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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lim Jul 29. 2022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대가 불행한 것이다

[우리들의 글루스] 매일 기록하기 09/10

2년 반 만에 다시 미얀마에 왔다.

미얀마가 내게 이렇게 대단한 인연이 될지 누가 알았을까.


남편도 나도, 늘 혼자였던 이 나라에서 우리가 함께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적같이 느껴진다.

매번 그랬듯, 이 나라에서 나는 힘껏 배울 거고 몇 층 더 성장할 거고 많은 것들을 얻을 것이다.

그 전과는 또 다른 미얀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양곤에서는 2달 정도 지냈던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가정을 이루고 양곤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하니, 낯설고 새로운 마음인 것도 사실이다. 미얀마어도 영어도 너무 오랜만이라 영어 쓰다가 미얀마어 쓰다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오면 바로 익숙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동안 나도 꽤 달라져 있었고, 미얀마도 그렇다.


유투버 빠니보틀과 노홍철이 함께 여행하는 영상을 하나 보게 됐다. 빠니보틀은 스스로 부정맨(?명칭이 확실하진 않다.)이라고 일컫는, 부정적이고 (잘은 모르지만) 다소 여행에 질린 여행 유투버처럼 보였는데, 긍정맨인 노홍철이 옆에서 계속 '너무 좋아' '최고야' '난 럭키 가이잖아. 나는 인생이 럭키야' 라고 흥을 불어넣는 모습이 '생기'를 불어넣는 모습처럼 보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감사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히 중요한가 싶었는데, 그 짧은 영상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물이 반 컵밖에 없네.'와 '물이 반 컵이나 있네'의 차이를.


이기적이고 멍청이 같이 모든 것을 좋다고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것들, 그러니까 '내 노력의 여하와 상관없이' 잘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그 데미지가 크든 작든, 그냥 그런 상황에 내가 처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말이다. 그것 또한 선택의 영역이었을 거라고 자책만 하면 그저 후회로 얼룩진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빠니보틀과 노홍철의 여행 첫날은 꽤 순조로웠다. 흐리던 날씨도 맑아졌고 맞춘 것도 아닌데 축제 날이었으며, 큰 조사 없이 찾아간 식당이며 뭐며 다 너무 좋았다. 하지만 둘째 날은 그렇지 않았다. (사실 영상을 끝까지 보진 않아서 다는 모르겠지만...ㅎ) 오토바이로 여행하기로 했는데 비가 많이 왔고, 오토바이 대여점은 문을 닫았으며 모든 대여점이 사전예약만 가능했다. 하지만 "오히려 좋아" 정신은 그런 삐끄덕 삐끄덕 하는 여행을 '오히려 더 좋게' 이끌어 갔다. 


해외 생활은 쉽지 않다. 동남아에서 적은 돈으로 부유하게 누리며 살 수 있지 않느냐는 그런 헛소리를 최근에도 한두 번 듣고 왔는데, 정말 그건 모르는 소리다. 여행과 생활은 다르다. 어디든 여행으로 가면 낭만적이지만 삶의 터전이 되는 순간 전쟁터가 되는 법이라 생각한다. 한국과 미얀마 중에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묻는다면, 돈 많이 들고 사랑하는 사람과 여행으로 가는 곳이 좋지~ 할 뿐.


오늘 우리는 꽤 많은 일들을 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해결해야 하는 것들을 해결하고 알아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차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다녔는데 미얀마는 택시에서도 에어컨이 없다. 그리고 운동삼아 가까운 곳은 그냥 걸어 가자 하며 갔던 그 길이 어찌나 길고 더웠던지... 내 몸에 있는 모든 땀구멍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토해냈다. 웩웩웩... 기껏 열심히 바른 선크림은 땀과 함께 허옇게 다 떠버렸고 옷도 머리카락도 다 젖어버렸다.


혼자라면 분명 그저 빨리빨리 해치워야 하는 일들이었고, 그냥 덥고 땀이 나서 짜증 났을 거고, 안 되는 일들에 열만 받았을 텐데, 다행히 우리는 함께였다. 남편은 내 인중에 허옇게 뜬 선크림을 보며 '하얀 수염' 같다며 낄낄낄 놀렸고, 혼자라면 무미건조하게 택시 타고 갔을 길을 함께 걷다 보니 멋진 야자수 산책로도 지나게 됐다. 귀여운 새끼고양이과 신기한 개들도 만나고 말이다. 겁날 상황도 함께 잘 헤쳐냈고, 입맛 똑 떨어진 기운 빠진 상황에서 '샤워하고 맥주 한 잔?!' 하며 서로 기운을 북돋아줬다. 함께였기에 새로운 미얀마를, 새로운 삶을 경험했다.


뭐 아무리 힘들었어도, 오늘 우리는 꽤 괜찮은 성과를 거둔 날이었다. 하지만 내일은 다를지도 모른다. 비가 오고 가는 곳마다 문이 닫혀 있고, 계획했던 것과 다른 상황들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인생이지 뭐. 당연히 그 상황이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겠지만, "오히려 좋아" 정신이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그동안의 시간들에 감사하고, 앞으로의 일들을 '오히려 좋아!' 하며 기대할 수 있는 그런 호탕함이 우리 가정에 있기를.


누가 그랬다. 인생이 당연히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대가 불행한 것이라고. 그렇다고 당연히 불행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이 쉽고 즐겁기만 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술술 풀려 나가야 하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당연한 것이 아닌데 왜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그 길만 있다고 생각할까. 인생은 원래 어렵고 힘들고 땀나고 귀찮고 아차 싶은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어려움과 힘듦과 땀남과 귀찮음이 꽤 견딜만할 수도 있다. 오늘의 우리처럼. 미얀마는 원래 이런 거 아냐!? 하면서 허허! 웃고 넘어가고, '되는 게 아무것도 없네' 보단 '그래도 이건 되네? 세상에 너무 감사하다!'로 관점을 바꿔 생각해 보기로.


내가 고칠 수 없고 노력의 여하와 상관없으며, 나의 영역이 아니고 현재 상황에서 그것이 최선이라면,

그게 최고다. 내가 가진 것이 최고야. 내가 함께하는 사람이 나의 최고의 사람이고, 지금 내가 처해진 환경이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어쩜 이렇게 내 인생은 럭키인가. 감사하다. 감사해. 

나름 몇 번의 해외 생활을 해보면서(그리고 거의 30년 인생을 살아보면서) 분명 이 마음을 잊고 울고불고 힘들다고 짜증내고 불안하고 불행하고 좌절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미워질 때가 있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기록을 해둔다. 


미래의 울고 있는 나야, 원래 인생은 그런 거야. 알고 있었잖아. 어쩔 수 없는 건, '오히려 좋아!' 넘겨버리자! 분명 그걸 통해 더 성장할 거고 더 좋은 날이 찾아올 거야. 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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