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

10days essay training_season2. day8

by 시월

'삼보 이상 승차'

남편이 붙여준 별명이다. 세 걸음 이상 되면 차 타고 이동한다고 비꼬듯이 붙여준 그 별명을 부인할 수 없다. 걸어서 10분거리...아니 7분정도 되려나? 신호등에 걸려도 어른 걸음으로는 넉넉잡아 10분이 채 안 될 것 같은 그 곳을 방학 내내 차태워 보내고 있으니 너무나도 맞말이므로. 그러니 호호 입김불 일은 매우 드물다. 주차장과 집은 감사하게도 엘레베이터로 연결되어 있으니 웬만하면 외투도 필요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입김을 구경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필시 친정에 갈 때 뿐일 것이다. 주소 상으로는 이름만 같고 다른 단지이지만 실제로 각 단지의 끝과 끝에 위치한 우리집과 친정집은 200m 정도밖에 안 된다. 물론 세 걸음 이상이지만 친정집 단지의 차량 입구는 친정집과 정 반대에 있어 차타고 가면 오히려 더 돌아가야 되므로 이렇게 추운날에도 걸어간다. 허락된 차는 둘째가 탄 유모차 뿐이다.


그렇게 오늘도 걸어갔다. 이유는 친정아부지와 생신이 같은, 그래서 너무나 친해진 사장님께서 참치를 보내주셨다는 소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사업장에서 오랜만에 집을 찾아 오셨다. 우리에게 먹이기 위해. 그러므로 맛없게 먹을 수 있을 쏘냐. 집에서 생와사비와 초대리, 쯔유, 후추 그리고 소주가 부족할까봐 하이볼을 만들어 먹기 위한 위스키와 토닉워터, 레몬즙, 거기다 한 동안 비어있던 집이라 없을 게 뻔한 얼음까지 야무지게 이고지고 갔다. 아 내가 아니라 내 아이의 유모차가 이고 지고 갔다.


회로 배가 터지도록 부르게 먹고 오는 길에 입김을 후후 불어본다. 오늘은 여느 날과 같이 기분 좋은 일도 있고 참 좌절스러운 일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다지도 기쁘게 우리 부모님과의 시간을 가진 뒤 입김을 후후 불며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건강하게 우리 근처에 이렇게 자주 볼 수 있는 근거리에 살아 계시고, 맛있는 걸 나눠주시며 딸이 힘들까 설거지조차 시키지 않으시고, 내가 사랑하는 나의 남편과 아이들을 살뜰히 챙겨주시고 심지어는 나에겐 돌아올 집도 있다! 아 물론 구축이라 보일러를 틀어도 돈 내는 만큼 따뜻하진 않아 온도를 극단적으로 낮춰버리기로 마음 먹었기는 하기만 여전히 sweet한 나의 집이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숨쉬는 것조차 버겁고 형벌같이 느껴지는 날들도 있지만 실은 이렇게 조용한 일상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곤 한다. 입김이 후후 나오는 날들을 지나 조금 더 따뜻한 봄날이 오면 더 기꺼운 마음으로 더 먼 거리도 조금 더 걸어보기로 속으로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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