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Sep 22. 2023

여보, 이번 주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할까?

#7. My To-Do List

이주 전쯤, 코로나는 아닌데 코로나와 비슷한 증상이었던 [respiratory infection]에 걸려 한 주 내내 끙끙 앓았다.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어 몸이 가라앉는 것처럼 무거워 일상이 힘들었으나.  주 초에 아이들이 번갈아 가며 열이 오르는 바람에 집에 함께 있게 되면서 [휴식]은 꿈의 단어가 된 사흘의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좋은 점이 있기도 했는데, 입맛이 없던 내게 때 되면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는 아이들 덕분에 뭐라도 만들어 주느라, 나도 옆에서 조금이지만 챙겨 먹었다는 것.


아이들은 사흘 후에 다 나아 각자 학교, 어린이집에 갔는데, 어쩐지 나의 증상은 악화가 되어 그때부터 집에서 혼자 쥐 죽은 듯 자고 또 자는 시간을 보냈다.


양가 가족이나 친척이 호주에 아무도 없어, 미안하게도 남편이 아이들의 등하교를 다 책임지며 출퇴근을 했다. 출근 전에는 세탁기를 예약으로 맞춰두어 이른 아침에 끝난 빨래를 널어놓고 나갔고, 퇴근 후에는 저녁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으며, 아이들을 씻기고, 청소기를 돌리고, 모모 산책에 쓰레기도 가져다 착착 버려 주었다. (쓰고 보니 산후조리 때의 패턴과 비슷하다.)


혼자 모든 일을 하면서도, 중간중간 나의 몸은 어떤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물어봐주어, 미안하고 고마웠다. 나 같으면 나도 힘들다고 짜증을 냈을 것 같은데.


언제나 내 마음을 편히 해주는 남편이, 고마웠다.


그 후 이틀을 울잠 자는 곰처럼 잤더니 몸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아직 병가를 낸 상황이었고, 조금씩 집안일을 했다. 아픈지 일주일 만에 남편이 퇴근하기 전,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저녁을 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평소의 루틴대로 청소기를 돌리던 남편이 말한다.


집에 왔는데 저녁이 되어 있으니 너무 좋은 거 있지. Thank you.


일주일 내내 자기가 다 해놓고, 고작 저녁 한 번 오랜만에 차렸는데 고맙다고 말해주는 사람.


No problem, 내가 한 건 진짜 아무것도 아니야.



자잘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탄생하는 추억


집안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남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게으른 나는 좀 어질러져 있어도 그러려니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가 청소를 한다고 해도 남편 성에는 안 차는 눈치다. 매번 왜 반만 하다 마냐고 묻는다. 나는 다 한다고 한 건데.


아프고 난 후, 한 주 동안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보았다. (아무래도 수집한 데이터를 보고 남편이 가족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효과인지. 남편 생각을 부쩍 많이 일주일.)



아이들 관련된 일, 집안일, 모모 산책만 해도 벌써 일주일동안 해야 하는 일의 78%를 차지한다. 물론 자잘하게 단타로, 매일같이 발생하는 일들이 이 78%에 속한다. 식사 차리기, 아이들 씻기기, 청소하기, 빨래하기, 모모 산책시키기, 쓰레기 버리기 등등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다음날이 되면 없던 일처럼 깨끗이 리셋되어 또다시 시작하는 리스트.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회사에서 해야 하는 업무를 수로 따지면 전체의 15% 정도뿐이다. 그만큼 한 업무 당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이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삶을 지탱하는 어쩌면 이 78% 성실히 해내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잘하고, 티 나지 않고, 자꾸 리셋만 되니 보람도 없는 일 같지만. 지루하도록 반복적인 리스트가, 우리의 을 구성하는 분위기가 된다. 


침대 시트를 돌리고 큰 빨랫줄에 걸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날이면 둘째는 꼭 따라 나와 함께 빨래 너는 것을 도와준다. 첫째가 일찍 학교에서 끝나는 날 아이와 함께 하는 모모 산책. 식사를 차리는 일이 귀찮은 날도 있지만, 차려서 함께 식탁 위에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들.

 

훗날 추억이 되는 일상이, 이렇게 자잘한 반복 속에서 탄생한다고 믿는다.


몸과 마음이 피곤한 날은 이 자잘한 일들이 벅찰 때도 있다. 육아 독립군으로 아이 둘과 유지하는 일상은 남편과 나의 무수한 [오늘은 누가 요리할 것인가.][오늘은 누가 아이들을 씻길 것인가.][이번 주는 누가 화장실 청소를 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과 액션이 버무려진 결과. 특히 화장실 청소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금요일인데.

여보, 이번 주 주말 화장실 청소는 누가 할까?

이전 08화 음 하나 틀렸다고 음악 전체가 망가지는 건 아니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