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ny mini flowers❀ 열일곱 번째 이야기
책 세 권과 연필 세 자루, 숙제로 줄 프린트물 세 부를 가지고 레단으로 향했다. 금토일요일 힘든 일정을 하고 월요일 휴가를 내어 집안일을 하고 좀 쉬던 차라 정말 너무너무 피곤해서 가기 싫다는 마음이 엄청났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켜야지... 하며 꾸역꾸역 나갔다.
과연 아이들은 네시 반에 그 가게로 올까? 약간은 떨리고 약간은 기대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없었다. 길에 돌아다니는 학교도 안 다니는 아이들이 오늘이 무슨 요일이고 지금이 몇 시인지 잘 알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그리고 오늘 피곤에 절어 나오기 싫었던 나처럼 상황에 따라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기 쉬우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찾으러 다녔다. 아이들을 자주 만나는 골목으로 가니 오늘따라 아이들이 무척 많았다. 책 읽어주려고 아이들을 찾아다닐 때에는 잘 보이지 않아 찾아다녔어야 했는데 오늘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아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목적은 아웅과 친구들이었기에 낯익은 얼굴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골목의 절반쯤 들어갔을 때 아웅을 만났다. 아웅과 그때 함께 있었던 친구 한 명, 그리고 아웅의 여동생이 함께 있었다. 우리가 왜 약속장소에 안 왔냐고 하니 머쓱해하며 오늘은 공부를 못한단다. 이유를 물으니 우물쭈물 대답을 못한다. 너 공부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묻자 공부는 하고 싶단다. 그런데 돈을 벌어야 한단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걸까 핑계를 대는 걸까.
어찌저찌 15분 정도만 잠깐이라도 하기로 했다. 저번에 약속했던 그 가게로 가자고 했지만 거기 말고 다른 곳으로 가자며 우리를 후미진 골목으로 안내했다. 여긴 책상도 없고 앉을 곳도 없는데?라고 말했지만 여기에서 하고 싶단다. 공개된 곳에서 하기에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E는 누군가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한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골목에 아이들이 쪼르르 앉았다. 약속했던 두 아이들에게는 책에 이름을 써서 주고, 옆에서 자기도 학교 안 다닌다고 하고 싶다고 하는 여동생에겐 프린트물로 주었다. 귀여운 노란색 연필을 꺼내 주자 아이들은 무척 좋아했다. 먼저 첫 번째 알파벳 페이지를 펴서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고 흐린 선을 따라 쓰도록 했다. 한 번 쓸 때마다 발음하면서. 아이들은 재밌어했다. "까지! 까!" 하면서. 까지가 들어간 단어들은 뭐가 있을까 질문도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집중했다. 한 줄 한 줄 쓰는 것에 성취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다른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다. 다가와서 뭐 하냐고 물으며 슬쩍슬쩍 보았다. 학교에 다닌다고 대답한 아이들은 역시 읽을 줄 알았다. 이 애들은 학교에 못 다녀서 글자 공부 중이라고 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떠났다. 그렇게 몇몇 아이들이 왔다 갔다 했다. 자기도 학교 안 다닌다고 하고 싶다고 하는 아이에게는 다음 주 월요일에 오라고 했다. 진짜 하고 싶으면 오겠지 싶었다.
아웅의 여동생은 말이 참 많았다. 오빠들은 집중해서 열심히 쓰고 있는데 여자아이는 연필 뚜껑을 떨어뜨리기도 하고 우리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한참을 쓰다가 아웅이 동생의 수다가 거슬렸는지 시끄럽다며 멀리 떨어져 앉았다. 현실 남매구나 싶었다. ㅋㅋ 여자아이는 계속해서 종알종알 말을 했다. 결국 오빠들은 두 번째 알파벳까지 하는 동안 첫 번째 알파벳에서 멈춰야 했다.
아이들에게 오늘 왜 돈을 벌어야 하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봐왔을 때 이 아이들은 조직에 속해 있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웅의 친구가 할머니 병원비 때문에 오늘 만짯을 벌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아웅에게 너는? 하고 물으니 우물쭈물하며 자기도 할머니 병원비를 벌어야 한단다. 같은 할머니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면서 계속 우물쭈물 댄다.
진실을 알 길은 없다. 아이들을 압박하는 존재가 있는지, 그냥 말을 잘 못하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던지, 그것도 아니면 핑계던지. 궁금했지만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결국 30분이 넘게 앉아서 글자를 썼다. 아이들은 숙제를 주면 집에 가서 잠도 안 자고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여자아이가 "나는 잠이 오면 자고 다음 날 일어나서 마저 할 거야"라고 했다.
그만큼 열심히 하겠다는 뜻이겠지! 너 T니? ㅋㅋㅋ
글자를 하나 쓸 때마다 아이들을 골목 밖으로 데려가 글자를 찾아보도록 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찾기 어려워했다. 글자 여러 개는 동시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번에 두 개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재미를 붙여주고 반복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끝나고 아이들에게 연필과 집에서도 쓸 수 있도록 프린트물을 줬다. 책은 잃어버릴 염려도 있고 다음 것을 복사해 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걷어왔다. 이름과 날짜를 적는 것을 보여주며 너희 것임을 알려줬다. 골목 밖을 나오며 글자 찾기를 해보자고 하니 아이들이 신나서 여기저기를 가리켰다.
음료 가게 메뉴판에 다닥다닥 붙어서 "까!" "카!" 하며 신나게 찾아댔다. 지금까지 읽을 수 없었던 글들 속에 아는 글자가 숨어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평소에도 까먹지 않도록 열심히 찾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 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에 이곳에서 만나자 다시 약속했다. 역시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안 나올 가능성이 훨씬 더 많지만, 그러면 또 우리가 찾아다니면 된다.
어두운 골목에 쪼르르 앉아 고개를 박고 열심히 글자를 쓰며 웅얼거리던 아이들이 참 기특하고 예뻤다. 큰 기대는 안 하는 것이 좋다고는 했지만, 아이들이 숙제를 해오고 다음 주에 이곳에서 다시 만난다면 얼마나 예쁘고 행복할까 싶다.
돌아가는 차에서 다시 피곤이 몰려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 에너지는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