는 날이 몇 번 있었다. 회복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런데 어디가 문제인거지?
내가 어떤 상태이든지 상관없이 시간은 머뭇거림 없이 흐른다. 벌써 크리스마스다. 최근엔 관리하는 사업장에 있는 아동들에게 선물을 전달하러 다녔다. 나는 딱히 한 게 없다. 내가 담당하는 일이 아니었을뿐더러, 다른 봉사자들과 직원들이 대부분 다녀왔고 나는 딱 한 번 다녀왔다. 아이들을 줄 크리스마스 도넛을 전날 미리 사서 배달받아놔야 하는데, 몇 백개가 되는 도넛을 보관할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놓자니 이사 전 임시 사무실이라 에어컨을 밤에 틀어 놓기가 어려워 녹을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 보관했다. 우리 집 작은 방에 16박스나 되는 도넛들을 넣어 놓고 에어컨을 틀어 놓았다. 온 집안에 설탕 냄새가 가득했다.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7시가 넘어서야 도넛을 옮기고 (하필) 다음날인 사무실 이사를 준비하는 직원들은 늦은 시간까지 퇴근을 하지 못했다. 그들의 속마음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기꺼이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일을 하는 직원들을 보니 대단했다. 말 그대로 대단해 보였다.
다음 날 아침 7:30에 사무실에서 다른 짐을 싣고 우리 집에 와서 도넛을 실어 사업장으로 출발했다. 2시간 정도 덜컹거리고 나뭇가지에 차가 미세하게 긁히는 소리를 들으며 달려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나서야 도착했다. 70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의 선물을 포장하고 반별로 나누고 그걸 나눠주었다. 이런 날은 아이들을 따로 부르지 않아도 출석률이 매우 높다. 아이들이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들을 기록했다. 그걸 기록해서 피드백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내 일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나는 그날 찍은 것들을 모아 영상을 만들었다. 찍느라 보지 못했던, 어쩌면 보았지만 나에겐 이 것이 '업무'이기에 함께 동감하지 못했던 아이들의 기뻐하는 표정과 웃음소리가 이제야 다가왔다. 눈앞에 행복한 아이들을 두고 머릿속에 다음 일정과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던 내가 동떨어져 보인다.
디보션 시간에 로마서 12장을 읽었는데, 그중에 8절이 다가왔다.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구제하고 긍휼을 베푸는 것이 현재 나의 공과 사 동시의 일인데, 지금 나는 성실하고 즐거운가 돌아본다. 어느 순간 그저 일말의 책임감만으로 이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아이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는 순간엔 즐겁지만 내 영혼이, 깊은 마음이 즐거워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에서 '마음을 새롭게 함'이 무엇일까 묵상해 본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게 무엇일까.
일단 성실이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tiny mini flowers를 하며 만났던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문제는 11월부터 '주문해야지' 생각만 하던 가방의 실제주문이 너무 늦어 버려서 프린팅이 불가했다는 점... 크리스마스이브에 가방을 배달받아서 부랴부랴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 도안을 사이즈에 맞춰 프린트하고 안에 덧대어서 선을 따라 그리는... 방법이었다... 50개만 주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했더라면 내 손목이 아작이 났을 테다. (지금도 시큰함...)
그래도 다행히 봐줄만했다. 교회에 성탄 전야 행사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 하나 시원하게 먹어주고 당 충전해서 열심히 그렸다. 같은 아파트 사시는 분이 도와주셔서 절반 정도는 나눠 그릴 수 있었다. 감사감사...
성탄절이다! 이렇게 무덤덤한 일상 속에서 불쑥 날이 도래할 줄이야. 그래도 성탄전야제 행사를 다녀오니 조금은 더 실감이 난다. 내일 기쁜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Merry Christmas! 힘 있게 외쳐야지. 힘들고 지쳤다 해도 결국 할 건 해야 마음이 편안하고 그것이 가라앉은 나를 띄워 살게 한다. 가보자! 성실함과 즐거움으로..!
Merry Christm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