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예쁜 너희를 어떻게 때리니!

❀tiny mini flowers❀ 열여덟 번째 이야기

by Autumnlim

2주 만이다. 저번주에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나는 출장을, E는 외근을 나가게 되면서 결국 아무도 가지 못했다. 마음에 부담이 컸다. 그 애들이 우리와의 약속을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할진 모르지만 혹시나 기다렸으면 어쩌나 미안했다. 그래서 오늘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가야 한다고 다짐했다. 어제부터 콧물이 조금 나서 코감기 약을 먹고 있는데 약 때문인지 컨디션이 안 좋은지 계속 몸이 무겁고 잠이 오지만 기필코 가리 다짐하며 택시에 몸을 구겨 넣었다.


월요일인데도 레단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어찌나 북적이던지 땅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이들을 만나던 골목의 안쪽 끝까지 다녀왔음에도 아이들을 찾지 못했다. 아이들이 있을법한 곳들을 다 다녀도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저 육교 위에 있진 않을까 싶었다. 처음 아웅을 만난 곳도 저 육교였다. 그때에는 육교 위로 올라가는 것이 통제되었었는데 지금은 다닐 수 있게 열려 있었다. E와 함께 육교로 향했다. 가까이 갈수록 E가 "맞는 것 같아요!"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육교에 거의 다 왔을 때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와 손인사도 나누기 전에 아이들은 도망쳤다.

엥?

우리를 보면 늘 달려오던 아이들이었는데 왜 우리를 보고 도망을 칠까?

육교 위로 올라가서 아이들을 불렀다. 아이들은 나무 위를 빠르게 오가는 다람쥐처럼 쪼르르 육교 아래로 뛰어내려 갔다. 멀찍이 서서 왜 도망가느냐고 물었다.


"종이 안 가져와서 맞을까 봐요!"


우리가 집에서 하라고 줬던 프린트물을 안 가져와서 우리가 때릴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정말 황당하다. 우리가 너네를 왜 때리니... 걱정하지 말라고 종이 없어도 안 때린다고 새로운 것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종이를 가져오진 못했지만 숙제는 다 했다고 했다. ㅋㅋ 그걸 검사할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 얘들아...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해서 장난을 치는 건지 진심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우리가 때릴까 봐 무섭다고 하니 경계를 풀도록 기다려줬다. 2주 전에 함께 했던 3명의 아이들과 또 다른 한 명의 아이가 있었다.


아웅을 제외한 3명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 때릴 거죠?"

"우리가 너네를 왜 때려?"

"종이를 안 가져와서요."

"우리는 그렇다고 해도 너희를 때리지 않아. 이렇게 귀여운데 왜 때려. 너희가 공부를 하고 싶으면 종이를 줄 거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돼."

"하고 싶어요!"


세 명의 아이들은 경계를 풀고 종이와 연필을 받아 자리를 잡았다. 아웅은 계속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이들이 잡아끌고 와도 재빠르게 도망갔고, 저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들이 "안 때린대! 얼른 와!"라고 외쳐도 고개를 저을 뿐 다가오지 않았다. 때리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니 할머니가 때린단다. 사실 공립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을 때리는 걸 많이 봤기에 놀랍진 않았다. 이 나라는 아직 아동학대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다. 그리고 그런 개념이 있는 어른이 보호자였다면 아이들을 학교도 안 보내고 길거리로 내보내지 않았겠지.


아웅에게 더 관심을 주지 않기로 했다. 하기 싫어서 핑계를 대는 거라면 어쩔 수 없고, 진짜 우리가 때릴까 봐 걱정이라면 그것도 스스로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웅의 여동생은 여전히 말이 많았다. 어찌나 집중을 못하고 조잘대는지, 옆에 붙어 앉아 계속 집중을 시켜야만 했다. 한 글자씩 쓸 때마다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하니 아이들은 화음을 넣듯 가-가!가/ 열심히 읽었다. 가운데 남자아이는 저번에도 열심히 하더니 이번에도 제일 조용히 집중해서 끝까지 잘 써 내려갔다. 저번주에 배웠던 글자 복습도 했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책을 진짜 사줄 거냐고 계속 물어봤다.


7살짜리 남자아이도 새로 참여했는데, 웃는 게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이렇게 예쁜 너희를 어떻게 때리겠니!

아웅이 계속 가까이 오지 않으니 다른 아이들이 계속 불렀다. "우리가 때릴 것처럼 생겼어?"하고 물으니 그건 아니란다. 안 때릴 거 아는데 그냥 그럴까 봐 무섭다고 했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은 두려운… 그런건가? 할머니께 말고도 많이 맞고 다니는 건가 싶었다.


