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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l 23. 2022

자투리 문장이어도 기워서 글이라 하면 그만이지!

[우리들의 글루스] 매일 기록하기 05/10

2주간 주말을 제외한 매일 글 한 편씩을 쓰는 모임을 하고 있다. [우리들의 글루스] 매일 기록하기

원래는 금요일인 어제 다섯 번째 글을 써서 올렸어야 했는데, 토요일 저녁인 지금까지 못 쓰고 있다. 하하!

글감이 번뜩일 때는 언제까지 쓸 거냐는 남편의 칭얼거림에도 '잠시만! 30분만!' 하면서 손가락이 아프도록 자판을 두드리는데, 어제부터 오늘은 그날이 아니다.

엉망진창이어도 숙제는  해야지! 하는 의외로 모범생 스타일인지라 글감을 찾아 이리저리  자투리 글들을 뒤져보았다.


이것저것 들추다 2017년에 했었던 글쓰기 모임의 흔적을 찾았다. 글쓰기는 나의 오랜 관심분야라 대학생  작가와 함께 글쓰기 하는 모임을 찾아서   정도 참여했던 적이 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여성 신인 작가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확한 모임의 주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상 깊었던 활동이 있었다.


작가님이 매일 단어  개를 카톡으로 보내주시면 ' 단어를 넣은  문장' 지어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게 뭔가 싶을 수는 있겠지만, 생각보다 꽤나 재밌는 놀이다.   아닌 단어 하나가 하루 종일 주인공이 되어 '엣헴 나를 멋진 문장으로 만들어 달라고!'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니 종일 심심할 틈이 없다. 커다란 알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하루 종일 오물오물 열심히 굴려대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딱 한 문장으로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생략되는 앞뒤 맥락이 또 꽤나 흥미롭게 다가온다. 소설 속 열린 결말처럼, 내 마음대로 상상해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어떤 상황인 걸까, 어떤 마음이고 어떤 표정일까,.. 내가 만든 한 문장으로 또 커다란 알사탕을 만들어 이리저리 굴린다. 그 맛은 달달할 때도 있지만 쓰릴 때도 있고, 외로울 때도 있고, 사랑스러울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다. 어떻게 굴리느냐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이렇게 흥미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사람이란 건 참 축복이다.


그렇게 단어, 문장 놀이를 하다 짧게 글을 쓰기도 했다. 주인공은 나일 때도 있지만 그 문장과 어울리는 '그 사람'일 때가 더 많았다.


그때의 단어들과 문장들, 가끔 이어 붙인 짧은 글들을 몇 개 모아 적는 것으로 오늘의 글쓰기를 퉁치려고 한다. 자투리 문장이어도 기워서 글이라 하면 그만이지! 하하!


[불빛]

그날 아롱이는 불빛 아래 겸허히 모았던 손과 고개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내 최선의 몸무림이었다.

-

몇 분째 가만히 앉아 슴벅이고만 있다. 음식 냄새난다며 엄마가 켜 두었던 향초가 아롱거린다. 이상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 잘 새겼다 생각했는데, 보내버린 시간들에게 쥐여준 것들이 너무 많았나 보다. 사진을 오래도록 보고 있어도 그 애만은 우련하다. 결국 미간을 찌푸리고 눈까지 감아본다. 손과 고개도 함께 감긴다. 그 애는 나를 보고 있다. 하지만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는 보이질 않는다. 어쩌면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내가 외면하고 싶어 그 순간 잘 보지 않았겠지. 그저 뭐든 태울 것이 동이 나면 절로 꺼지겠지 하는 심보로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떤 것이든, 제한된 시간과 그것이 놓인 공간이 있다면 분명 타오르고 사그라든다. 그렇게 다시 고독해질 것이다. 그리고 한 해가 또 가겠지. 경험인지 본능인지 어쨌든 그녀는 나보단 똑똑했다. 향초가 충분히 탔는지 라벤더 향이 코 안까지 가득하다. 향긋하다 못해 독해진 향초의 불을 한 숨에 꺼버린다. 짧고 강한 호흡으로. 그렇게 지나간 한 해를 구태여 다시 보냈다. 애써 기억하기 위해 앉았었는데, 결국 촛농 조금을 남기고 다 태워 버렸다.


그날 아롱이는 불빛 아래 겸허히 모았던 손과 고개는 그를 기억하기 위한 내 마지막 몸무림이었다.


[종이]

날 때는 빳빳하고 흰 종이 같던 것을 지나온 세월 동안 누가 그렇게 움켜쥐었다 놓았는지, 할머니의 손등은 굽이굽이 누렇게 둥그러져있다.


[구름]

끝내 내뱉지 못해 삼켰던 것들이 구름이 되어 내 하늘에 맺혀간다.

-

하늘이 어둡다. 구름이 가득해서 햇빛이라고는 잠시 삐져나오는 한두 줄기가 전부다. 소중해질수록 혹여나 잃을까,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끝내 내뱉지 못해 삼켰던 것들이 구름이 되어 내 하늘에 맺혀간다. 그리고 내 하늘에 더 이상 자리가 없을 때 결정끼리 부딪히며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겠지. 그렇게 막을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올 때 구름은 걷혀갈 거다.


[바람]

그 거대한 바람의 움직임에 일치될 때, 비로소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실현할 수 있겠다.


[침묵]

그날, 그의 침묵에 뚜드려 맞아 절뚝이며 돌아와야만 했다.


[연필]

살이 오른 두 뺨 사이 삐죽 튀어나온 입술, 열심히 할 테니 5분만 일찍 끝내 달라고 옹알거리며 연필을 굴리는 네가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움]

일상이 낯설게 사무치는 것, 그런 게 그리움일 거다.


[추억]

기억을 다듬어 추억을 만들었다.


[기억]

실재와 허상의 중간, 그 언저리에 기억이 머무른다.


[미소]

절제된 감정의 포물선, 미소.


[상자]

뭐라도 채워둘 거라며 쟁여둔 빈 상자가 하나, 둘, 셋, 그렇게 방 한편을 다 채워버렸다.


[숨]

숨이야 한 번 들이쉬었다 내어쉬면 그만이지만, 그 안에 설움이 너무 많이 묻어 나와 눈가에 맺힌다.


[냉기]

그녀의 반달 같이 짙은 미소 속에서 애섧은 냉기를 보았다.

-

종종 애섧은 냉기가 온몸을 떨게 할 때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차를 애써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은, 어미를 잃은 갓난이가 공갈젖꼭지를 온 힘 다해 물어 빠는 것과 같은 이유일 거다.


[수첩]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겠노라고, 해의 시작마다 다짐하며 수첩의 첫 장에 적어두지만, 경계 없는 해의 끝에서 별을 노래할 힘 없이 죽어가는 나를 사랑하겠노라 다짐하는 나는 어디에도 없다.


[핏줄]

온통 텁텁한 붉은빛을 품은 그 애의 핏줄에는 마른 장미꽃이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

잠길 듯한 생각의 무리에 매일 밤 질식사하는 사람.


[문]

문틈 사이로 지켜보는 그들의 춤사위에는 함께해서 고마움과 미안함이 사랑으로 맺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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