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꼬치

by 시월

겨울이 되면 가슴 속에 3천원을 품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겨울 간식 삼대장 붕어빵, 군고구마, 그리고 어묵꼬치를 사먹기 위해서. 그런데 요즘은 3천원 아니고 8천원에서 1만원은 들고다녀야 하는 것 같다. 아니 아니다. 현금이 아니라 계좌이체로 다 되니 안 들고 다녀도 되는 것 같다. 아날로그 시대를 맛본 인간이라 그런가 참 낭만없게 느껴진다.


태어나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은 기억 속 첫번째 집이다. 네 살 때부터 열다섯 봄까지, 아버지 사업이 말 그대로 쫄딱 망해 경매로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면 안정을 추구하는 엄마에 의해 아직도 그집에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집에서 참 오래 살았고, 동생도 태어났고 햇볕도 잘 들었고, 초등학교도 다 다녔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더 즐거운 기억은 그 다음 딱 만 2년간 머물렀던 반지하 집에 가득하다.


집이 너무 좁아서 에어컨이며 피아노, 쇼파 등을 들일 수 없어서 남에게 맡기거나 다시 시작한 아버지 사업장에 두었다. 거실이라 부를 만한 공간 없이 삐걱거리던 불투명 유리가 달린 알루미늄 문을 열자마자 두칸짜리 싱크대 바로 옆으로 방문, 화장실 문, 다시 방문이 디귿자를 그렸다. 각자 방이 있던 나와 내 동생은 어쩔 수 없이 요 하나 겨우 펴지던 방을 함께 쓰며 많이도 다퉜다. 그나마 넓은 안방에서는 바닥이 보였다. 반지하였으므로. 봄에 주인 집 마당의 목련나무에서 떨어져 짓이겨진 갈색 목련꽃이 한 가득 보이곤 했다.


그런 집에 이사간 뒤, 누가 볼 새라 쪽문으로 재빨리 드나들곤 하면서도 집 안에 들어 앉으면 동생과 문틀에 기대어 앉아 투니버스를 보던 것, 그러다 학습지 선생님이 오셨는데 집에 없는 척 한 것, 엠넷과 엠티비를 보던 기억, 온 가족이 상 하나 겨우 필만한 그 자리에 앉아 체온을 나누던 것, 옹기종기 먹던 밥, 그리고 느닷없이 키우게 되었던 우리 강아지 몽실이로 참 복닥복닥하고 몽글몽글한 기분을 느끼게 해서 좋았다.


학교와 시장이 가까워진 것도 참으로 좋았다. 더 좋고 더 먼 집에 살 때보다 훨씬 안 좋은 그 집에 친구들도 참 많이 데리고 왔다. 한창 예민할 시기인 나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보란듯이 일부러 더 친구들을 데리고 가곤 했다. '엄마, 나는 괜찮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를 보여주고 싶어서. 그런 나와 친구들에게 엄마는 '가난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지만 시장에서 사온 붕어빵, 호떡을 간식으로 내어주셨고 무엇보다 직접 만들어준 고구마튀김을 자주 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꿀맛이었다. 아마도 고구마튀김이 그때의 기억이 참 향기롭게 남는데 일조한 것 같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학교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사먹던 부산오뎅. 그때는 천원이 있으면 10개도 먹을 수 있었다. 잡채가 들거나 오징어가 든 것들은 300원이었지만, 구불구불한 오뎅과 길쭉한 기본 오뎅은 100원이었으므로. 친구들과 집에 가는 길에 여름에는 문구점에 들러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겨울에는 어묵꼬치를 그렇게 사먹었다. 때로는 피카츄를, 때로는 닭꼬치를 곁들여서. 그전 아파트에 살 때는 다니지 않던 길로 다니게 되면서 시장 근처 슈퍼 앞 포장마차에서의 그 시간이 참으로 따뜻하고 맛있었다.


그때가 있어서 자꾸만 낭만을 챙기며 계좌이체도 되는데 굳이 현금을 쥐고 다니는 것 같다. 이번주 아파트 장이 서면 오랜만에 집오뎅 말고 길거리 어묵꼬치를 아이와 나눠먹으며 아이의 겨울도 따뜻하게 만들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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