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10days essay training_season2. day9

by 시월

여섯살 어린 동생은 첫 생일 파티를 부페에서 했다. 안그래도 하얗게 태어난 동생은 볼살이 차올라 정말 너무너무 귀여웠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다 자랑하고 싶을 정도였다. 부페에 몇 번 가본 적 없었으나 동생 생일 파티를 부페에서 한다니! 토마토 스파게티를 접시에 담아 먹을 생각에 정말 신났다. 피부가 엄청 새카맣고 또 지금과는 다르게 삐쩍 말라 있었던 8살 어린이는 점잖게 차려입은 부모님과 드레스를 입은 찹쌀떡같은 동생 사이에서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허연 이만 드러낸 것이, 아주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누군지 기억도 안 나는 친구가 집에 와서 그 사진을 보고서는 물었다.


"너만 할머니댁에서 혼자 자랐어?"


아닌데,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살았는데... 그렇다면 나의 첫 생일 파티는 어디서였을까. 시월에 태어나 시월로 지은 나의 첫 생일 파티는 아뿔싸. 할머니댁에서였다. 상에 몇가지 과일과 백설기와 시루떡을 한 접시씩 올려두고는 돌잡이를 했다. 망할 연필을 집어서 어쭙잖게 공부를 하다 공부하는 인생을 산다. 그때 부페에서 돌잔치를 했더라면! 마이크나 판사봉 같은 것들이 있어서 그런 걸 집었더라면! 왜 내 돌잔치는 부페가 아니었던 것인가.


너무 억울해 하던 참에 문제는 또 생겼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글쎄, 나는 집에서 엄마가 직접 만든 김밥과 떡볶이, 그리고 그 당시 귀하긴 했을 피자 한 판과 치킨 한 마리로 생일 파티를 하곤 했는데 동생은 옆 동네에 새로 생긴 롯데리아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준 것이다. 물론 내가 다니는 학교 근처였기에 나도 내 제일 친한 친구와 함께 햄버거를(아마도 세트를) 먹었을 테지만 주인공은 아니지 않았는가.


이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쌓이고 쌓여 커다란 후폭풍이 되었다. 엄마와 동생과 나는 한 동안 정말 많이도 서로를 할퀴도 다투었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에피소드들도 누군가에겐 공격할 거리가 되었고 누군가에겐 애써 설명하고 변명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폭풍은 맑게 개고, 우리는 마침내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란히 지금은 '옛날 그 동네'가 되어 버린 그곳의 산에 다녀가던 중 진부한 레파토리를 또 내뱉고야 말았다.


"엄마 나는 롯데리아에서 생일 파티 안 해주고~"


그러자 남편이 갑자기 거들었다.

"엄마, 올해 얘 생일에 롯데리아에서 생일 파티 해줍시다! 친구 불러 친구 불러!"


남편의 너스레에 엄마와 동생과 나 모두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야 말았다. 나의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더니, 날짜를 알려주면 오겠다고 난리다. 이러니, 후폭풍은 흔적을 남길 수가 없다.


이젠 일곱 살 차이 나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데 맙소사, 큰 애는 부페에서 돌잔치를 했고, 둘째는 코로나 이후라 가족끼리 밥만 먹었다. 어쩌다 발견했다며 남편이 보여준 돌잔치 영상은 금기다. 언젠가를 대비해 둘째 돌 영상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업보다 업보야.

매거진의 이전글입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