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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Aug 20. 2023

등교 준비하다 [또] 소리를 질렀다.

#5. My morning snapshot

아이들은 꼭 한 번에 빠딱빠딱 준비하는 법이 없다. 아침에 학교를 가야 하는 건 아이인데, 정작 애가 타는 건 부모인 경우가 허다한 아침.


지난주 둘째가 아팠다. 남편과 하루씩 바통터치를 하며 출근을 했고, 그날은 내가 회사로 나가는 날이라 첫째를 데리고 학교에 데려다준 후 출근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아이의 체스 수업이 있는 아침이라, 보통 학교 가는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나가는데, 그래봤자 체스 시작 시간은 8시(그리 이르지도 않다.). 데려다주고, 다시 버스 타고 출근하면, 운 좋으면 시간이 좀 남아 혼자 커피 한 잔을 하고 들어갈 수 있다.


나는 그 혼자 커피 마시며 사부작거리는 시간이 고팠다. 원래 둘째가 아프지 않다면 남편이 첫째를 맡고, 내가 둘째를 데리고 일찍 나가면 되는데, 그게 아니니 첫째 준비를 계속 체크하기 시작한다.


oo아 일어났니

oo아 일어나야지

oo아 어서 일어나!(아직은 단호한 목소리 정도.)

oo아 옷 입었니

oo아 옷 아직 안 입었니?

oo아 아직 누워있어?! 빨리 옷 입어~ (조금씩 올라오지만 애써 누름. 짜증이 묻은 목소리.)

oo아 아침 다 먹었니

oo아 치카했니

oo아 치카 아직 안 했니

oo아 치카해라

oo아 치카 하랬지!!!(결국 터짐. 근데 이따가 더 터짐.)


시계를 보니 7시 44분. 버스가 3분 후에 온다고 앱에 뜨니 그걸 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분-15분 간격으로 버스가 오니, 아이는 체스 수업에 늦을 거고, 나의 소중한 커피 시간도 날아간다.


빨리!!!!



참다 참다 결국은 폭발을 하고야 만다. 하.... 7시부터 깨웠는데, 45분 준비가 부족하단 말인가? 빠딱빠딱 준비하면 30분이면 될 것 같은데, 그게 안된다.


꼭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면, 나도 별로인 사람 같고 아이한테도 미안해지고, 기분이 엉망진창인데 소리를 또 질러버리고야 말았다. 아이는 그제야 신발을 퍼뜩 신고 나설 준비를 한다.


다행히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 심지어, 이게 가능해?라고 생각할 만큼 아이를 체스 수업에 데려다주고 다시 버스를 타는 타이밍과, 또 그 버스가 시티까지 가는 속도가 엄청 빨랐다.


이럴 거면 아이가 준비가 거의 다 됐었는데, 그냥 잘 어르고 달래서 데리고 나올걸. 소리를 질러서 겁을 주고 나온 것 같아 빠르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후회가 밀려왔다.


소리 지르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기분을 잘 알고 있다. 자주 불안하고, 눈치를 보는데 간혹 아이가 눈치를 보는 것 같을 때면 혹시 내가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던 이런 순간들이 쌓여서 그런 건 아닐까 가슴이 내려앉곤 했다.


체스 수업 한 5분 늦을 수 있지. 따지고 보면 결국 나 혼자 커피 마시는 시간 벌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닌가.


그럴 거면 엄마인 네가 새벽에 일어나서 혼자 시간을 보내면 될 텐데, 아침잠은 자고 싶고,  시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은 있고, 너무하네 너무해. 자기 객관화를 해대며 다음부터는 소리를 지를 것 같으면 그전에 숨 한번 더 고르자고 다짐했다.



두 달 후.

둘째가 또 아프면서, 똑같은 상황이 되었다. 내가 출근길에 아이 체스 수업에 내려다 주어야 했고, 역시 아이는 느렸다.


이번엔 좀 나아졌을까?

잘 참았다. 저번 일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결국 7시 45분 버스는 놓쳤다. 그래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적어도 7시 55분쯤 오는 버스는 타야 한다. 나가려는데, 그날은 아이가 농장 견학을 가는 날이었고, 모자(호주 학교는 모자도 교복의 일부로 나온다.)를 챙겨 가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모자가 없단다.


물건은 제자리에 두는 거라고 누누이 말했는데, 모자가 있어야 하는 곳에 없다. 이번 버스 놓치면 수업은 빼박 늦는다. 커피는 고사하고 회사도 늦을 수 있는데, 모자를 찾느라 두리번거리는 아이.


모자 어쨌어!!!!!


그렇다..... 또 터져버렸다. 이 고비, 저 고비 다 넘기고, 심지어 원래 타야 하는 7시 45분 버스를 놓쳤어도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는데, 겨우 다스린 마음이라 아슬아슬했던 모양이다. 모자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는 아이의 말에, 지난번 다짐이 무색하게 또 터져 버렸다.


결국 모자는 찾았고, 다음 버스를 타고 체스 수업은 5분 정도 늦었다(소리까지 질렀는데 그러고보면 그리 늦은 것도 아니다.). 그날따라 버스도 천천히 운행한다. 하필 버스들의 배차시간이 꼬였는지, 두 대가 연달아 왔는데, 느긋히 운전하시는 기사 아저씨 덕분에 혼자 음악을 들으며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놈의 소리만 안 질렀다면,  좋았을 텐데.



Calm Down

커피를 마시러 간다는 뜻은, 무엇가를 읽거나, 쓰거나 둘 중 하나를 한다는 뜻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더 그 시간을 챙기려는 마음도 크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내 시간을 마련해 본 적도 있었지만, 한번 잠을 미루어 자 보니 아침에 1시간 더 자는 일이 꿀맛 같아 이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도 큰맘 먹고 해낸다. 그래놓고, 내 시간 좀 갖아보겠다고 아침부터 소리를 뽝 지르고, 아이 눈물바람까지 보고는 찝찝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이기적인 엄마.


짧은 시간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을 능력이라 생각하고,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끼면 죄책감이 들어 어느새 마음만 분주한 모지리가 되어 있는 멍청한 엄마.


분주하게 이것저것 하겠다면서 정작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파르르 끓어오르는 양은 냄비 같으면,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일까 싶다.


남편이 알아서 하는 집안일도 효율적이지 않으면 지적을 하고(남편 미안), 회사에서도 아무도 다그치지 않지만 혼자 막 일을 해댄다.


이러다가 번아웃이 오고 그런 거라는데. 하루하루를 충만히 산다는 말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사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좀 알 나이가 되지 않았을까.


잠이 꿀맛 같아 1시간을 더 잤다면, 더 잤던 그 마음처럼 좀 느긋해보자. 앗 내가 잠을 더 잤으니 지금 이 시간을 아껴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지. 가 아니라 진정 좀 하고 천천히.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괜찮다. 어쩌다 한 번 늦을 수도 있고, 놓칠 수도 있고. 뜻대로 잘 안될 수도 있지. 하는 마음으로.


그날따라 느리게 움직이는 버스에서, 아주 오랜만에 혼자서, 책도 없이 음악만 들었다. 그냥 그렇게 음악을 들으며 멍 때리는 시간이 좋았다. 바깥 풍경도 보고, 하늘도 보고. 꽝꽝 감겨있던 실타래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


천천히 살자. 누가 뭐랄 사람도 없는데, 혼자 들들 볶다가 주변 사람 다 볶아버리겠다. 


좀 느슨하게 살아도,

큰 일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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