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Jul 30. 2023

부부싸움이 불러온 감정은 얼마나 갈까?

#4. 부정적 생각과 감정

인생이 언제나 하하 호호 즐거운 것만은 아니니까.


지난 3번의 프로젝트(자칭 The mindful data project) 주제는 밝고 긍정적인 주제로 데이터를 수집했다. 아이들이 엄마를 얼마나 부르는지, 고마움은 얼마나 표현하는지, 얼마나 웃으며 사는지에 대한 순간들을 캡처하며 생각보다 즐겁게 살고 있구나 행복한 순간들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감사한 시간이었다면 이번에는 이번에는 부정적 감정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생각을 얼마나 자주 할까?


부정적인 건 무조건 외면해야 할 존재로 취급해 왔다. [부정적] = 안 좋은 거 = 피해야 할 거.


그래서 일부러 들여다보거나 그 순간을 캡처한다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이번 기회에 나의 생각과 감정들이 어디로부터 오고 얼마큼 머물다 가는지 기록 해보기로 했다.


우리는 화, 슬픔,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싫어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부정적인 감정이 없기를 바랍니다. 두려움이 있을 때 두려움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두려움을 못 견디게 합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슬픔이나 두려움 밑에 있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게 어려울 수 있습니다. 없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놓아집니다.
-안 되겠다, 내 마음 좀 들여다봐야겠다.


감정은 [일시적(temporary)]이다. 모두 알고 있는 이 심플한 사실을, 정말로 그렇다고 깨우치는 건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를 수집하면서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부정적 감정은 긴 시간 지속될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러왔다고 생각했다. 종종 그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기억도 있고, 한번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데다가, 결국 아 나는 부정적 구석이 덕지덕지 박힌 별로인 사람이야. 까지 도달하곤 했으니까.


결국 어디선가 시작되었을 생각이나 감정이 나의 정체성까지 잡아먹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이것도 [습관]의 일부인데, 이 역시 연습을 통해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그래. 그 습관을 훈련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하며 데이터를 기록하는데 마치 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만 같은 순간이 있었다.


부정적 감정이 들 때마다 카운팅 하다보면 자연스레 어, 이런 생각이 드네, 이런 감정이 일어나네. 하며 그 감정을 지켜보게 된다. 그런데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감정은 이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정말 길어야 1-2분.


매번 금세 사라지곤 해 지속 시간은 따로 기록하다가 멈추었다.

When a person has a reaction to something in their environment, there’s a 90 second chemical process that happens in the body; after that, any remaining emotional response is just the person choosing to stay in that emotional loop.

-Jill Bolte Taylor


Harvard Brain Tissue Resource Center의 신경과학자 Jill Bolte Taylor에 따르면 감정이 지속되는 시간은 90초 정도라고 한다.


즉, 어떠한 감정이 드는 순간 신체에서 실제로 몸에서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90초 정도이고, 그 후에도 감정이 지속된다면 그건 그저 스스로 그 감정의 끈을 붙들고 있기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니, 나를 괴롭히는 부정적 감정이 얼른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바람뿐인데, 내가 [선택]해서 붙들고 있다니?


그런데 그 붙들고 있는 사례를 뜻하지 않게 몸소 체험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주중에는 꼭 누군가는 한 명 집에서 일을 하고, 한 명은 시티를 나가야 한다. 첫째의 학교는 집 근처에, 둘째의 어린이집은 남편 회사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아이 하나씩 맡는 것이다.


시티에서 집에 오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일을 마치고는 저녁을 준비하는 것이 우리끼리 암암리에 정해진 약속. 그날은 내가 시티로 나간 날이었다. 집에 오니 저녁은커녕 첫째는 거실 한쪽을 어지르며 놀고 있었고 남편은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저녁에 딱 지금부터 할 일이 도미노처럼 앞에 줄지어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저녁이 늦어지면, 아이들 샤워가 늦어지고, 함께하는 학교 숙제 시간이 늦어지고, 집 정리하는 시간, 잠자는 시간까지 다 늦어지는 것이다.


"저녁은?!"


말투가 벌써부터 곱게 나가지 않는다. 내가 오고 있다고 연락을 주지 않아서 요리를 시작 안 했을 뿐, 재료 준비는 다 해놨다고 보여주는데 그래? 내가 조금 오버했네.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동시에 이 시간이면 오는 거 뻔히 알면서 하는 마음이 들었다.


따로 표현은 하지 않고 아슬아슬 저녁도 다 먹고 집안도 치우고 아이들도 재웠는데 너무나 피곤하다. 아 이제 좀 쉬나 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데, 보통은 아이들 재운 후 거실에 있는 큰 컴퓨터를 쓰는 남편이 방으로 와서 TV를 보려는 포즈를 취한다. 조용히 있고 싶은데.


"왜 거실에서 컴퓨터 안 하고?"

"아 됐어"


하더니 갑자기 쌩 하고 나가버리는 남편. 평소 같으면 같이 있고 싶어서 그렇지, 차 한잔만 하고 가려고 하지 할 남편이 찬바람 날리며 나가니 괜히 또 마음이 쓰인다.


뭐 하려고 와서 앉아 있었냐고 물으며 그럼 다시 와서 좀 앉아 있다 가든가, 아 됐어. 있다 가라고. 아 됐다고. 그 유명한 시작은 있었으나 도대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모르는 부부싸움이 시작되었다.