아이들은 더러운 육교 바닥에 아무렇지 않게 눕기도 하고 엎드리기도 하고 기대기도 하며 자유롭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한 아이는 허벅지에 종기 같은 것이 나 있었다. 아프다며 보여줬는데, 꽤 크고 붉었다. 항생제 주사를 맞으면 좋을 텐데 싶었다. 다른 아이들도 다리, 발, 팔 등에 아물지 못한 붉은 상처가 있었다. 이런 것들을 치료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다. 분명 작은 상처에서 큰 문제로 번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아 재미가 떨어진 건지 이제 경계를 푼 건지 모르겠지만 아웅이 다가왔다. 자기도 하겠다고 해서 아웅의 책을 주었다. 구석에 누워 열심히 소리 내어 읽으며 한 글자씩 써 내려갔다.


육교 끝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 두 명이 라이터와 종이를 들고 불을 붙이며 다가오는 걸 보았다. 처음엔 설마 싶었는데 불을 화르륵 붙이는 걸 보고 놀라서 종이를 빼앗으려 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위험하다고 이야기하고 라이터라도 빼앗으려고 했는데 아이들은 정말 미꾸라지처럼 순식간에 내 손을 피해 도망쳤다. 너무 위험해 보였는데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기를 바랐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우리를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옆에 앉아 한참을 보다 가기도 했다. 그러다 한 여자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밥과 반찬이 담긴 작은 도시락 4개를 사 와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큰 용기를 낸 건지 매우 부끄러워하며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후다닥 가버리느라 자기 짐을 놓고 가 버렸다. 우리가 얼른 불러 세우자 더 부끄러워하며 후다닥 짐을 챙겨 가버렸다. 아이들에게 어른에게 무언가를 받으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이들은 일제히 그 여자 쪽으로 "감사합니다!"하고 외쳤다.


한참 글자를 쓰다가 배가 고팠는지 도시락을 열어 손으로 먹기 시작했다. 숟가락이라도 있기를 바랐건만, 도구는 아무것도 없었고 아이들은 그 새카맣게 지저분한 손으로 밥을 떼어 조물조물 뭉쳐 먹었다. 목이 막히는지 옆에서 지켜보던 아저씨에게 물을 얻어먹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오거나 채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고, 부탁을 하고 받았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하냐고 물었다. 아이는 도륵도륵 눈을 굴리더니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물을 준 아저씨께 감사하다고 말하라고 하니 우리를 보고 "감사합니다!"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우리 말고 그걸 준 사람을 보고 말해야지! 하니 그제야 아저씨 쪽을 보고 재빠르게 "감사합니다!"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30분 넘게 아이들과 있었다. 안 그래도 없었던 집중력이 바닥이 난 것이 보였다. 밥을 입안 가득 밀어 넣어 우물거리며 "나머지는 다음에 쓰면 안 돼요?"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발사하는데, 어휴 그래! 정말 너무 귀여워서 한숨이 나왔다. 아이들이 예쁠수록 이런 상황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책과 연필은 다시 걷어 챙기고 집에 가서 하라고 프린트물을 쥐어줬다.




마무리로 책을 한 권을 읽어줬다. 아이들은 우리에게 내일도 오라고 했다. 내일은 어렵고, 우리가 약속한 요일과 시간에 오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월요일 네시 반!"을 외쳤다. (그 와중에 아웅은 다섯 시 반!! 을 청개구리처럼 계속 외쳤다. ㅋㅋ)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이제 떠나려는데 어떤 남자가 나와 E에게 다가왔다. 우리가 어떤 단체인지, 언제 이런 것들을 하는지 물었다. 우리는 단체가 아니라 개인이고 규칙적이진 않지만 아이들과 이 시간에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 남자는 레단에 살고 있고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했다. 자기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를 하고 싶다며 머리 자르고 싶은 아이들이 있으면 잘라주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 주에 와서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잘라줘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해줬다.


다음 주엔 앉은뱅이 의자랑 돗자리를 좀 가지고 와야겠다. 아이들이 머리도 자르고 공부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단 우리도 좀 제대로 앉고... 계속 쭈그려 앉아 있으려니 무릎이랑 다리가 끊어질 것 같다 ㅋㅋㅋ 그리고 재밌는 것도 좀 가져와야겠다. 아무리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계속 글자 공부만 하면 흥미를 잃을까 봐 걱정된다. 오랜만에 스티커라도 가져와서 붙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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