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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Jul 16. 2023

육아 독립군의 Thank you

#2. Thank you

지난주부터 아이 방학이 시작되었다. Kindy라 쓰고 School이라고 말하는 호주 학교 방학은 1년에 총 4번. 두어 달 다니다 보면 방학이 금세 찾아오는데, 때마침 아이 방과 후 케어해 주는 기관이 저번 방학에 이어 이번 방학에도 종일 케어를 열지 않는단다.


육아독립군이라고 하던가. 남편도 나도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양가 가족이 다른 나라에 계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알아서 헤쳐나가야 하는데!


이번에 어머님이 일주일간 오시기로 했다. 덕분에 일주일 내내 회사로 나갈 수 있었고(보통은 화, 목만 출근), 이에 따라 지난 한 주 수집한 데이터는 보통의 패턴에서 살짝 벗어난 편향된 결과를 주기도 하겠다.


나는 고마움을 얼마나 자주,
혹은 얼마나 드물게 표현하는가?



고맙다고 하는 말들이 서로에게 무지개처럼 행복한 기운을 내뿜는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싶었다.


생각보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언어적 문화 때문에, 빈도가 더 높지 않았을까.


예를 들면 카페나 상점에서 주문하거나 음료/음식을 받을 때, 보통 staff도 나도 함께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버스에서 내릴 때도, 50% 정도의 사람들이 내리면서 버스 기사님께 인사를 하는데,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도서관에서도 하필 도서관 카드 5년 기간이 이번주 만료되어 도서관 사서의 도움을 받았다.


회사에 자주 가니, 그곳에서 또 고맙다고 말할 일들이 평소보다 더 생긴다. 모처럼 출근한 월요일. 혼자 밖에서 점심을 먹고 들어오니, 평소 함께 일하는 다른 팀원 중 한 명이 다가와 어디에 다녀온 거냐고 묻는다. 혼자 있는 걸 보고 본인 무리와 함께 점심을 먹자고 하려 했는데, 자리를 보니 없더란다. 이미 혼자 먹으면서 읽을 책도 가져오고 나만의 시간을 즐길 만반의 준비를 해왔어도, 누군가 홀로 먹을 나를 신경 써주었다는 마음이 고마웠다.


이번주는 매일 회사로 온다니 내일은 함께 점심 먹자고 제안해 주던 사람. 다음날 그녀는 함께 나누어먹을 치즈케이크를 가져와 또 고맙다.


어머니께 고마운 건 사실 100번을 말해도 모자란다. 퇴근하고 오면 차려져 있는 저녁, 이미 샤워를 끝낸 아이들, 정갈하게 개어있는 빨래, 아침에 강아지 산책 후 출근하려면 준비 시간이 더 걸리는데 어머니께서 강아지 산책도 시켜주셔 이르게 회사 근처에 도착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날은 둘째를 어린이 집에 맡기려고 둘째와 함께 출근길에 나섰는데 버스가 정류장에서 똭 있는 것 아닌가.


이미 승객들도 다 탔다. 저 버스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또래보다 무거운 우리 딸내미가 앉아계신 유모차를 밀며 전력을 다해 뛰는 나를 기다려준 버스 기사님. 정말 감사했습니다.(그때 말한 Thank you를 카운팅 하지 않았다는 걸 지금 쓰면서 알았다! 이제와 다시 그릴 수도 없고, 매뉴얼 카운팅의 허점이 이렇게 드러난다.)


도처에 이렇게나 널렸다. 고마울 일들이.


Thank you라고 말하는 경우의 수가 궁금했으나, 자꾸 세다 보니 고마울 순간이 내게 이렇게나 많이 일어나고 있었나, 다시 한번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이번 주 프로젝트였다.



어떻게 읽을까(Legend)


무지개 부채(의도는 무지개였으나 결국은 부채모양이 되었으므로):

    왼쪽- 내가 상대에게 고맙다고 말한 경우

    오른쪽 - 상대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 경우


선(line) : 선 하나 = 고마움 표현


선 색 (line colour):  각 카테고리 총합의 Descending order.

