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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Sep 13. 2023

글을 쓴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

#8. My Bookshelf

읽기의 즐거움

읽고 싶은 책들의 리스트를 하나하나 써 놓은 후 한 번에 여러 책을 알라딘에서 주문하고는 했다. 그러면 배송비가 책 값과 비슷하게 나와 산 책의 2배의 값을 지불하고 책을 받게 되는데, 그래도 좋았다.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책 몇 권을 큰 짐가방에 넣어 오는 것도 일이었는데, 여기저기 가방 속에 묻어 놓고 다시 호주로 와 짐을 펼칠 때, 막 한국을 떠나 온 헛헛한 마음을 달래주는  직접 골라 온 따끈따끈한 책들이었다.


다행히 이곳 도서관에는 한국책이 꽤 많다. 운 좋으면 떼 묻지 않은 신간을 읽어볼 수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처럼 바로바로 교보에 가서 읽거나, 배송을 받을 수는 없지만, 해외 살면서 한국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는 건 큰 호사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을 만나는 대신 책을 읽어왔다. 관계가 어려워 선택한 일방적 소통 방식의 창구가 독서였다. 나는 책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말 실수할 염려도 없고, 관계가 흐트러질 일도 없는 조용한 친구. 언제든 생각나면 다시 돌아가 생각을 읽고, 같은 이야기라도 읽는 시기에 따라 다른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그때그때 드는 생각이 변덕을 부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 행위. 읽기의 즐거움이다.



읽고 싶은 글을 쓴다는 것

책을 정리하다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죽은 자의 집청소]라는 책인데 내용에 반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읽다 보면 저자가 마주한 죽음이 너무 생생하여 선뜻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해서였다. 언젠가는 이 이야기도 담담히 마주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오리라 믿어 현재는 고이 책장에 모셔두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면, 이렇게 나의 글을 한편에 잠시 넣어두고 기다려주는 일들은 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브런치에서야 다들 서로 작가라고 부르지만) 내가 진짜 작가도 아니고, 나 역시 쓰면서도 주제가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읽는 사람은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싶다.


얼마 전 나의 어두운 과거에 대한 글을 하나 썼었다. 그 글을 올리고는 구독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속상함도 잠시, 생각해 보면 그분들은 내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다. 다만 내가 쓴 글이 그분들이 읽고 싶었던 글이 아니었을 뿐.


누가 해달라던 이야기도 아닌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활자에 담았다. 그런 글은 사실 쓰고서도 마음이 무겁다. 그저 내 감정의 배설 뿐이었던 글이었을까 싶어서. 왜 사람들에게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지 말라고 하는 말도 있지 않나. 마음 깊은 곳을 보여준 사람이 멀어지면 상처받을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과 다름없기도 하고,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될 이야기, 어쩌면 내게는 치부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쓰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쓰고서도 고민을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활자로 담았다면, 나를 보여주면서까지 그 이야기를 꺼내고야 만 나의 마음을 인정하는 용기.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거라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단단하고 무관한 마음이라는 용기.


글쓰기는 독서에 비해 좀 더 주도적인 소통인 만큼, 나를 정돈하는 힘 역시 꽤 강력하다. 요즘 같은 글쓰기 과잉의 시대에, 소심한 마음으로 쓰고도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드문드문이라도 쓰는 이유는 아마도 글이 내게 주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슬픔은 당신이 그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견뎌질 수 있다." (쓰기의 말들)


배설도 자꾸 하다 보면 통증이 줄어드려니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담백하고 단단한 글도 쓸 수 있겠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글을 쓸까. 어떤 글쓰기가 가치 있는 글쓰기일까.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가 듣고 싶을까. 나는 무슨 이야기로 나를 채워가고 싶을까.


책을 정리했는데, 글쓰기에 대한 고찰로 마무리를 한다. 하나 분명한 건, 따뜻하고 힘이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하고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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