"아까 당신 집에 오자마자 말투부터 별로였어."


그랬다. 남편은 그때부터 조금씩 불만이 쌓였던 거고, 나는 한 번씩 회사 간다고 나갔다가 오면, 게다가 남편 회사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 집은 꼭 엘리베이터로만 다닐 수 있는 구조로 기다리는 시간, 아이 유모차 가방 이것저것 챙겨서 나오는 시간까지 하면 회사에서 5시에 나와도 6시에 버스를 타는 마법 때문에 지쳤는데, 겨우 집에 오니 저녁이 준비될 기미도 보이지 않아 짜증이 났던 것이다.


거기서 멈추었으면 참 평화로웠을 텐데. 감정을 붙들고 있으면, 그건 더 이상 감정이 아니라 눈먼 고집이자 아집이 된다. 저녁이 준비되지 않아서,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들었던 감정은 이미 90초 만에 끝났는데, 우리는 그날 밤 90초를 한참 넘긴 후 싸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아주 일시적일 수 있었던 작은 감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날. 그래서 엉망진창의 마음은 90초의 10배는 더 오래 머물렀다.(이래서 피곤한 날은 그냥 자야 한다.)


어제 데이터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이 감정의 블랙홀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를 해보았다.


혹시 또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다면, 우리는 이제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부정적 감정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인지하면 좋을 것 같아 눈 모양으로 표현해봄(그려놓고 보니 좀 무서움)



어떻게 읽을까? (Legend)


마음의 눈

  - 왼쪽 아래: 내부적 요소로 인한 부정적 생각과 감정

  - 오른쪽 위: 외부적 요소로 인한 부정적 생각과 감정


눈썹 모양: 눈썹 끝의 모양에 따라 8가지 다른 감정을 나타낸다.

  - 절망/좌절감(Frustration)

  - 짜증 (Annoyance)

  - 귀찮음 (Laziness)

  - 실망 (Disappointment)

  - 걱정 (Worry)

  - 자기 의심(Self-Doubt)

  - 비교, 질투(Jealousy)

  - 속상(Upset)


눈썹의 잎(?): 해당 생각이나 감정을 들게 된 요인, 하나의 생각/감정마다 한 잎씩.

  - 주황: 일 연관

  - 노랑: 아이들

  - 분홍: 남편

  - 하늘: 혼자

  - 초록: 그 외

   

심볼: 동시에 든 생각/감정들. 혹은 하나의 감정을 붙들고 놓지 않으면 계속 연이어 오는 또 다른 감정들끼리 매칭하였다. Upset(감정의 소용돌이, 속상함, 화가 남) 부분은 꼭다른 어떤 감정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The mindful data project #4



데이터가 하는 이야기

일주일간 총 34번 의 부정적 생각/감정이 들었다.

내면적 요소에 의한 부정적 생각/감정이(20번) 외부적 요소에 의한 경우(14번) 보다 많았다.

회사 일 관련하여 들었던 생각/감정이 가장 많았는데, 여러 사람을 상대로 발표를 해야 했던 일, 그리고 그 발표의 중요성을 크게 보지 않다가 사실은 녹화까지 한다는 걸 이틀 전에 알게 된 상황으로부터 오는 여러 감정들이었다.

자기 의심, 즉 내가 잘하고 있나? 나 괜찮은가? 에 취약하다.

아이들이 나를 많이 불러주기도 하고, 덕분에 많이 웃기도 하지만 아이들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욱하기도 할 때가 두 번째로 많다.(미안하긴 한데, 너네들도 내 말 좀 들어주겠니.)




나는 무한한 하늘, 감정은 흘러가는 구름


생각과 감정은 분리될 수 있다.


아 귀찮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거기에 매달려서 [얼마나 귀찮은지] 되뇌이다 보면 쉽게 짜증이라는 감정으로 변질되지만, [어떻게 이 일을 해치우고 훌훌 털어버리지]에 집중하면 금세 산뜻한 마음으로 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인간인지라. 언제나 완벽한 수행자의 마음으로 생각과 감정을 다루지 못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지금 드는 생각과 감정이 [나(True Myself)]가 아니라는 이다.


하늘은 계속 거기 있지만 구름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그리고 구름이 하늘이 아니 듯, 내가 하는 생각이나 감정이 내가 되지는 않는다.


결국 구름은, 흘러가고야 만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느낌이 떠오르면, 그걸 구름 위에 얹어놓고 둥둥 떠내려 보내는 모습을 상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동시에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이 [나]라는 이미지도 함께 그려보는 것이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감정을 바라보는 힘을 키우는 연습.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좀 더 자유로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산책하며 만난 하늘과 구름들
오늘 오후



부정적 감정을 이토록 오랫동안 바라보며 분석(?) 아닌 분석을 해본 적이 있을까.


셀 때까지만 해도 잘 몰랐던 나의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며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이해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남편과 싸우던 때 빼고) 내 몸과 마음을 점령해 오던 감정이 1-2분 내에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순간, 잠시 일렁이다 평안이 깃드는 찰나의 순간을 느끼는 신기한 경험은 앞으로도 계속 훈련해보고 싶다. 여러분께도 강추한다.

이전 04화 남편과 반려견에게 보내는 oo의 수가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