    빨강: 회사

    주황: 샵/도서관

    노랑: 어머님

    초록: 아이들

    파랑: 남편

    남색: 버스 기사님

    보라: 모르는 사람

    연두: 회사 외의 이메일이나 텍스트


각 색의 넓이:

    왼쪽: 내가 상대에게 고맙다고 말한 총경우에 대한 카테고리 별 %

    오른쪽: 상대가 고맙다고 말한 총경우에 대한 카테고리 별 %


선 종류:  

   틱 표시 - 이메일이나 텍스트

   따옴표 -  한국말로 했을 때


The mindful data project #2



데이터가 하는 이야기


지난주 토요일부터 이번주 금요일까지 한 주 동안 총 229번의 표현이 오갔고, 그중 136번(59%)이 내가 한 경우, 93번(41%)이 상대가 한 경우이다. 부채의 사이즈를 상대가 말한 경우인 오른쪽을 더 적게 하여 선의 촘촘함(proportion과 density)이 제대로 드러나게 할 수도 있지만, 나와 타인 중 누가 더 많이 말하고 들었는지의 비교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경우에 몇%로 누군가에게 가장 많이 말했고, 가장 많이 들었는가를 보는 것이므로 평화롭게 동일한 크기의 무지개 부채로 정했다.


**참고로 언급하자면, 보통 데이터 한 세트로 여러 가지 방식의 시각화가 가능한데,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에 따라 절댓값을 나타낼지, 상대값을 나타낼지, 파이차트를 쓸 것인지, 바차트를 쓸 것인지 등등 달라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정도 misleading은 괜찮다고 스스로 위안한다.(예를 들면, 절댓값이 더 적은 오른쪽 부채의 work(빨강) 상대적 크기가, 절댓값이 더 많은 왼쪽의 부채 work에 비해 더 크다. 왼쪽은 왼쪽의 총량에 대해, 오른쪽은 오른쪽의 총량에 대한 %를 구해서 그렇다.)


 두 번은 무작정 시도했다가 망하고 세번째에 터득한 일관성 있는 무지개 부채 만들기


색의 순서는 카테고리 총합의 많은 수에서 적은 수 순서이다. 회사에서 고맙다는 말을 가장 많이 주고받고 그다음으로는 상점이다.


아무래도 이 주에는 회사에 일찍 출근해 근처에서 시간 보낼 때 갔던 카페, 어머님 가시기 전 외식했던 레스토랑, 도서관 등의 합으로 평소보다는 많이 나왔다.


어머님도 이번주 변수(?) 시다. 평소에는 이렇게 많이 고맙다고 말할 기회가 없는데, 마침 이곳에 오셔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신 남편과 나누어하던 집안일들을 어머니가 해주셔 남편에게 고맙다고 할 일이 상대적으로 줄었다. (남편에게 고맙다고 한 수가 버스 기사님께 한 수보다 적다!)


아이들이 한국말을 익숙하게 했으면 하고 바라면서, 정작 나는 고맙다는 말조차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많이 하지 않는 것을 알고 반성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말들은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한국말로 해야겠다.



고맙다는 말의 마법


어머님, 남편, 아이들을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에 넣으면 [가족]과 함께 주고받는 고마움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회사이다. 가족과 일이 나의 삶의 가장 큰 부분인데, 그 안에서 그만큼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주고받는 순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한 주여서 감사했다.


이전에는 사실 회사에서 고맙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다. 삶의 불공평함을 확대해서 바라보고, 불안했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대체로 불편한 사람이었을 테다.


현재 회사는 가깝게 일하는 Director부터 나의 동료들까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한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던가. 고맙다는 말을 자꾸 들으니, 고마울 수 있는 일을 해주고 싶었고, 나 역시 이제는 고맙다고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너에게 월급을 주니, 네가 이만큼 생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일의 수고로움을 깎아내리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여서인지, 그렇지 않은 환경을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힘들었던 경험이, 감사한 상황을 알아보는 눈을 키워준 셈이다.


'고마워'라는 말이 부리는 마법이 분명히 있다.

이번주 프로젝트를 하며 남편과 함께 아이들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이 받는 데에 익숙하여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지 않는다는 맥락이었는데, 예를 들면, 어머님이 아이들에게 음식을 해주시거나, 무언가를 사주셨을 때. 아이들이 고맙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으면 싶은데, 우리가 한 번 '뭐라고 해야 하지~?'라고 의도해야 한다.


어쩌면 남편과 내가 집에서 서로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도 했다.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그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 찰나의 행복을 아이들이 경험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작은 그릇에 담으면 좀 적게 먹는 기분이냐고 놀리는 남편


매번 집에서는 나만 베이킹하다가 누가 구워준 쿠키 맛본 적이 얼마만인지!


어머님,

마지막 날 쿠키 구워주고 가셔서 감사합니다.

벌써 얼마 남지 않아 제 꺼 두 개, 오후에 먹으려고 아이들 몰래 빼두었어요.


어머님은 아이들 먹으라고 구우셨을모르겠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구워준 쿠키 너무 오랜만이라 이렇게라도 작은 기쁨 누려봅니다. 잘 먹겠습니다 :)


얘들아 미안. 너네껀 엄마가 또 구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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