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트레이닝 시즌 4. 김장
남자가 집을 해오면 여자가 혼수를 하는 거랬나. 요즘 시대라기엔 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운 좋게 집을 해오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혼수는 내 몫이었으나 돈이 없었다. 그래도 책꽂이는 4개, 책상은 2개를 샀다. 그러느라 돈이 더 없어져서 TV, 에어컨, 김치냉장고를 사지 않았다. TV는 매일 틀어져 있는 그 소리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아빠였다. 아빠는 꼭 TV를 켜고 누워 눈을 감고 계셨는데, 살금살금 끄려 해도 "아빠 안 잔다. 다 듣고 있다"하시며 엄마나 동생과 시끌벅적하면 TV소리 안 들린다고 호통을 치곤 했다. 그래서 TV가 싫었다. 에어컨은 결혼하고 곧 겨울이라 좀만 이따 할인할 때 사자고 하고 미뤘다. 김치냉장고는 남편은 김치를, 정확히는 김치와 김치로 만들어졌거나 김치가 들어간 모-든 것을 먹지 않기 때문에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중 TV는 그래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결혼 후 3년쯤 뒤에 엄마가 사주셨고, 에어컨은 그해 겨울에 바로 장만했지만 김치냉장고는 여전히 없다. 시어머니는 김치냉장고를 왜 안샀느냐며 은근한 타박을 하시기도 하셨지만 타격 1도 없는 나는 "어머니 아들도 안 먹는데요 뭘~ 저는 엄마집가서 맛있게 먹을 만큼만 가지고 오면 돼요~"하고 실실거리며 할말 다하고 웃어넘긴다. 그도 그럴 것이 신혼집과 친정집은 약간의 거리-차로 25분, 대중교통으로 45분 정도-가 있었으나 첫째를 봐준다고 엄마가 평일 내내 와주셨고, 직장과는 차로 10분거리라 퇴근길에도 들르기 쉬웠다. 지금 집으로 이사하고 난 뒤는 엄마도 따라 이사오셨고, 200m거리에 사니 엄마 집에 있는 김치냉장고가 곧 내 김치냉장고인 셈이다. 재료를 조금씩 사서 그때그때 해먹는 스타일인 나는 냉장고 하나로도 충분히 차고 넘친다.
그런데 지금껏 결혼하고 김장에 한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다. 항상 비밀리에 급작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TV 앞에 누워있던 아빠는 부엌일에서만큼은 그 시절에 보기 힘들 정도로 적극적인 분이었는데 그것은 아마도 수년간의 자취 경력 때문일 거다. 그 시절 쓰던 칼을 아직도 갈아서 쓰는 아빠는 손으로 하는 건 뭐든지 야무지게 잘 해내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칼질도 예술로 한다. 무채가 가정 교과서에 교본으로 나와도 될만큼 가지런하고 일정한데다 매우 적절히 가늘기까지 하다. 제 아무리 통나무같은 무라도 후들후들 곱게 채쳐지는 걸 피할 수 없다. 성미가 고약하고 성격이 급한 아빠는 요즘 말로 하면 극강의 대문자 P인 인간인데, 그러다보니 엄마보다 솜씨가 좋은 아빠의 마음대로 결정되는 것이 김장날이라, 최고의 조수인 엄마도 그 날짜를 모른다.
집도 가까운데 어찌 모를 수 있겠냐마는 김장은 집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아빠의 회사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알 길이 없고, 알아서 쫓아간들 이미 거의 끝난 다음이다. 우리가 가봤자 시끄럽고 메뚜기떼들이 와서 축내기나 한다고 몰래 한다. 갓 절여진 배추 속잎을 빨간 고무장갑을 낀 엄마가 손으로 죽 찢어 양념을 살짝 올려 입 안에 넣어주던 그것을, 그래서 못 먹은지 오래다.
그러나 안다. 그렇게 몰래 김장하는 것은 나를 고생시키지 않기 위함을. 그리고 안다. 완성된 김치를, 배춧값이 아무리 오른들, 김장하느라 아무리 힘이 들었던들 생색 하나 내지 않고 아낌없이 나누어 줄 거라는 걸. 김치 뿐만 아니라 수육도 푹푹 삶아 싸먹으라고, 덜 비빈 절인 배추잎과 따로 담은 김치속을 건네며 "너 이거 좋아하잖아"라고 말해줄 거라는 걸 안다.
묵은지도 푹푹 삶아 갖다주고, 아프다니 고기 삶아다주고 소고기 무국 끓여다주고, 방금은 호랑이처럼 전화도 왔다. "시원찮은 놈아, 먹을 걸 제대로 먹어라!" 그러니 나는 김치냉장고가 전혀 필요없다. 김장도 영영 모르고 살련다! 그러고 싶다.